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이 좋은 이웃일까?
어떤 사람들이 좋은 이웃일까?
  • 강희정
  • 승인 2007.03.1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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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의 생각 엿보기 / 정원 가꾸기와 잔디 손질하기

우리 가족이 미국에 처음 와서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기숙사에 살았다. 방 두 개 있는 타운 홈 형태의 기숙사가 처음에는 제법 넓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점차 가구들이 채워지면서 공간이 좁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셋째 아이가 생기면서 더 이상은 그곳에서 지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교외에 있는 주택가에 집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집을 새로 구하려고 하면서 가장 마음에 염두에 두었던 것은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이었다. 학교 기숙사를 벗어나서 일반 주택가에 처음으로 집을 구하려고 하면서, 과연 미국인들이 외지에서 온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우리들을 이웃으로 반겨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을 보러 다니는 동안 '좋은 이웃들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고 하는 나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미국인들 중에서 공감의 뜻을 표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은 마치 '좋은 이웃들이 있는 곳은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 간단했다. 미국인들의 거주지는 정확하게 인종 또는 소득에 따라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소득이 낮은 곳, 다시 말해 흑인들이 사는 곳은 위험하고 폭력적인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라는 인식이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는 백인 중산층들이 사는 곳이라도 좋은 이웃들도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이웃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인종에 대한 차별 의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외지인들인 우리들에게 더 곤란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분명하였다.

그러나 내가 좋은 이웃으로 삼는 기준에 따른 '좋은 이웃'은 눈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사실 이웃이 되어 같이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내가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며 그저 속으로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사를 온 직후에 우리는 좋은 이웃들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는 안도를 하였다. 우리가 이사온 것을 환영하는 뜻을 전하며 인사를 먼저 걸어오는 사람도 많았다. 또 파이나 쿠키 같은 음식을 가져다주며 전화번호를 주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불안감들이 상당히 많이 해소되었다.

우리 가족들 또한 마음을 열고 그들과 대화하고 나누며 여러 이웃들과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좋은 이웃들을 만나게 된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인 친구들이 간혹 우리 집을 방문하면서 던지는 말 중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좋은 이웃들을 가졌군요"라는 뜻의 말을 때때로 던졌다. 그때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이곳에 살아 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좋은 이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점차 그 의미가 무엇인지, 그들이 무엇을 '좋은 이웃'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미국인들이 '좋은 이웃'으로 삼는 기준은 자기 집과 정원을 얼마나 정성스럽고 예쁘게 다듬는가 하는 데 있었다. 미국인들이 자기 집과 정원에 쏟아붓는 정성과 노력은 우리 같은 한국인들이 따라 흉내내기 어려울 만큼 놀라웠다. 철마다 각양각색의 꽃이 피어나도록 정원수를 배치하고, 융단처럼 부드럽고 촘촘한 잔디를 만들기 위해 각종 비료를 투여하고, 민들레나 클로버조차 용납하지 않고 제초제로 제거해 버린다. 집안에 들어가면 고급스러운 가구와 장식장들로 꾸미기를 즐긴다.

집과 정원 꾸미기는 심미적인 차원과는 별도로 경제적인 의미 또한 가진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집과 정원이 잘 가꾸어진 지역은 그만큼 높은 집값을 형성하게 된다. 집값이 개별적으로 평가될 뿐만이 아니라 일정 지역 단위로 평가되는 만큼, 전체적으로 잘 가꾸어진 지역은 집값이 높아지고 그렇지 못한 지역은 집값이 낮아진다. 따라서 집과 정원 가꾸기를 게을리하는 사람들은 이웃의 재산권에 피해를 주는 셈이 되어 '좋지 않은 이웃'으로 낙인을 찍힐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처음에 정원 관리에 익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국 사람들의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일주일에 한 번 정원의 잔디를 깎는 것도 버거워하며 정원의 꽃 관리나 잡초 제거에 신경도 쓰지 못하였다. 거기에는 잡초와 잡초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던 우리의 생각 또한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던 중 옆집 사람으로부터 우리 집의 잡초로 인해 자기 집 잔디에 잡초가 많이 늘어났다는 불평을 듣게 되었다. 완곡한 표현을 써서 애써 우리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였지만 우리는 다소 충격을 받았다.

그때 이후로 우리 가족은 '나쁜 이웃'으로 평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차츰 집과 정원 꾸미기에 동참하게 되었다. 봄철에 '멀취'라고 불리는 검은흙을 정원 바닥에 덮어 주어 잡초가 자라나지 않도록 방지했을 뿐만 아니라, 정원이 깨끗이 보이도록 해주었다. 여름에는 잔디나 나무들이 말라죽지 않도록 아침저녁으로 물을 뿌려 주며, 가을에는 봄에 필 꽃들의 구근을 사다 심고 또 낙엽이 너무 많이 쌓이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제거해 주었다. 항시 민들레나 클로버 등 잔디가 아닌 것들을 제거하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지극히 비생산적인 노동'이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면서도 '나쁜 이웃'이 되지 않기 위하여,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종적 편견거리를 제공해 주지 않기 위하여 할 수 없이 따라 하게 되었다.

문제는 처음에는 소극적으로 '따라 하기'로 시작하였는데, 점차 그것이 나의 사고와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내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민들레가 많이 자라나 있거나 정원이 관리가 되지 않은 집이 있으면, 어느새 집주인이 게으른 사람이거나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으로 판단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이웃'은 단지 자기 집과 정원 관리에 충실하여 이웃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이웃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데 인색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닐까?

아이가 학교 버스를 놓쳐 버렸는데, 차 열쇠를 찾지 못해서 학교에 데려다 주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할 때 기꺼이 자기 차에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이웃, 손님이 와서 쿠키를 만들려고 하는데 달걀이 없어 문을 두드릴 때 웃는 얼굴로 빌려주는 이웃, 자기 정원의 예쁜 꽃을 나누어 이웃의 정원에 분양해 주는 이웃.

또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나누어주는 이방인의 친절에 웃음과 인내로 함께 먹어 주며,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뜻을 전달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리고 때로 이해하기 힘든 표현을 써서 이야기할 때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들이 '좋은 이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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