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으려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으려고
  • 허병섭
  • 승인 2007.03.06 16: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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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눈발을 어지럽게 휘몰아치는 돌풍과 함께 사방을 흩트리고 있습니다. 어저께만 하더라도 겨울은 물러간 듯 봄 같은 날이었습니다. 집사람이 첫 봄나물로 망초의 새순을 캐어 와서 손질하고 있기에 저도 거들었습니다. 우악스럽게 자란 뿌리는 무질서하게 엉켜 눈처럼 하얗습니다. 긴 겨울 동안 땅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뿌리들이 얼싸안고 있었던 가 봅니다.

새순은 다섯, 여섯 차례나 밀어 올렸는지 나물의 본래 크기를 훨씬 웃자랐습니다. 맨 먼저 올라온 순은 이미 다음의 순을 위해 누렇게 변하기도 하고, 자기 몸을 썩히고 있었습니다. 망초는 다정하게 여러 개의 새순이 한꺼번에 올라오면서 흙을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흙을 가려내고 붙어 있는 포기들을 떼면서 썩은 잎사귀를 분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봄은 우리들의 나물 다듬는 손길과 함께 성큼 다가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새순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너덧 차례 계속된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단 한 번으로는 자기의 생명을 이 땅 위에 밀어 올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오늘 같은 꽃샘추위가 올 것이라는 것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함께 엉켜 붙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망초의 생명이 지닌 성격을 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솟구치게 합니다. 그동안 더불어 산다는 말을 많이 했었는데, 이처럼 생생한 느낌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망초에게서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배우고 지혜를 배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풀무고등학교 학생이 쓴 글을 읽으면서 원두막이 평화의 마음을 가지게 한 내력을, 자갈길을 밟고 자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평화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일이 있습니다. 밭일을 하는 동안 흙을 만지고 돌을 가려내면서 그 속으로 제 마음을 담가봅니다. 무거운 토막나무를 끌어안고 옮기면서 수십 년을 살아온 나무의 일생을 회상합니다. 온돌방 아궁이의 불을 지피면서 나뭇가지의 지글거리는 소리를 듣고 불꽃의 화려한 움직임을 보면서 자연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을 닮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제 마음 보자기가 내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자연이 제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음도 내 안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통해 받은 선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교회나 성당 안에서, 아니면 성물의 모습을 보고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말씀 전례나 강론으로, 예배를 드리는 행위로 그 마음을 배우고 훈련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마음은 스스로 인간이 되어 죄인과 동고동락하시고, 인간과 함께 땀을 흘리시고, 인간의 고통과 고뇌를 함께 경험하시고, 인간이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스스로 감내하시면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을 통해서 체험하였지만, 지금은 자연을 통해서 체험하고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현상을 자연에서 매일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지구라는 생명체를 살리기 위한 밀알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을 간직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보자기로 싸서 마음에만 간직한다면 무덤에 갇힌 채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처럼 부활해야 할 것입니다. 그 마음 보자기를 세상에 펼쳐야 할 것입니다.

저는 자연에게서 배운 마음을 대안 학교(녹색대학)에서 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펼칠 수 있는 생태문화도시를 녹색대학의 가족들과 함께 설계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신음하는 지구의 생명을 살리고 창조 질서의 복원을 위한 작은 봉사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지구가 지금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세계 교회나 한국 교회는 신음하고 있는 지구의 생명을 치유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내게 십자가가 허용된다면 내 모가지를 드리우겠습니다”고 했던 윤동주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지구를 위해서 두 번 십자가를 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무주에는 덕유산이 있습니다. 덕유산은 백두대간의 허리입니다. 덕유산 동쪽에 리조트와 스키장 골프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산 너머 서쪽에도 골프장을 중심으로 기업 도시가 들어서려고 합니다. 어떤 기업체가 정부의 정책과 법적 비호로 덕유산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덕유산의 생명력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려 하고 있습니다.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 그리고 주민들이 덕유산의 생명력을 지킬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이들의 싸움은 한국 교회가 싸워야 할 싸움을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만 만에 하나 이 개발 계획이 실시된다고 하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발돋움하는 이른 봄, 북서풍이 몰고 온 눈을 바라보면서 망초가 일으킨 마음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지금도 자판 위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마음을 녹색대학으로 옮겨 펼치기 위해서 다음 글로 다시 만날 때까지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자기와 닮은 사람의 형상을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었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기운을 인간에게 쏟아주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기운은 우리가 지녀야 할 영성입니다. 사람에게서 기가 빠지면 의욕을 상실하고 몸이 나른해지며 병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사람과 다투거나 싸울 때 이기려면 상대방의 기를 꺾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에 대해서 눈여겨보지 않고, 잊고 사는 듯합니다.
   
 
  ▲ 허병섭 / 전직 목사, 녹색대학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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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is 2011-07-18 09: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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