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예배당 건축, 건물만 남고 사람은 없다
선교지 예배당 건축, 건물만 남고 사람은 없다
  • 이득수
  • 승인 2007.03.13 09:4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물질 만능의 세속주의 껍질 벗고 교회 본질 회복해야 할 때

선교지에 있어 보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 주변에 얼마나 많은 세속주의와 물질주의 만능 세계관이 작동하고 있는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선교지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현상은 역시 돈으로 선교 사역을 하는 현장이다. 특별히 교회 개척이라는 명목으로 선교지에서 예배당을 세워주는 일에 한국 교회만큼 앞장서는 선교 파송 국가가 없다.

진정한 교회란 믿는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정의는 내리지만 선교지에서 실제적인 행동은 그렇지 않다. 이곳 어느 지역에 교인이 30-40명밖에 안 되는 한 교회가 있었다. 이 현지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현지 목회자는 한국 교회로부터 수억의 후원을 받았다. 한국의 후원 교회는 1,000명의 교인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 건물을 지어주었다. 강대상과 긴 의자, 전등 등 각종 교회 용품을 제공해주었다.

교회 건물을 지을 때 이미 외교 문제가 발생할 정도로 이 나라에서는 시끄러웠다. 교회 건물이 위치한 곳이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이슬람 사원 근처여서 이슬람 사원 지도자가 고소했다. 그러나 한국 대사관측은 “우리는 정교가 분리된 나라라 그런 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고 얼버무려 무마되었다.

5년 정도가 지난 현재 그 교회의 교인 수는 여전히 40-50명. 교회 건물을 이용해서 학교를 운영했으나 교장과 이사장(한국 교회로 후원을 끌어냈던 현지 목사) 사이에 학교 수입금 사용과 운영권 문제로 갈등이 생겨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고 결국 사법부에까지 넘어가 재판에 회부되었다. 한국 교회의 후원으로 지어진 교회 건물은 교회 성장은커녕 결국 내부 재산과 운영권 싸움의 발단을 제공해준 셈이 되고 말았다.

한국 교회가 여전히 이런 식으로 교회 건물을 지어주려는 근본적인 마음 자세는 바로 이 땅에 커다란 교회 건물이 있으면 교인 수는 자연스럽게 증가한다는 한국적 세속주의 교회 성장론에 근거한다. 한국에서 새는 바가지가 바깥 선교지에서는 더 많은 더러운 물을 담아내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여전히 선교지에 교회 건물을 세워주는 것이 선교지 교회 개척으로 이해하고 실행하고 있다.

선교사들도 이런 패턴을 유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느 평신도 선교사가 이곳에 들어왔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자기는 교회 개척을 자기 사역의 근간으로 삼는다며 근처에서 교회 개척을 시작했다. 먼저 괜찮은 집을 비싸게 대여해서 한국적 스타일로 교회를 장식한 다음 현지 전도자를 월급을 주어서 고용하고 그들과 함께 나가서 전도하고 집회를 시작했다. 지금도 10여 명 안팎의 현지인들이 예배를 드릴 뿐이다. 교회의 시작이 일차로 멋있는 교회 건물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신도 선교사들조차도 이런 세속주의 교회론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물질주의에 근거한 선교 사역을 경험한 현지인들은 한국 선교사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돈이라고 생각하고 한국 선교사만 보면 재정적 후원만을 기대하고 접근해온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한 현지인 지도자가 저에게 한 말은 한국 선교사들은 재정만 후원하는 외에는 할 일이 없다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물론 우리가 그들에게 재정적 후원을 하는 한 그들은 선교사의 말을 듣지만 이는 돈에 대한 순종이지 선교사나 복음에 대한 순종이 아니다. 그래서 재정 후원이 중단되면 그들은 당연히 우리를 떠나거나 다른 후원처를 찾거나 사역을 중단하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여전히 한국 교회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아나서는 현지 기독교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 교회가 이런 물질주의 사상에 젖어든 원인은 아마도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선포에 근거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경제가 성장한 것은 마치 한국인의 많은 수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판단하는 데에 기인하는 것 같다.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경제가 성장한 일본과 대만에 눈을 돌리면 반드시 그런 등식이 성립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원인이 있다면 우리가 물질 풍요에 대한 편안함을 맛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주의 나라 건설도 이런 물질적 풍요로움에 목표를 두고 있고, 그로 인해서 얻어진 물질로 주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배어 있는 것이다.

이런 세속주의 교회론은 선교지에서 더 큰 걸림돌을 만들어내고 있다. 선교 현지인들이 스스로 하나님과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 한국 교회만이 유일하게 100년 전 네비우스가 제창한 3자(自)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역사와도 배치되는 행동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물질로 선교지를 돕는 행위를 모두 하지 말자는 주장은 아니다. 단지 고아와 과부처럼 그들 스스로는 도저히 설 수 없는 자들에 한에서, 그것도 한시적으로 그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도로 국한시켜야 한다. 동시에 이런 물질 만능주의 세계관을 먼저 우리 안에서 복음으로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풍요롭게 살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유럽과 같은 비극을 이어받지 않기 위해서는 물질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철저하게 통제해야 한다. 우리가 물질에 얽매여 있는 한 우리는 영적인 아바 아버지를 적게 경험할 수밖에 없다.

세속주의의 껍질을 벗고 교회론의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교회란 주님을 믿는 자들의 모임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의 가정교회나 이슬람 국가의 자마트(셀교회) 운동은 오늘날 세속주의에 물들어 있는 한국 교회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자기 국가의 영적 상황이 커다란 교회 건물을 갖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서 오히려 교회의 본질을 갖게 되었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그들은 비밀리에 모여야 하고 그 가운데에서 그들은 더욱 주님의 도움과 성령의 함께하심을 경험한다.

이들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세속화된 교회론을 제거하게 된다. 이제 다행히 한국 교회는 셀교회나 가정교회가 실행되면서 교회론의 본질을 맛보기 시작하고 있다. 이런 가정교회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더욱 성장하여 세속주의 세계관을 제거하는 계기가 되고, 소속 교회를 초월한 우주적 교회에 연합하여 자기들이 속해 있는 지역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여 교회의 본질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회복되었으면 한다.

이득수 / 서남아시아 B국 선교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선교사 2015-12-06 16:02:09
동의합니다.
교회장사하는 선교사들이 수두룩하지요.
그들의 주머니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