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와 '공산주의자'
'성자'와 '공산주의자'
  • 강희정
  • 승인 2007.02.2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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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은 안식년의 해다. Jubilee USA Network은 2000년에 이어 올해를 안식년으로 선포했다. 성경의 레위기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7년마다 안식년을 지켜야 하며, 50년째가 되면 희년을 지키도록 되어 있다. 안식년이 되면 땅과 작물과 가축들이 쉬고 희년이 되면 모든 빚은 탕감된다.

   
 
  ▲ Jubilee USA Network 사람들을 맞고 있는 잠비아의 어린이들. (Jubilee USA Network 웹사이트)  
 
Jubilee USA Network은 미국 내에 있는 80여 개의 각 종파 및 인권·환경·노동·지역 단체들이 연합하여 만든 단체로서, “손에 손잡고 빚의 고리를 끊자”(Joining hands to break the chains of debt)라는 표어를 내걸고,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 지역 등에 만연한 가난과 부정의를 척결하기 위해 가난한 나라들이 안고 있는 부채를 완전히 청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일례를 들면, 현재 이 단체는 아프리카에 있는 잠비아라는 나라가 한 벌쳐펀드(저평가된 부동산을 싼 가격으로 매입하기 위해 운용되는 투자기금)로부터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 개입하고 있다. '도네갈 인터내셔널'(Donegal International)이라는 이름을 가진 벌쳐펀드는 1999년 잠비아 정부로부터 원가는 1,500만 불이지만 당시 싯가로 3,000만 불에 상당하는 자산을 330만 불이라는 헐값에 사들였다. 그리고 이제는 잠비아 정부에게 이자와 비용까지 포함하여 5,500만 불을 요구하는 소송을 걸었다.

런던 법원은 도네갈 인터내셔널이 요구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기각했지만, 법률적으로 그들은 잠비아 정부로부터 돈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그 금액은 향후에 런던 법원에 의해 결정될 예정이다. Jubilee USA Network은 이 벌쳐펀드에게 2,000만 불 이상을 요구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그들은 심지어 전화조차 제대로 받고 있지 않다고 한다. Jubilee USA Network은 많은 사람들이 영국의 사회 단체와 그 벌쳐펀드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어 이 운동에 동참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이처럼 Jubilee USA Network가 가난한 나라들의 부채 청산에 주력하는 이유는, 이것이 오늘날 새로운 노예 제도가 되고 있다는 인식에서이다. 부채 노예(Debt Slaves)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미국과 같은 부자 나라들과 IMF나 월드뱅크와 같은 국제금융기구가 요구하는 이자조차 갚을 수 없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을 말한다. Jubilee USA Network은 많은 사람들이 이 현실을 깨닫게 되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연합하여 희년의 정의를 실현하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 단체는 2015년까지 가난한 나라들이 안고 있는 현재의 부채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목표 달성은커녕 오히려 현실은 그 반대로 나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 예로, 사하라 사막 주변에 있는 극도로 가난한 나라의 경우를 보면 1990년 이래로 지금까지 빚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레위기 말씀에 이스라엘 구약 공동체가 지키도록 되어 있는 안식년과 희년 제도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지켜야 할 규범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복음 4장 18-19절에서 예수님이 억압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희년을 선포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희년의 비전은 예수님 사역의 중심이었으며,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새롭게 되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준다.

시인이자 가톨릭 사회 운동 지도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로즈 마리 버거(Rose Marie Berger)에 따르면, 구약에 나오는 고대 이스라엘의 안식년과 희년의 전통이 사회 정의를 위한 기독교적인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그녀는 사회 정의와 사회적 자선 사업은 기독교 전통의 수평적인 축을 이루고, 개인적인 거룩함과 개인적 구제 사업은 수직적인 축을 이룬다고 한다. 이 네 가지 요소들은 개인이나 공동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따라 사는 데 조화롭게 기여한다는 것이다.

로즈 마리 버거는 “무엇이 사회 정의를 이끌어가는가?”(What is the heck of social justice?)라는 제목의 글에서, 기독교인들이 개인적인 거룩함과 구제에도 힘써야 하지만, 사회적인 자선 사업과 사회 정의 운동에도 참여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사회적 자선 사업과 사회 정의는 공동의 선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사회적 자선 사업에 대해서는 호응을 하지만, 사회 정의를 위한 노력에는 거부감을 가진다. 브라질리아의 가톨릭 대주교, 헬더 카마라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내가 가난한 사람을 보살피면 그들은 나를 성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내가 왜 그들이 가난한가 하는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나를 공산주의라고 부른다.”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자선 사업과 사회 정의를 위한 운동은 분리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로즈 마리 버거에 따르면, 이 두 가지를 분리하는 일은 사람의 몸에서 심장을 떼어내는 것과 같이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적 자선 사업은 사회악의 효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며, 사회 정의는 사회악의 원인을 치유하는 것이다.

사회 정의의 원리는, 기독교인들이 서로 연합하여 행동함으로써 각 사회 체제(정부기관이든 사적인 기관이든)가 공동선을 위해 기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회 정의는 거의 대부분이 경제적인 문제와 사회 정책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사회 정의의 문제는 “이 시대를 분별하라”(마 16:3)고 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사회 경제 정책을 세심하게 분석하는 것과 관련된다.

안식년은 사회 정의와 교회 윤리의 문제를 재정립하기에 좋은 해이다. 올해 우리 기독교인들은 Jubilee USA Network와 같은 단체들이 벌이는 세계적인 부채 탕감 운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주변에 고통받는 이웃들의 문제가 해결되도록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구세군 사업에 주력했던 에반제린 부스의 말처럼, 우리가 사회 정의를 위해 하는 운동이 “비단 사회적·정치적·경제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구속의 복음을 온전하게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덧붙이는 말: Jubilee USA Network에 대하여 더 알기 원하시는 분은 그들의 웹사이트(www.jubileeusa.org)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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