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의 영적 순례를 위하여
사순절의 영적 순례를 위하여
  • 김종희
  • 승인 2007.03.1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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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목사, [가상칠언 묵상]…부활 기쁨 만끽 전에 온전한 성찰을

2월 21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으니 지금은 반환점을 돌고 있는 시점이다. 혹시 사순절은 다 까먹고 4월 8일 부활주일만 오매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과정을 깊이 성찰하고 온전히 누리는 경험 없이 눈앞에 보이는 목표를 향해 돌진만 하는 삶에 익숙한 우리에게 사순절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가 어색하고 불편할지 모르겠다.

노아의 인생은 40일간의 홍수 뒤에 바뀌었다. 모세는 40일간 시내산에서 금식하며 기도한 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한 다음에야 약속의 땅에 들어갔다. 정탐꾼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40일간 탐색했다. 골리앗은 40일간 이스라엘 백성을 조롱한 다음 다윗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죽었다. 앓던 소리를 하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먹을 것을 주시고 그가 일어서기를 40일간 기다려주셨다. 예수님은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하고 시험을 받은 뒤 공생애를 시작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간 지상에서 머물다가 승천한 후 제자들은 뒤집어졌다.

이 모든 사건에 40이라는 숫자는 ‘역전’을 의미한다. 40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이 그래서 대박을 터뜨렸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내용을 따라서 40일간 묵상하고 실천하면서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내 삶의 목적을 발견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기독교에서 40이라는 숫자는 특별한 뭔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부활 전날부터 거꾸로 계산해서 40일을 특별하게 정해서 지켰다. 우리의 고민은 무엇을 하면서 사순절을 지키면 좋을까 하는 것이다. 새벽기도를 할 수도 있고 금식기도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겠다.

   
 
  ▲ <가상칠언 묵상> (저자 김영봉 / IVP / 126쪽)  
 
말씀에 대한 깊은 연구와 인간 실존에 대한 연민을 담은 글을 써왔던 김영봉 목사(와싱턴한인교회)가 우리의 이런 고민을 해결해줄 만한 책을 내놓았다. 한국 IVP에서 출간된 <가상칠언 묵상>이 그것이다.

이 책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하신 일곱 말씀을 일곱 주제로 나눠서 구성했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하루에 한 주제씩 마음에 품고 묵상하면서 생활하도록 유도한다. 허나 일곱 말씀이 담긴 본문들에만 제한되지 않고 그 말씀이 품고 있는 의미를 성경 여러 곳에 있는 본문과 연결시킨다. 가령, 첫 번째 말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를 갖고 욥기서에서는 ‘교만의 죄’에 대해 묵상하고, 누가복음에서는 ‘원수 사랑’에 대해 묵상하고, 마태복음에서는 ‘용서’에 대해 묵상하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내용을 더 깊고 넓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세 번째 말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보라 네 어머니라” 하는 구절은 아들 예수와 어머니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다.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을 때의 암담함,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겸손히 순종하는 마리아. 저자는 “저희가 오늘 누리고 있는 구원의 은총은 나사렛의 작은 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바친 한 여인의 무릎에서 시작된 것이로군요! 마리아의 그 마음을 저희에게도 주소서. … 저희 스스로 무얼 해보겠다고 나서서 들레지 않게 하소서” 하고 기도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를 낳을 때만 진통한 것이 아니다. 그는 평생 해산의 진통을 안고 살았다. 가장으로 가정을 돌보던 큰아들이 훌쩍 가출을 하고, 얼마 후에는 그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의 제자가 되었고, 그의 말씀을 들었고, 비난과 오해와 핍박을 당하는 아들 곁을 지켜주었다. 십자가의 고통을 겪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진통은 어떤 것일까. 저자는 “주님의 수난 이야기는 또한 마리아의 수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라고 묵상한다. “주님의 모친이 십자가 밑에 둘러선 군인들에 비하면 아무런 힘도 없는 존재였지만, 엄청난 인내심으로 아들의 처절한 고통을 직시하며 그의 완주(完走)를 지원하였습니다”고 설명한다.

신으로서 예수가 너무 강조된 나머지, 홀로 된 어머니에 대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하면서 심장이 찢길 것 같은 고통을 겪는 아들의 마음을 온전히 묵상한 적이 얼마나 되던가. 마리아에 대한 존경이 마치 우상숭배라도 되는 듯 교리적으로 굳어버린 우리의 머리로 어머니 마리아의 고뇌를 1,000분의 1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들 예수와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을 온전히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족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때에라야 가족주의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가족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아들 예수가 마지막 순간에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한 것을 몹시도 부러워한다. “주님, 저희도 주님께 요한이고 싶습니다.” 주님이 요한에게 어머니를 맡겼다면, 오늘 주님은 나에게 무엇을 누구를 맡기셨일까.

어머니 마리아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 어머니를 맡는 요한을 바라보는 저자의 눈길은 그의 마음이 작은 자에 대해서 얼마나 따뜻한지를 느끼게 해준다. 작은 인간들에 대한 그의 세심한 마음을 책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 부활의 기쁨을 누리기 전에 예수의 삶이 어떻게 나의 삶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순절의 영적 순례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뉴스앤조이 신철민)  
 
하루에 두 쪽씩 읽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책이다. 문장들은 많지 않고 길지 않고 어렵지 않다. 하지만 눈으로만 읽어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마음으로 깊게 받아들일 자세를 가져야만 만날 수 있는 진리들이 담겨 있다. 저자의 내공과 독자의 내공이 만날 때 ‘읽음’을 통한 ‘역전’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지금이라도 이 책과 함께 40일간의 영적 순례를 시작해보자. 부활의 승리 이전에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내 못된 자아를 첫 장을 여는 순간부터 만나게 된다. 하지만 깊은 묵상을 통해 허물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감격을 책장을 덮을 때는 맛볼 수 있다.

부활절도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호들갑스런 날이 되어가고 있다. 광장과 거리에서 너도 나도 예수의 ‘승리’를 목청껏 외치면서 힘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가 만든 승리주의는 성공주의, 열광주의, 맹신주의라는 우상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나를 덮고 있는 위선과 오만과 미움의 죽은 껍데기를 벗겨낸 다음 부활의 기쁨과 감격에 겨워 두둥실 춤을 추는 내 영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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