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부터 청소하라!"
"수족관부터 청소하라!"
  • 김영봉
  • 승인 2007.03.13 10: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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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1. 수평 이동 교인 거절 선언을 보고

최근에 몇몇 대형교회 목사님들께서 수평 이동 교인(다른 교회에서 이동해 오는 교인)을 받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선언하게 된 이유는 ‘전도에 집중하는 교회’가 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벌써 오랫동안, 때로는 급격히, 또 때로는 완만히, 그러나 변함없이 하강곡선을 그려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초대형으로 성장하는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교회들의 성장은 대부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해서 이룬 것이기보다는, 다른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이 이동함으로써 이룬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그 점을 반성하며 회개하고, 수평 이동 교인들에게는 교회 문을 걸어 잠그고, 전도에 전념하겠다는 것이 이 목사님들의 선언의 요지입니다.

이 기사가 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그분들의 진심을 믿을 수 없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습니다. 수평 이동을 한 교인들로서 대형 교회로 성장하고 나서 이제야 그런 선언을 하니, 그 진의를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휴스턴의 서울제일침례교회를 섬기고 계신 최영기 목사님은 교세가 약할 때부터 그런 원칙을 세우고 지켜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급성장하지도, 거대 교회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은 이민교회로서 꽤 큰 교회가 되었지만, 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여 양육함으로 그렇게 성장했습니다. 존경할 만한 일입니다. 이 경우와 비교할 때, 최근의 선언은 ‘만시지탄의 감’을 가지고 환영할 만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저도 이민교회로서는 ‘대형’이랄 수 있는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를 방문하여 등록하기를 원하는 분들을 매주일 만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웃 교회가 분란을 겪는 통에 몇 가정이 이동을 하겠다고 찾아 오셨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사정을 듣고, “정 그러시면, 몇 개월 동안 저희 교회에 나오시면서 영적으로 회복하시고, 나중에 사정을 보아 다시 돌아가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분들 가운데 어떤 분이, “목사님이 우리를 반기지 않으시나 봐”라고 말하며 섭섭해 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다른 교회 교인들에게 집착하지 않는 목사의 모습이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막상 그것이 자신의 문제가 되면 섭섭하게 느껴지는가 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 분란에 깊은 상처를 받고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오셔서, “남은 생, 기쁘게 믿다가 죽을 만한 교회를 찾습니다”라고 털어 놓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저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합니다. 이전 교회에서 상처받고 떠난 후 몇 개월 동안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전전하는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기도할 때면, 이 땅의 교회들에 대한 간절한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어찌하여 교회가 성도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며 세워주기는커녕, 상처와 아픔을 주며 영혼을 질식시키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깊은 한숨으로 기도하곤 합니다. 동시에,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제가 섬기는 교회가 성도들에게 이런 아픔을 주지 않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상처받고 신음하며 기진한 영혼들을 품어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분들이 우리 교회를 통해 치유와 회복을 얻은 후, 다시 옛날 교회로 돌아가서 섬길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잘 일어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수평 이동으로 이룬 교회 성장을 두고 자랑할 것은 없다’는 말에 일리가 있기는 합니다. 물론, 어떤 방법으로 성장했든, 교세를 두고 자랑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교회들을 생각해 봅니다. 가지각색의 상처들을 주고받는 교회들을 봅니다. 성도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며 세워주는 목회가 흔한 현상이 아닙니다. 무자격, 무신경, 무책임한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넘쳐납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참된 신앙 공동체를 찾아 방황하는 영혼들을 받아 보살피고 회복시키는 것은, 자랑할 일은 못 된다 해도, 탓할 일도 아닌 듯합니다.

다른 교회에 잘 다니고 있는 사람을 설득하여 이동하게 한다면, 그것은 소위 ‘양 도둑질’로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만, 길 잃고 방황하는 양을 보살피며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고 느낍니다. 가장 유익한 교회를 찾아 소위 ‘쇼핑’을 하러 다니는 사람은 탓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기진한 영혼을 소생시키기 위해 바른 교회를 찾아다니는 사람을 탓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 기독교의 문제가 무엇인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전도를 하자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기독교가 쇠락하고 있는 이유가 전도의 열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에서 바른 복음이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인격과 삶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기독교가 가장 매력 없는 종교로 인식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전도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전도된 사람들이 제대로 살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런 상태에서 전도를 열심히 해도, ‘소문 듣고 왔다가 꼴 보고 내빼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와 교회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는 일보다는 이미 믿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성장하고 변화하도록 돕는 일에 더 우선적인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외적 성장에 몰두해 오느라 내적 성숙에 게을렀던 우리 기독교입니다. 그 결실이 지속적인 쇠퇴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니 기독교의 부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는 분명히 드러난 셈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되는 것, 그리고 교회가 교회답게 되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아무리 영성 생활에 전념해도 인간이 완전해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교회는 ‘용서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점에서 언제나 문제의 요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나 교회가 완전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던가요? 다만, 바른 지향을 가지고 올곧게 걸으면서 참되게 살려고 힘쓰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던가요? 그렇게 하려면,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우리 안에 거하시도록 힘써야 합니다. 전도는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일입니다. 영성 생활과 목회의 초점은 바로 여기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디오 해설가 폴 하비(Paul Harvey)는 “더 이상 사람 낚는 어부가 아니라 수족관 관리인이 되어 버린 그리스도인이 너무 많다”고 탄식한 바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를 생각하는 중에, “우리가 수족관 혹은 저수지라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가?”라는 반문이 들었습니다. 수족관이든 저수지든 혹은 양어장이든, 관리 부실로 인해 잡아 놓은 물고기마저 질식해 숨지는 형편이라면, 고기를 낚으러 갈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럴 경우, 우리 손에 낚인 고기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까, 아니면 재수에 옴 붙은 것입니까?

오해는 마십시오. 저는 전도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우리의 상황을 볼 때,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지 않느냐는 반성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인다워지는 것, 교회를 교회답게 일구는 것이 바로 그것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아씨시의 프랜시스(Francis of Assisi)가 했다는 말을 다시 한 번 기억했으면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십시오. 필요하다면 말도 사용하십시오.”

김영봉 / 와싱톤한인교회 목사
* 이 글은 IVP Book News에 실린 글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서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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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676 2010-09-17 19:29:38
기사를 읽으면서 한 길 가고 있는 길동무로서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래, 맞아~! '전도의 열심이 부족하기때문이 아니지, 바른 복음이 전해지지 못하기때문이지 크리스천의 실제 삶이 문제이지~!' 많은 공감을 하며, 마지막을 보니, 목사님이셨네요. 감사합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