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변신은 무죄?
미국의 변신은 무죄?
  • 양국주
  • 승인 2007.03.05 18: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국주의 세상 이야기 / '악의 축'을 '보물단지' 모시듯

코미디언 구봉서 씨가 "요건 몰랐지? 가갈갈갈…"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유명세를 탔던 때가 있었다.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감상하고 코리안 소사이어티가 이들을 환대하는 모습이 연일 미국 언론에 조명되면서 이 코미디가 연상된다. 엊그제 저들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면서 미국이 철벽 경호를 펼치는 의전과 환대가 상상을 넘어서고 있다.

북한을 대하는 미국의 변신은 가히 혁명적 발상이어서인지 미국 스스로도 놀라워하고 있다. 특히 북한 관리를 미국 조야에 석고 대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온 우파나 친미 인사들의 현란증은 가히 갈피를 잡지 못할 지경이다. 마치 북한 대표단이 "요건 몰랐지? 가갈갈갈…" 하며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최근까지 친북 좌파를 척결하고 친미 동맹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아온 한국 내 보수주의자들의 미국에 대한 인식은 혼란의 경지를 넘어서 일체의 판단 중지로 나서고 있다. 보수파의 행동반경이 미국의 입맛 맞추기에 급급한 탓이다. 미국의 의중을 살피고 코드에 맞추어 시청 앞에서 반핵 반김 집회나 김정일 화형식까지 치러낸 마당에 미국의 변신은 이들 우파 내지 보수파 인사들의 등에 비수를 꽂은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반핵 반김에 북한과 타협하는 미국을 비판하는 반미 집회까지도 해야 할 판이다.

지난 달 서울을 방문하던 중 뉴라이트 그룹의 정책 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참석자 대부분은 북핵 반대, 좌파 정권 종식, 친북 좌파 척결 등을 범우파의 행동 강령으로 채택하였다. 이들은 대중에 영합하려는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내용적으로는 친미를 전략적 목표로 삼고 있다. 결국 어떠한 형태의 반미도 친북 좌파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미국에 오래 살아온 초기 이민자들의 의식과 한결 같은 모습이다. 즉 미국을 불리하게 만드는 일은 북한을 이롭게 하거나 돕게 되는 일이므로 어떠한 형태의 미국에 대한 비판도 경계하는 저들의 태도와 하등 다를 바 없다.

나는 이 모임에 참석하면서 대일 결사 항전을 주장하던 단재와 박은식, 이동녕과 미국에 압력을 넣어 일본을 외교적으로 압박해나가야 한다던 도산과 우남의 의견을 거부하고 극단적으로 대치 형국을 벌였던 상해 임정을 떠올렸다. 한국의 우파는 정책은 있지만 전략의 부재를 드러낸다. 그들의 정책이라는 것도 실상 따지고 보면 미국의 힘을 빌려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자는 의견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시청 앞 광장의 행사장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등장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파의 정통성이 인정받기 때문이다.

작금 북한을 대하는 미국의 변신을 바라보며, 외교는 현실이요 생물적 변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최근까지 주미대사를 역임한 양성철 씨가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은 미국 정보 당국이 있지도 않은 사실을 부풀리거나 허위로 과장시킨 부분이 많다며 미국의 고의성에 무게를 둔 진실게임을 들고 나왔다. 전직 주미대사의 말인지라 안 믿을 수도 없고 믿자니 그동안 우파의 슬로건과 미국의 주장에 부분적으로 동조해온 처지가 부끄러워진다.

나이 들어 이 무슨 추태일까? 친미 인사들의 황당한 믿음은 결국 미국의 국가 이익에 놀아난 것뿐이라는 말이다. ‘미국은 양심적이고 좋은 나라’라는 믿음을 자존심처럼 지켜온 올드 타이머들의 친미 의식도 뒤집어 보면 여론 조작에 길들여진 엘로 페이퍼 수준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지저분한 세균이나 퍼트리는 '악의 축'으로 지목받던 북한 외교관을 무슨 보물단지인 양 떠받들고 숨겨 들어오는 모양새가 그동안 우파와 친미 인사들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머지않아 미국과 북한이 외교 관계를 구축하고 쌍방이 대사를 교환하는 로드맵까지 짜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이 북한을 쌍수 들어 환영하고 외교적 수사를 동원하여 부시 정권의 외교적 승리로 미화할 때 우파와 친미 반북 인사들의 벌레 씹는 표정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미리부터 연민이 느껴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