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쾰른에서 네 교회 한 몸 이룬 이야기
독일 쾰른에서 네 교회 한 몸 이룬 이야기
  • 박지호
  • 승인 2007.03.05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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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고 끝에 이룬 교회 통합…이민 사회 신선한 파장 일으켜

   
 
  ▲ 한빛교회는 매년 한 차례씩 쾰른일본교회와 연합예배를 드리고 있다. 2003년 9월 21일 주일예배에서 일본 교회 목회자는 "목사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서 과거에 일본이 저지른 모든 범죄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고백해 참석한 교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사진제공 최용준)  
 
1999년 6월 6일 독일 쾰른의 한 교회에서 보기 드문 사건이 일어났다. 이날은 쾰른에 있는 2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서로 다른 네 교회가 통합을 이루고 첫 번째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평소 절반도 차지 않던 큰 예배당이 각 교회에서 모인 교인들로 가득 찼다.

이후 유럽의 대표적인 교민 신문인 <교포신문>은 ‘분열이 만연한 한인 교회 및 교포 사회에 보기 드문 사건’이라며 대서특필했고 여기저기서 칭찬이 쇄도했다. 기독인들은 ‘하나됨을 회복해 교회의 영적인 권위를 회복시켜줘서 고맙다’며 칭찬했고, 비기독인들 역시 한인 이민 교회들의 분쟁과 분열의 소식만 접하다가 연합했다는 소식에 함께 기뻐했다.

만만찮은 통합의 과정

1998년 말로 거슬러간다. 당시 쾰른중앙교회는 담임목사가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어 후임 목회자를 찾다가 네덜란드에서 목회 중이던 최용준 목사를 청빙했다. 마침 같은 지역에 있는 비슷한 규모의 한 감리교회의 담임목사도 예기치 않게 귀국하게 되어 교인들은 후임 목사를 청빙하지 않기로 하고 쾰른중앙교회에 통합을 요청했다.

두 교회는 자연스럽게 교회 연합을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최 목사는 우선 양쪽 교회에서 각 6명의 통합위원을 선임해 연합을 위한 실무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가령 양쪽은 교회에서 쓰는 명칭부터가 달랐다. 감리교회는 남자 권사 제도가 있는 반면 장로교회는 여자 권사 제도가 있고, 장로교회는 ‘구역’이라고 하고, 감리교회는 ‘속회’라고 부른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따로 있었다. 최 목사가 부임한 쾰른중앙교회의 핵심 리더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시기상조라는 것이 이들의 이유다. 두 교회 모두 독일 법원에 등록된 법인체인데다 경험도 전무하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하자는 것이다.

두 교회에서 네 교회로…통합 급물살

   
 
  ▲ 한빛교회, 아프리카 교회, 독일 교회가 함께 연합 예배를 드리는 모습. (사진제공 최용준)  
 
통합을 위한 실무 회의가 난항을 거듭하던 중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근처에 있던 쾰른한인교회가 자체적으로 해산 예배를 드리고 조건 없이 통합에 동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담임목사가 스스로 사임하면서 성도들에게 통합할 것을 권면했고, 교인들은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쾰른 지역의 2세 청소년들을 위해 사역을 해왔던 담임목사가 2세들을 바로 키우기 위해서는 1세 교민들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절감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후 또 다른 교회가 통합을 요청했다. 세 번째로 통합하기로 한 쾰른한인교회에서 떨어져 나갔던 교회가 이 소식을 듣고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이 교회는 2주에 한 번 정도 다른 지역에 있는 목회자가 와서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목회자는 이미 섬기는 교회가 있었기에 별 문제가 없었다. 어느새 쾰른 지역 교회의 ‘하나됨’은 두 교회에서 네 교회로 확대되었고, 교회 통합은 탄력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두 개의 법인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하는 실질적인 과제를 남겨두고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했다. 한 법인을 없애고 나머지 법인체로 합치면 되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지만, 한쪽이 자신의 법인체를 포기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운 결정이기도 했다. 예상과 달리 감리교회 성도들이 기꺼이 해산하기로 총회에서 결정했다. 결국 5월 30일 각 교회 총회에서 통합안이 통과되고, 6월 6일 비로소 ‘쾰른한인연합중앙교회’(가칭)라는 이름으로 통합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이후 하나 되어 빛을 발하라는 의미로 ‘한빛교회’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랜 준비 끝에 거둔 결실…2세 연합이 결정적

한빛교회가 통합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7개월 내외다. 그야말로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런 열매를 맺기까지는 오랜 준비의 시간이 있었다. 통합 움직임이 있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부터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지만 80년대 말에 쾰른 지역의 한인 교회들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후 90년대 중반부터는 부활절연합예배, 야외예배, 청소년연합예배, 제직 세미나 등을 같이 가지면서 실질적으로 함께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목회자들이 연합새벽기도회에서 번갈아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었다. 특히 2세들의 청소년 연합 활동이 교회 통합을 이루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했다. 한인 2세들 간의 만남이 거듭되면서 2세들 간에는 이미 교회의 담이 허물어졌고, 자연스럽게 1세들 간에도 교단이나 교파의 경계가 옅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좁은 교민 사회에 교회가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생각에서부터 재정적인 부담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교회 통합에 대한 공감대가 쾰른에 있는 교인들 사이에서 형성되었던 것이다.

   
 
  ▲ 한빛교회 탄생 이후 하나됨이 더 넓은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쾰른이 속한 노르드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있는 한인 교회들도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 되도록 하는 협의회를 2002년에 만들었다. (사진제공 최용준)  
 
퍼져가는 교회 연합의 움직임 

한빛교회의 통합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른 지역에 있던 교회들도 교회 통합에 나서기 시작했다. 15년간 분열되어 뒤셀도르프 지역과 두이스부륵 지역에서 따로 예배를 드리던 성도들이 2000년에 다시 통합을 이루었고, 함부르크에서도 1990년에 두 교회로 나뉘었다가 2005년에 하나 되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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