흑인 아기 입양한 이현호 김성덕 가족
▲ 진석이는 2005년 12월 23일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우리집에 왔다. 그때 태어난 지 3개월을 갓 넘긴 얌전한 아기였는데, 어느새 1년이 훌쩍 넘어 지금은 집구석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개구쟁이로 변신했다. (김종희) | ||
진석이는 2005년 성탄절을 이틀 앞둔 12월 23일 이현호 목사(38) 집에 찾아온 작은 아기다. 마치 예수가 아기로 이 땅에 온 것처럼, 진석이도 태어난 지 3개월 된 갓난아기로 이 집에 왔다. 이제 17개월 된 진석이는 기저귀를 찬 채 뒤뚱거리며 집구석을 난장판으로 만들지만, 자기와 피부색이 다른 엄마·아빠·형·누나와 한 가족이 되어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진석이(미국 이름은 Angel)의 친엄마는 20대 중반의 흑인 대학생. 한순간의 실수로 임신은 했지만 생명을 버릴 수는 없어서 입양기관에 아기를 맡겼다. 이현호 목사 부부는 2003년에 입양을 결심했다. 수개월 걸리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서 진석이와 이 목사 가족이 연결되었고, 2005년 말에 진석이는 이 목사의 식구가 되었다. 진석이의 친엄마는 지금도 가끔 연락해 아이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단다. 집에 놀러오라고 권유하지만, 아이를 만나면 죄책감이 더 클 것 같아서 그런지 직접 만나려고 하지는 않고 안부만 묻는다고 한다.
한국 여성과 흑인이 결혼해 혼혈아를 낳은 경우는 많지만, 한국인이 흑인을 입양하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다. 기자가 몇 시간 동안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입양과 관련한 정보를 알 만한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이에 딱 맞는 답을 구하지 못했다.
그럼 이 목사 부부는 왜 흑인 아이를 입양했을까. 다분히 인종 차별적인 질문이겠지만, 우리네 인식의 현주소는 이런 질문을 당연하게 만들고 있다. 이 목사의 설명에 의하면, 이들이 흑인 또는 진석이를 원한 것이 아니라 진석이의 엄마가 이 목사네를 선택한 것이다. 한국의 입양 제도와 미국의 입양 제도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엄마는 진석이를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게 하고 싶었으며, 이 목사 가족의 다복한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백인 가정에 아이를 맡기기로 했는데, 진석이 몸에 작은 이상이 있어서 수술이 필요했다. 그래서인지 신청자는 이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목사네는 흑인 아이 진석이를 받아들이는 데 고민이 없었을까. 너무 쉽게 “그런 건 없었다”고 대답한다. 뉴욕의 경우 입양기관에 맡겨진 아이의 상당수가 흑인이기 때문에 흑인이 입양될 가능성이 있지만, 흑인 부모가 아시아인에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오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아시아인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히스패닉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 진석이의 형 반석이와 누나 하늘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흑인, 히스패닉, 캄보디아인들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기 때문에 진석이를 맞을 때 아무런 갈등이 없었다. (사진 제공 이현호) | ||
목사로서 성경 말씀에 대한 신념이 그의 실천을 뒷받침한다. 가령,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사람들을 사셔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라는 구절이나 ‘아무도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인데, 흰 두루마기를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큰소리로 “구원은 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의 것입니다” 하고 외쳤습니다’라는 구절을 예로 들어, “마지막 때에 모든 것을 초월해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 인종적 편견을 갖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또 구약성경에 자주 나오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는 말씀을 인용해서, “지금 이 시대에 과부가 누군가. 미혼모를 말하는 것 아닌가. 그 미혼모의 아이는 고아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나그네는 달 따라 구름 따라 정처 없이 떠도는 한량이 아니라 바로 약한 외국인, 힘없는 소수민족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 이현호 목사가 목회하는 캄보디아 교회 청년들. 여기서도 진석이 인기는 '짱'이다. (사진 제공 이현호) | ||
그러나 어려움은 딴 데 있었다. 바로 주위의 싸한 시선이다. 특히 한인 타운에 나가면 곱지 않은 눈길을 견뎌야만 한다. 엄마와 진석이 둘만 있을 때는 남편이 흑인으로 오해하곤 하는데, 이런 오해는 차라리 괜찮다. “한국 고아들도 많은데 왜 하필 흑인이냐”는 노골적인 핀잔을 듣고 아내는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자신들에 대해 취재하는 것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워 했다. 이제는 바뀔 때도 된 것 같은데, 좀체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의 편견이 이들 부부의 마음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굳이 남들에게 숨길 것도 없고, 숨기려야 숨겨지지도 않는 일이기 때문에, 주위 반응을 담담히 받아들이려 하지만, 상처는 쉬 지워지지 않는다. 감사한 일은, 입양을 한 한참 뒤에야 이 소식을 들은 양가 부모님들이 처음에는 황당해하다가 지금은 진석이를 너무 보고 싶어 하고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또 입양을 하면 마치 정부에서 큰 혜택이라도 받는 것처럼 오해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혜택은 없다. 지금은 교회 교인 중에 의사가 있어서 진석이의 자잘한 건강 문제는 챙겨주고 있지만, 비싼 Health Insurance(건강보험)가 아직 없기 때문에 진석이 수술도 당장은 못 시키고 있다.
▲ 엄마 김성덕 씨는 한인타운에서 부딪히는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 특히 "이왕이면 한국인을 입양하지, 하필 흑인이냐" 하는 빈정거림은 여전히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다. (사진 제공 이현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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