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돌아가자!” 개혁의 기치로 주목 받는 교회
“말씀으로 돌아가자!” 개혁의 기치로 주목 받는 교회
  • 홍성종
  • 승인 2007.02.20 22:1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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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교회’ 꿈꾸며 긴 여정 끝에 둥지 튼 잭슨빌벧엘장로교회

   
 
  ▲ 생명력 넘치는 예배와 균형 있는 제도를 통해 건강한 교회를 꿈꾸는 잭슨빌벧엘장로교회 예배 모습. (사진 제공 잭슨빌벧엘장로교회)  
 
“방황과 배회와 절망으로 얼룩진 내 신앙 여정도, 돌아보면 은혜를 찾아서 예까지 온 것이다. 한때 교회를 등진 것도 거기 은혜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고, 다시 돌아온 것도 다른 곳에서 은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증한 존재일 수 있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자랑이요 기쁨이다. 교회에 속한 우리 모두는 ‘은혜로 치유된 눈’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토록 풍성히 부어주신 은혜가 다른 이들에게도 얼마든지 임할 수 있음을 보는 눈이 필요한 것이다.” (잭슨빌벧엘장로교회 성도들이 필독서 중 하나로 꼽는 필립 얀시(Phillip Yancey)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What’s so amazing about Grace?)> 중에서)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자리한 벧엘장로교회의 성도들은 요사이 얼굴 표정이 많이 상기되어 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서로 기쁨을 나누기에 바쁘다. 예배 시간 중에 주고받는 인사도 앞뒤 사람 서넛이서 형식적으로 하지 않고, 온 성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를 오가며 서로 포옹하거나 악수를 한다. 말 그대로 인사 한번 요란하게 한다.

오전 1, 2부로 나눠 드리는 주일예배 시간도 2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근엄한 장로교회에서 꽤 나이 든 이민 성도로 구성되어 있지만, 40대 중반의 담임목사가 직접 기타를 메고 찬양을 인도한다. 그뿐만 아니라 회중이 한 목소리로 기도하는 시간에는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위해, 비성경적인 신앙을 버리고 성경 말씀에 중심을 둔 세계관으로 성도 각자가 변하기 위해, 그리고 선교와 전도, 구제의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간절히 하는 기도가 이어진다. 주일예배에 심혈을 쏟는 모습이 애절하기까지 하다.

예배 후에는 몇몇 성도들이 자청하여 준비한 식사가 제공된다. 50여 평의 식당엔 입추의 여지가 없다. 점심 식사는 1식 1찬. 오늘 메뉴는 김치에 카레라이스이다. 교회 밥은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다느니, 꿀맛 같다느니 저마다 한마디씩 거든다.

캘리포니아에 객원교수 자격으로 머물면서 이곳 잭슨빌에 거주하는 제자를 잠시 방문한 박우서 교수(연세대 행정학과)와 부인 임유신 씨는 예배를 꼭 한번 참석해서 성도들을 만나보라는 제자의 간청에 일정을 미루기까지 했다. 박 교수 부부는 “성도들의 표정이 너무 밝고 활기 넘친다”고 감탄하면서 여러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기에 바쁘다.

주일이 기다려지기는 주일학교나 중고등부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중고등부 학생들은 식당이 좁은 탓에 어른들 예배 시간에 분반공부와 식사를 먼저 마치고, 어른들의 예배가 끝이 나면 2층 본당으로 옮겨 오후 1시 30분 영어예배를 드린다. 주일학교와 중고등부에 속한 자녀의 활기 넘치는 교회생활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감회는 남다르다.

“어른들의 신앙생활과 아이들의 신앙생활이 함께 가는 것인 줄 몰랐다. 아이들 세계에서 한 번쯤 따돌림을 당한다거나 불만이 있을 수 있는데 여태껏 불평이 없는 게 묘하다.” 열여섯 살 딸(이지연, 미국 이름 Annie Lee)을 둔 이충환 집사의 말이다.

중고등부를 포함한 영어예배를 끝으로 공식적인 주일예배는 오후 3시경에 끝이 나지만, 성도들은 예배당 주변을 맴돌며 떠나갈 줄 모른다. 헤어지는 게 아쉬워 예배당 주변을 전전하는 풍경을 놓고 스스로들 ‘참새 방앗간’이라 표현하며,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면서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운다.

백발이 성성한 왕규웅 장로는 아예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갈아입고 쓰레기 치우기에 나서고, 왕 장로의 아내인 조부자 권사는 방송반에서 준비한 예배 실황을 녹화한 CD를 담은 봉투에 정성스럽게 스티커를 붙이며 발송 작업을 돕는다. 방앗간을 맴돌던 성도들 중에는 해질녘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예배당 마당을 한 번 더 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열성 참새(?)들도 있다. 이처럼 성도마다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쁨이 넘쳐나 있다.

   
 
  ▲ 신앙생활 속에서 갈등을 경험한 이들은 건강한 교회에 대한 갈망이 남다르다. 건강한 교회를 위해 헌신을 다짐하는 성도들, 왼쪽부터 이충환, 이원구, 강동철, 황인승, 김광일, 황재중 목사, 이남훤, 왕규웅 장로, 서인숙, 김혜경, 이충현, 이용호 집사. (홍성종)  
 
성도마다 성전을 사모하는 기쁜 마음으로 넘쳐

지난해 2006년 4월에는 마침내 자체 예배당을 마련하고 8개 지역의 선교지를 지원하며 새로운 비상을 계획하고 있다. 중소도시 이민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급성장한 이 교회를 사람들은 주목하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주변 사람들의 소문을 타고 전해져, 잭슨빌 지역으로 이사를 계획하는 성도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만한 교회로까지 자리매김하고 있다.

예배당 구입 등 개개인이 갖게 될 헌금 부담을 마다하고 성도들은 굳이 개척교회와 같은 이 교회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교회의 차별화된 특징은 무엇일까?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성장 동인을 파악해보았다.

교회 태동의 싹은 4년 전 기존 교회 생활에 갈등을 느끼던 네 가정이 모여 성경을 공부하면서부터 움트기 시작했다. 이들은 고민 끝에 교회 분열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숟가락 하나에도 미련을 갖지 않고 오랫동안 섬기던 교회를 뒤로 하고 나왔다. 소원은 단 한 가지, 복음 이외에 어떤 갈등도 없이 온전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회 공동체를 일구는 것이었다. 그러나 건강한 교회를 꿈꾸며 광야의 길을 헤매던 이들에게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한 교회는 한낱 이상일 뿐일지 모른다는 좌절감이 몰려왔다. 교회 창립을 도모했던 이남훤 집사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2003년 10월 PCA 가을노회에 청원을 해서 교단에 가입한 후 목회자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때 재정은 달랑 200불, 사실은 목회자가 부임한다 해도 다음 달 사례비나 임차료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우리는 그 당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많이 지쳐 있었다.”

같은 시기에 중부노회에서 동남부노회로 전입하고 단독 목회를 계획하던 황재중 목사(현 담임목사)는 노회 서기로부터 잭슨빌벧엘장로교회를 소개받았다. 그렇지만 주변의 선배 목회자들은 “대도시 교회에서 꿈을 펼치는 것이 좋지 않겠냐”며 만류했다. 황 목사는 노회에서 소개한 교회이기도 해서 한 번 잭슨빌을 방문하기로 했다. 인터뷰와 설교를 마친 황 목사는 “기도해보고 결정하겠다”며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답변을 건넸다.

“노회에서 보낸 목회자니까 당연히 오는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언제 오시냐고 묻기에, 기도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더니 성도님들이 굉장히 낙심을 한 거예요. 이것은 거절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렇지만, 기도도 안 해보고 어떻게 결정합니까?

기도했는데, 목회자들이 사역지를 정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으면 거역하기 어렵거든요. 목회자도 없이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 재정도 충분치 않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어요. 며칠 고심하다가 아내랑 상의한 끝에 도저히 안 되겠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곳이니 한번 해보자, 그렇게 결단하고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황 목사의 회고이다. 2003년 11월 한 달여 동안 황 목사는 애틀랜타를 오르내리며 주일예배를 인도하다가, 마침내 12월 16일 정식으로 부임하기에 이른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긍휼의 마음 갖고 사역지로 받아들여

부임 이후 황 목사는 알곡 같은 성도들의 전열을 재정비했다. 우선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려고 강한 제자훈련을 도입했다. 한 사람이 아쉬운 마당에 오히려 등록 교인의 요건을 강화하여 6주 프로그램으로 짜인 기본교리를 다시 공부하게 하고,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 양육을 위해 지도자 훈련 세미나를 주말마다 개최했다.

성경 읽기 과정은 물론이고, 전 교인에게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책을 주기적으로 읽도록 독려했다. 성도들이 시간을 못 내면 성도들의 시간에 맞춰서 성경공부를 시켰다. ‘벧엘신학원’, ‘예수사관학교’라는 별칭이 이때 생겨났다.

교회 운영은 갖은 유혹을 뿌리치고 성경에 입각한 원칙을 지켜갔다. 학연과 지연을 물리치고, 목회와 재정을 엄격히 분리했다. 심지어는 어렵게 개척교회를 한다며 한국에서 친지들이 보내오는 목회자 개인 명의의 생활비도 교회 재정에 넣었다.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목회자이기 때문에 받게 되는 지원이라며, 모두 교회에 속한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심방 중에 관례로 받는 촌지도 정중하게 사양했다. 거절해도 극구 건네는 돈에 대해서는 성도의 이름으로 감사헌금을 했다.

목회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도 바로잡아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어가기 위해 세운 말씀을 가르치는 직분에 지나지 않으며, 목회자 스스로 성도들로부터 존경심을 갖지 못하면 사역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목회자의 재신임을 묻도록 스스로 내규를 제정했다.

그리고 성도들과 함께 기도에 매달렸다. 새벽기도는 물론이고, 화요일, 토요일 중보기도 모임을 비롯해 주일 아침에는 예배를 위한 기도를 마련하고, 예배 중에도 참석한 회중 모두가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어려운 재정 형편이지만 2세 교육을 위한 전담 사역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성도들을 설득해서 1년간의 기도를 통해 마침내 2005년 8월에 엄준섭 강도사를 청소년 교육 전담 사역자로 세웠다.

2006년 4월에는 현재의 예배당을 구입해 옮겨 또 한 번 주변을 놀라게 했다. 교회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김혜경 집사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체험했다고 말한다.

“재정은 머릿속의 숫자 놀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 생각한다. 어렵고 힘들지만 교회가 부흥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았다. 불과 두 해 전에 임차료를 걱정하던 우리 교회가 예배당 구입을 결정하자 모두들 무리수를 둔다고 생각했다. 누가 많이 헌금한 게 아니고 모든 사람이 참여해서 기도하며 이룬 기적이다.”

김 집사는 예배당 이전 과정에서 보여준 황 목사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예배당 이전 결정에서 다수결의 원칙은 안 된다는 거였다. 한두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안 된다며, 전 교인들이 마음을 합하여 예배당 이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성도 중 어느 한 사람도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고, 예배당 구입이라는 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 황재중 담임목사와 엄준섭 강도사. 이들은 교회가 어려운 과정에서 목회자로서 실천적인 희생을 통해 짧은 기간에 주목 받는 지역 교회로 성장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홍성종)  
 
목회와 재정 분리하고, 재신임제 도입

교회 재정비를 위한 이러한 강력한 추진 과정에서 반발과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등록 교인 요건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6주 프로그램은 문턱이 높다며 거부하는 성도도 있었다. 바쁜 이민 생활에 쉴 새 없이 계속되는 성경공부와 세미나에 불평도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황 목사를 내조하는 원길사 사모는 원칙만을 고수하는 목회자 탓에 혹시나 성도들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예의주시하며 차분하게 감싸나갔다. 결국 젊은 목회자 부부의 열정과 헌신에 성도 모두는 차츰 감동하였고, 마침내 목회자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서인숙 집사는 “처음에는 성경공부가 많아 힘들었다. 다른 교회에 9년 출석했지만, 과거 2~3년 동안 배운 게 훨씬 많다. 요즘에는 2월 개강을 앞두고 잠깐 쉬는데 ‘왜 아직 시작 안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라고 말한다.

황 목사 부임 시절 교회를 찾은 왕규웅 장로는 문턱이 높았던 교회에 오히려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플로리다 멜본(Melbourne) 지역에서 이곳 잭슨빌로 이사를 오기 전 8개월 동안 이단 시비에 휩싸인 목회자를 만나 많은 번민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남훤 집사의 권유로 2004년 2월 23일 교회가 없어 상업지의 회의실을 빌려서 드리던 마지막 예배에 참석했다. 스물세 명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더라. 목사님이 설교하는데 처음에는 뒷자리에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 있다가 차츰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런 목사님도 계시는구나’ 싶었다.

우리 부부가 당장 등록하겠다고 했더니 등록을 안 받아주더라. 일단 다른 교회에 다녀보시라 했다. 무슨 소리냐? 내가 다니고 싶으면 다니면 되는 것 아니냐? 6주간의 교육 과정을 마쳐야만 등록 교인으로 인정한다는 거였다. 상당히 기대가 되더라. 사실 한국에 있을 때, 대형교회 수석장로로 일하면서 총회나 노회 일을 했기 때문에 목회자의 세계를 어느 정도 아는데, 이민 사회에 이렇게 순수한 목사가 있구나, 6주 과정을 통해 새롭게 발견했다.”

왕 장로는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바른 교회를 섬기는 심정으로 매일 매일의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하며, “목회자 스스로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너무 감사하다”고 술회했다.

텍사스에서 10년 이상 교회를 섬기다 이사 온 강동철 집사 역시 “성도들이 마음이 따뜻하고 하나같이 열망이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더라”고 말하며 “말씀으로 연단을 받으니까 세속적인 것은 작아지고, 복음 중심으로 뭉쳐 이민 교회가 갖는 갈등을 찾아볼 수 없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목회자의 자질 문제로 많은 갈등과 실망을 해온 이원구 집사는 “이민생활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만남의 시작과 끝이 교회 속에 있다.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면 삶 전체가 일그러지는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하며, “황 목사는 복음을 향한 열정이 남다르고, 바른 리더십을 발휘해서 사역을 세분화시키고 위임해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평가했다.

이민 생활 속에서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면 삶 전체가 일그러져

오랫동안 몸담아 온 기존 교회에 회의를 느끼고 문제의식을 갖게 될 때, 성도 자신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목회자나 교회 운영에 대한 문제제기는 곧바로 하나님을 향한 불만이라고 등식화하거나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찾아 의견을 나누면 곧바로 파당을 짓는 것으로 여겨지는 풍토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성도 자신들도 교회 간 수평 이동에 대한 따가운 시선과 부담을 잘 알고 있다. 더군다나 공동체 생활 속에서 쌓아온 돈독한 인간관계를 뒤로 하고 땀 흘려 섬겨온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는 번민과 고통은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존 교회의 일방 주입식 복음 전달과 강요된 순종 때문에 내면의 갈등을 느낀 성도도 있다. 교회 성장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도들을 순종이라는 미명하에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는 현실에 회의를 느낀 이충현 집사는 이 부문에 대해 갈등하다가 깨어났다.

“교회마다 순종을 강조한다.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라는 식이다. 어떨 때는 의문이 들더라. 한 번은 부흥회 때, 다른 교회 주일예배 시간을 이용해 주차장에 가서 자동차 와이퍼에 광고지를 끼워 넣고 오라고 했다. 아내에게도 시켰다(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숙연해졌다). 그 교회 허락을 받고 나서 정식으로 해야 하는데, 몰래 하게 한 것이다. 이것은 순종의 마음이 아닌 단순한 복종과 굴종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었다.

순종의 이면에는 성도들이 똑똑하면 안 된다는 암시가 있었다. 어느 순간에 교회를 옮겨야 된다고 맘먹고 있던 중에 벧엘장로교회의 말씀을 구해서 들어 보았다. 기억나는 말씀은 ‘구부러진 것을 증명하려면 다른 방법보다 오직 곧은 것을 가져다 놓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배워왔던 것과는 가르침의 내용이 다른 게 많았다. 황 목사님은 사람들의 기초를 다지고, 지도자 훈련을 많이 시킨다. 이 교회에는 어떤 면에서 사람을 똑똑하게 만드는구나 생각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스스로 판단하게 하고, 스스로 따르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종을 강조한 이면에는 성도들이 똑똑하면 안 된다는 암시 있어

벧엘장로교회는 단순하게 수적인 증가만을 이룬 것이 아니다. 성도 개개인의 내적인 부흥에 더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특별히 성경 말씀에 비추어 진리와 비진리를 구별하게 하고, 인본주의 신앙관을 분별하도록 성도들을 일깨우고 있다.

교회 지도자들의 정치적이고 세속화된 교회 운영을 보고 괴로워했던 이용호 집사는 자신의 변화를 이렇게 표현한다. “한국에서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이전에는 은혜스럽게 생각하면서 들어왔다. 근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극히 인본적이면서 세속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요즘엔 그러한 설교들이 귀에 거슬린다. 이제는 본질을 확실히 알 것 같다. 영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유년주일학교 이후 한결같이 교회를 섬겨온 황인승 집사는 이민생활에서 공교롭게 개척교회만을 전전하며 일꾼이 없다는 이유로 궂은일을 도맡아 해왔다. 아무리 발을 빼려 해도 앞뒤 좌우를 둘러봐야 일할 사람이 없었다. 정작 기쁜 마음이 아닌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회의가 들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 여기며 묵묵히 봉사해 왔다. 그런 그를 매번 허무하게 만든 것은 목회자의 자질 문제였다.

“신학 교육을 받은 사람, 기도하고, 부흥회를 인도하고 다니는 사람이 저럴 수 있는가, 하나님이 과연 계신가 하는 신앙적인 갈등이 있었다. 지역을 옮길 때마다 신문 지상에는 유명한 목회자로 알려져 있어서 찾아가 보면 이런 분이 이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미국 교회로 가자 해서 얼마간 다녀보았다. 그런데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결국 개척교회는 다시는 돌아보지도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또 한 번 교회를 옮겼다. 그를 이곳으로 이끈 이유는 간단하다. ‘선과 악을 구별하는 확실한 판단이 있는 목회자’라는 생각 때문이다. 작은 교회라 개인마다 갖게 될 부담도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았다. 비즈니스를 새로 시작한터라 여러 가지로 복잡했다. 그러나 모두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 그동안 부부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어온 갈등의 터널을 빠져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벧엘장로교회 사람들을 만나 신앙생활에 대한 그들의 갈등과 열망을 들을 때마다 탄식과 안도감이 뒤섞였다. 이 교회의 성장은 그동안 교회 내에서 소수 담론으로 묻혀버리거나 금기시되어온 문제의식을 쉽게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건강한 교회를 이루고자 한 성도들의 열망이 밑거름이 된 결과이다. 또한, 정직하고 겸손하게 교회를 섬기며, 전문 사역자로서의 소명의식이 분명한 목회자들이 함께 만나 꽃피운 것이다.

‘오직 믿음,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자’라는 개혁의 기치를 드높이 세운 잭슨빌벧엘장로교회. 이 지역 교회가 오늘날 교계와 세상을 향해 높이 세운 돛은 대서양 해면 위를 거쳐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지금도 펄럭이고 있다. 이 항해가 순풍과 역풍을 맞으며 어떤 변화를 거듭하게 될지 건강한 교회를 바라는 우리 모두는 희망의 눈으로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인터뷰] 황재중 목사 "목회자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기 위한 도구일 뿐"

   
 
  ▲ "인간은 누구가 죄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건강한 생각을 가진 사람도 더러운 물 안에 들어가면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죄성을 억제하는 시스템을 세워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홍성종)  
 
황재중 목사는 토목공학도의 꿈을 안고 미국에 건너와 뒤늦게 인생의 방향을 바꿔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젊은 날에는 인생의 문제를 안고 번민하다가, 자기 발로 교회를 찾아온 특이한 신앙 입문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정체성의 확립 없이 혼돈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확고한 세계관을 정립하는 것에 중점을 둔 목회를 하고 있다. 또 목회자의 타락으로 일그러진 교회를 바로 세우고자 목회자로서 자기 인식과 역할에 대해 명확하고 투철한 소명의식을 잃지 않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마련하는 등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를 만나 성도들과 함께 단기간에 잭슨빌벧엘장로교회를 주목받는 교회로 이끌어온 과정을 들어보고, 이 시대의 건강한 교회를 위한 그의 노력과 도전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복음주의적이며 개혁주의적 교회라는 슬로건을 주창한 이유는.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라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받은 개혁주의 신학을 기본적인 바탕으로 삼는 교회라는 뜻이다. 우리 교회가 성격이나 앞으로 추구해나가는 정신이 개혁주의적인 기치, 슬로건을 이어가자는 차원에서 ‘개혁주의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목회 철학은 무엇인가.

거창한 것은 없다. 항상 스스로에게도 다짐하고 늘 아내와 이야기하는 것은 초심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안에서의 목회자의 위치는 무엇인가? 결코 소유자의 위치로 있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워가기 위한 도구로서, 그리고 말씀 사역자로 세워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명에 맞추어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최우선을 둔다.

목회자로서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재신임을 받기로 했는데, 이 제도를 스스로 도입했는가.

그렇다. 우리 교회는 목회자뿐만 아니라 장로님들도 재신임을 받도록 했다. 장로교단에서는 목회자도 엄밀한 의미에서 장로이다. 다만 역할에 따라 교회 살림을 맡아 치리하는 시무장로와 말씀 사역을 전담하는 강도장로(teaching elder)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장로님도 재신임을 해야 한다면 목회자도 당연히 재신임을 묻는 것이 공평하다. 그런데 이것이 교단법과 다소 상충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굳이 선임 절차를 따지면, 장로님들은 교인들이 선임하는 것이고, 목회자는 노회가 선임하게 되어 있다. 엄밀히 보면 목회자의 신임권은 노회의 권한이다.

그렇지만 성도들로부터 신뢰 받지 못한 상태에서 사역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칫 잘못하면 인본주의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재신임 제도는) 목회자에게 좋고, 성도들의 신뢰가 있을 때 담대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신뢰 받지 못한다면, 운신의 폭도 좁고, 나름대로 사명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재신임 제도는 저에게도 나태해지지 않고 자신을 항상 돌아보게 한다.

목회는 인간을 향한 거룩한 경영이라는 말이 있다. 제자훈련에서 중점을 두는 점은 무엇인가.

목회자가 다루어야 하는 영역들이 많다. 목회자에게 주어진 은사와 소명이 다르다. 하나님께서 저에게는 가르치는 은사로 사역의 방향을 잡아주셨다.

제가 사역자로서 두세 교회를 거쳐오면서 하나님께서 사역의 방향을 세워주셨는데,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역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셨다. 한 번은 문 닫을 처지에 놓인 교회를 섬겼는데, 어느 목사님이 부임한 이후 철저하게 말씀으로 양육하면서 지금은 그 지역에서 가장 건강한 교회로 발돋움했다. 그 교회에서 5년 정도 전도사로 일하다가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말씀 사역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어느 교회로 부임하든지 말씀 사역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훈련과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교회 직분이 너무 쉽게 주어질 경우 교회에 덕이 안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직분자, 소그룹 리더, 팀장들이 단순한 열심뿐만이 아니라 교육하고 훈련 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서너 가지 영역으로 나눠 같이 공부한다. 책을 선택해서 일방적인 세미나 형태가 아니라 그룹 토론을 통해 각자 발표하게 한다. 이것은 이민 교회가 꼭 갖춰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주일예배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

예배란 특정한 장소에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예배일 것이다. 담임 사역을 하면서 많이 느끼는 것이 주일예배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일반교회들이 주일예배에만 비중을 너무 많이 주는 것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팀장이나 직분자 등 교회에 헌신하는 분들은 자주 만날 수 있지만 일반 성도들은 한 번 예배를 드린다. 그때 받을 것을 받아야 한다. 이상적으로 보면 어느 예배나 동등한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주일예배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배를 돕는 분들과 중보기도팀에게 주일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함께 기도한다.

감사한 것 중 하나가 성도들이 예배를 통해 실망을 했다는 분은 아직껏 없다. 우연히 방문한 분들도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았다고 할 때, 개인적으로 보람을 느끼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재정 규모가 넉넉하지 않는데도 2세 교육을 위해 전담 사역자를 모셨다고 들었다.

사실은 이것이 작은 교회가 지닌 딜레마이다. 대형교회라면 전도사님을 풀타임으로 모실 수 있지만, 작은 교회에서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교육 사역자는 어떤 형태로든 모셔야 한다. 재정이 다 되어서 모시면 이미 늦은 것이다. 우리는 1년을 기도했다. 엄준섭 강도사를 어렵게 모셨으나 처음에는 풀타임으로 사례를 하지 못했다. 사모님이 따로 일하시면서 보완하다가, 2007년부터 정식으로 사례를 드리고 있다.

작은 교회인데 여덟 곳이나 선교 지역을 지원하고 있고, 선교 비전 트립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던데.

한국, 태국, 중국, 네팔, 멕시코 지역의 선교사님을 후원하고 있다. 우리 성도들에게 선교를 향한 열정이 있다. 우리 교회를 통해 집중적으로 선교 사역을 할 수 있는 특정 지역, 민족, 나라를 발견해서 거기에 맞추어 선교 사역을 조정하고자 하나님께 구하고 있다. 미국에 있는 이민 교회가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선교할 수 있지만, 지정학적으로 볼 때 가장 효율적으로 선교할 수 있는 곳이 남미 쪽이 아닌가 한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 앞으로 선교에 필요할 것 같아 공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남미 지역을 정해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교 대상 지역만 허락해주시면, 먼저 팀장들과 함께 지역을 탐방하고, 그 지역의 선교사님들, 선교기관과 함께 계획을 세울 것이다. 일단 선정이 되면 우리 세대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세에도 지속적으로 선교가 이어지도록 할 계획이다.

목회자로서 오늘날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바른 인식이 부족하다. 세상에 나가서도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이 분명치 않기 때문에 구분이 안 되는 삶을 사는 경우가 있다. 우리 교회의 멤버십 과정은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심어주려고 도입한 것이다.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나라에 속한 자로,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강조한다.

또한 교회 안에서 리더십 훈련도 필요하다. 팀장님들에게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강조한다. 그래서 타 종교와 타 문화권은 무엇이고, 우리의 세계관은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이 차이가 나기에 전도하는 데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는가? 저부터 공부가 많이 되고, 참여하는 분들이 어렵지만 참 중요하다고들 말하고 있다. 타 종교를 이해해야 전도와 선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회를 옮겨 오는 성도들은 그 교회 목회자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날 성도들의 수평 이동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처음에는 (전화하고) 그랬다. 그런데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한 분과 그런 말씀을 나눴더니,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그럴 필요 없다 하더라. 이미 교인 한 사람이 교회를 옮기면 목회자가 누구보다 먼저 아는데, 그렇지 않아도 속상한데, 타 교회 목사가 그 교회에 속한 성도가 여기 왔습니다, 그럴 필요까지 없다는 거다. 듣고 보니, 너무 형식적이고 의식적이지 않느냐 해서 어느 순간부터 안 하게 되었다.

교회와 교인간의 수평 이동은 이상적이지도 건강하지도 않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각각의 교회가 건강해서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게 좋은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 제일 심한 경우는 목회자를 신뢰할 수 없을 때, 성도들이 갈등을 많이 하게 된다.

수평 이동은 지역과 환경에 따라 대처하는 방안이 다를 수 있다. 예를 들면, 휴스턴의 서울침례교회 같은 경우 사역의 중점을 수평 이동으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지양하고 불신자를 전도해서 그들로 하여금 교회 성장을 하도록 한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문제가 생겨 성도가 찾아올 때에 “다른 교회로 가십시오”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물론 저 자신도 수평 이동보다는 전도해서 불신자로 전도하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 교회는 문턱이 높다고 소문이 나 있다. 기존 교인으로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정말로 오시겠다고 하신 분들만 오신다.

초창기 재정이 어려울 때 한국에서 친지들로부터 보내온 생활비조차 교회 재정에 포함했다던데.

목회와 재정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목회자들이 타락할 수 있는 영역 가운데 하나가 금전적인 문제이다. 사람인지라 그런 위험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교회 안에 건강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죄성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건강한 생각을 가진 사람도 더러운 물 안에 들어가면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죄성을 억제하는 시스템을 세워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목회자는 교회에서 주는 사례비만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다른 교회에 가서 부흥회나 강연을 해서 받게 되는 사례비도 제가 잘나서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가 존재해서 목회자로서 받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에 속한 것이 아니라, 교회에 속한 것이다. 헌금이라고 명명하기보다 교회 것이라는 표현이 맞다.

심방 때 목회자들이 관례로 받는 심방 감사 사례도 거절하는가.

초창기에는 건네는 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경우가 없다. 한국적인 신앙 배경에서 목회자들이 심방 가면 사례비를 주는 경우가 있다. 저는 건네는 분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거절하거나 마지못해 받았을 때 교회에 그분 이름으로 감사헌금을 한다. 그래서 줘 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성도들이 안다.

공학도의 꿈을 포기하고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무엇인가. 또 어려운 교회를 섬기면서 사모의 역할 또한 중요할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말씀.

흔히 어려운 일을 통해 목회의 길로 들어선 분들이 많은데, 저는 유학 와서 휴스턴에서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주일학교 11학년을 맡았다. 한국말로도 성경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데, 영어로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친다 생각하니 1시간 공부를 위해 거의 이틀은 성경을 붙잡고 씨름했다. 그렇게 한 2-3년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생각이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바뀌었다.

토목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더 나은 교수 생활을 한다는 것이 그 당시 별로 의미가 없더라. 인생의 목적을 바꾸다 보니까 사역자 쪽으로 진로를 정했다. 저 자신은 목회자가 되는 것이 뭐가 어렵나, 하나님이 명하면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 원길사 사모는 원칙과 소신으로 목회하는 남편 곁에서 온화한 성품으로 성도들을 섬기어 성도들로부터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고 교인들은 전했다. (홍성종)  
 
문제는 아내였다. 어렸을 때부터 장로 가정에서 자라 목회자의 세계가 어떤 것이고, 사모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옛날부터 ‘사모’감이라는 이야길 많이 들었는데, 자신은 그때마다 저는 사모가 안 된다고 했다 하더라.

갑자기 공부하다 말고 목회자가 되겠다고 하니까 많이 반대했다. 1994년에 결심했는데, 2년 동안 고민했다. 그러나 1996년 신학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이 기간에 하나님께서 사역을 재확인시켜 주시고, 제 아내를 준비하게 하는 기간이었다.

휴스턴에서부터 세인루이스, 애틀랜타를 거쳐오면서 네 교회를 거쳤다. 평신도로 있을 때나 사역자로 있을 때나 제 주변의 사람들은 저보다 제 아내를 더 좋아한다. 목회를 하면서 제가 못 보는 부분을 아내가 발견하고 감싸고 있다. 저의 부족한 부분을 분에 넘치도록 자연스럽게 보완해 준다. 또 감사한 것은 처가 쪽에서 저희 교회를 위해서 많은 기도 후원을 해주신다는 것이다.

잭슨빌벧엘장로교회 홈페이지 : www.betheljax.org
연락처 : 교회 (904) 260-3670, 황재중 담임목사 (904) 228-0230, 엄준섭 강도사 (904) 735-0541
주소 : 9776 San Jose Blvd., Jacksonville, FL 3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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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앙겔리온 2011-04-07 12:13:23
test

자유인 2008-11-21 07:31:11
일하는 중에 잠깐 읽어보았는데 안타까울 뿐입니다.다음에 기회가 오면 의견를 나누겠읍니다. 소망엔조이님 글 잘 읽었읍니다.

자유인 2008-10-30 12:31:54
목회자의 주일 설교에 빠져 성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신실하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목적 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지극히 높여주신다는 얘기죠.무엇을 개혁하자는 겁니까? 주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교인들은 곧 당신의 모든것을 바라보는 그리스도 일수도 있읍니다.언제부터 예배의 중심에 목사의 설교가 전부인것처럼 되었읍니까? 목사가 성경를 알면 얼마나 압니까? 자기가 살아온 삶의 주간적인 눈으로 해석 하겠지요. 엄숙이 예배의 주 목적입니까? 예배에 참석한 회중의 맑은 눈이 아름다운 설교입니다. 댓글 읽다보니 이런들도 적어보내요, 잘읽었읍니다. 소망엔조이님 신앙인이 된다는것 참으로 힘듭니다. 어느날 갑자기 부름받아 나선 그많은 신학생들 다 목사가 될텐데, 모든 분들께 평안함이 함께하길 진심으로 기도 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