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들
잃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들
  • 정양오
  • 승인 2007.03.01 0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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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선교사들을 만나볼 요량으로 '선교사 도움방'(TMS International)에서 개최하는 모임에 참석하였다. 중국에서 일하다가 안식년으로 국내에 온 한 선교사님의 잔잔한 이야기가 가슴을 무겁게 하였다. 아마 이런 증세는 두말할 필요 없이 동병상린(同病常鱗)인 것 같았다.

선교사님은 유학생과 교포 중심 한인 사역을 주로했기 때문에 현지인을 상대로 하는 사역자들에 비하면 너무 편안한 생활을 한 것 같아 부끄럽다고 하였다. 국내에 온 지 3개월이 넘었는데, 처음으로 공개적인 모임에 나왔다고 하였다. 오라고 환영하는 데도 없고 마땅히 갈 곳도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 사역이 정상 궤도에 오르고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원이 든든한 큰 교회에서 파송한 사역자에게 사역을 넘기고 안식년을 지내며 새로운 일을 구상하고 있다고 하였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가정 사정,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어쩔 수 없이 선교사 자신의 몫이라는 짤막한 항변은, 그가 인생의 중요한 한 토막을 바쳐 사랑했던 선교지를 뒤로 한 채 왜 사역을 접으려고 하는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었다.

자신은 하나님이 주신 천부적인 무쇠이고 선교지가 안식지라고 자처하고 안식년을 한 번도 갖지 않았던 K선교사는 어느새 지천명(地天命)을 지나면서 자기도 모르게 무력감에 빠져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심한 우울증 증세를 동반한 갱년기를 지나는 여선교사와 함께 부랴부랴 안식년을 찾아 국내에 들어왔지만 반겨주기는커녕 참 수고했다는 위로 한마디를 들어볼 수 없었다. “국내 담임목사들은 20년, 30년 목회해도 안식년 구경도 못하는데 선교사가 무슨 안식년이냐, 사치다”라고 핀잔 반 꾸지람 반 얘기를 듣고 그는 아연실색하였다고 한다.

최근 이랜드 클리닉이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현직 선교사와 선교 지망생 9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리 검사 결과를 분석해보니, 검사 대상자의 상당수가 심리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선교지에 파송되기 전이나 안식년을 맞은 이들에게는 바쁜 교육 일정을 주기보다는 충분한 휴식을 통해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앙의 힘으로 살아가는 선교사들도 육체를 지닌 한 사람인 만큼 이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에 한국 교회가 보다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참 일리가 있는 얘기이다. 그러나 충분한 휴식도, 재충전도, 공부도 모두 재정이 따른다. 어떤 면에서 물가가 터무니없이 비싼 국내에서의 생활은 또 한 번의 문화 충격이다. 말머리에 언급된 선교사님의 경우 사역을 안 하고 쉬기 때문에 후원 교회에서 선교비를 절반만 주겠다고 했단다. 어떤 분은 그러기 때문에 자비량을 하라고 충고하였다. 파송 단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안식년 선교사들에게 드는 예산을 줄여보려고 하는 것이 옳은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뿐만 아니라 무작정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최선의 휴식은 아니다. 유명세가 있거나 섭외 능력이 있는 몇몇 선교사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선교 보고나 도전을 위해 마땅히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정보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안식년 선교사 케어가 말로만이 아니라 세심한 곳까지 돌아보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뭔가 기대해 볼 양으로 12년 만에 찾은 나의 안식년도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선교지 현지에서 이미 이러 저런 안식년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에 조금도 당황스럽지 않다. 혹시나 내 입술에서 감사보다 불평이 있지 않은지, 그냥 흘리는 말 한마디 글 한 줄이 조심스럽다. 기도하는 것이 언제나 최선의 방책일 뿐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조국의 아름다운 산들을 자주 오르며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다. 작은 원룸에 서너 식구가 옹기종기 비둘기처럼 지내지만 찬양과 감사로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다 성장한 아이들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지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예배와 말씀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기도의 정확한 응답으로 주어진 이 선교사 안식관이 그저 귀하기만 하다. 기도를 많이 하시는 한 무명의 장로님 내외분이 노후를 위해 준비한 최선의 것을 선교사 이름으로 최고의 하나님께 드린 이 공간의 첫 거주자로서 영광을 누리게 된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누군가 말했듯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그 잃어버린 것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다. 세계 선교가 주님의 지상명령이고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이 사명 수행을 위해 선교사가 열정을 갖고 젊음을 불태울 때도 아름답지만, 복음 전선에서 순교하지 못하고 육체적으로 낡고 병들어 고국에 돌아왔을 때 더욱더 귀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정작 선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을 돌보지 않고 외면한 채 문전박대하면서 선교 대국 운운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주여, 저 볼품없이 구부러진 나무가 이 산을 지키듯 언제나 푸른 소나무처럼 주님을 향해 일생을 십자가 지고 따르다 구부러진 5대양 6대주의 선교사님들의 인생도 변함없이 푸르청청하게 선교지를 지키게 하소서" 기도한다.

정양오 / 남아프리카공화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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