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네이도가 할퀴고 간 현장, '앨라바마 엔터프라이즈'를 가다
토네이도가 할퀴고 간 현장, '앨라바마 엔터프라이즈'를 가다
  • 홍성종
  • 승인 2007.03.15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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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로 변한 거리에 희망을 세우고자 몰려드는 자원봉사 물결

   
 
  재난 지역에서 희망을 쌓기 위한 자원봉사자들의 열기가 한창이다. 앨라바마 몽고메리에서 온 자원봉사자들.(Ridge Crest Baptist Church) ©홍성종  
 
봄의 길목인 3월의 첫 장을 여는 아침부터 예사롭지 않던 먹구름이 목가적인 앨라바마와 조지아 남부 일대를 뒤덮기 시작했다. 엔터프라이즈(인구 22,892명, 80.3평방킬로미터) 시민들은 오전 한때 폭풍우가 지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 속에서도 다운타운 거리에서 일상을 보내고, 인근 학교에 흩어진 학생들은 점심 시간을 마치고 한바탕 왁자지껄한 이야기 꽃을 피워갔다.

오후 12시 47분. 정규방송 사이로 둔탁한 부저음과 함께 토네이도가 우려된다는 경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로부터 18분 후, 시속 135-165마일의 후지타 스케일 3EF 등급의 ‘검은 기둥’이 공항 근처에서 목격되었다. 이 거대한 ‘검은 기둥’은 5분 후 다운타운 서쪽에서 북동쪽으로 접근했다.

순식간에 닥친 일이었다.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정전이 되더니 창문들은 압력을 견디지 못해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다. 초강풍에 지붕 전체가 쓸려나가고, 심지어는 자동차가 성냥갑처럼 뒤집혔다. 400m의 폭으로 약 10마일을 훑고 지나가던 토네이도는 공교롭게도 하교 결정을 두고 갈팡질팡하던 엔터프라이즈 고등학교를 정면으로 강타했다.

이 여파로 학교 건물의 지붕과 벽이 무너지며 여덟명의 학생들이 숨지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참사를 빚었다. ‘괴물’ 토네이도는 고등학생을 포함해 이 인근 지역에 아홉 명의 사상자와 121명의 부상자를 남겼다. 뿐만 아니라 완파된 건물 161채를 포함해 712채의 건물과 가옥이 파괴되었다. 추정된 피해액만도 3억 5천만 달러(한화 3,325억 원)에 이른다.

이틀 후, 3월 3일 오전 8시 1분. 미합중국 대통령이 탑승한 에어포스원 비행기가 인근의 도단(Dothan)공항에 도착했다. 부시 대통령은 엔터프라이즈 고등학교를 둘러보며 학생들을 위로한 후, 피해 지역을 ‘주요 재난 지역’으로 선포했다. 

   
 
  토네이도 경로 한복판에 놓였던 엔터프라이즈 고등학교는 건물이 붕괴되며 8명의 사상자와 수십 명의 학생들이 부상하는 참사를 맞았다. ©홍성종  
 

   
 
  토네이도가 할퀴고 간 자리. 지붕 전체가 날아간 집 옆으로 휘어진 철재 구조물이 나무에 걸려 있다. ©홍성종  
 

   
 
  ▲ '괴물' 토네이도의 흔적. 푸른 숲을 이루던 나무들이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홍성종  
 
‘괴물’ 토네이도 닥쳐 9명의 사상자 남기고 도시는 폐허로 변해

사상 초유의 살인적인 토네이도의 피해로 인해 도시는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엔터프라이즈 고등학교를 상징하는 흰색과 파란색의 리본이 스러져간 넋을 기리기 위해 곳곳에 걸려 있고, 조기로 게양된 성조기도 슬픔에 잠긴 도시를 말해주고 있다.

거리마다 버려진 가재도구를 비롯해 유리조각, 플라스틱, 뿌리 뽑힌 나무들, 떨어져 나간 지붕 파편, 휘어진 철재 프레임이 함께 뒤엉켜 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동서편 왓츠 거리(Watts Street)는 재난 당시 황급히 생존자를 확인하고자 벽면에 그려놓은 ‘X’의 황색 스프레이와 번지수 표기가 곳곳에서 눈에 띄어 더욱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희망을 잃어버린 폐허의 도시. 그러나 이 작은 도시는 재난 소식을 듣고 미 전역에서 몰려오는 자원봉사자들의 희망을 세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재난이 닥친 후 열흘이 지난 현재, 자원봉사자로 신청한 사람만이 2,000명을 육박하고 있다. 3월 10일 토요일에는 8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재난 이후 생존자를 확인하기 위해 구조대원들이 식별해 놓은 표식. 토네이도가 거쳐간 거리는 모두 폐허로 변했다. ©홍성종  
 

   
 
  시속 135-165마일(3 EF)의 토네이도에 아름드리 나무들조차 뿌리째 뽑혀 나갔다. ©홍성종  
 

   
 
  강력한 바람과 거대한 압력을 동반한 토네이도에 파괴된 자동차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홍성종  
 
쓰러진 육중한 나무 그루터기를 잘라내는 전기톱의 힘겨운 엔진 소리가 곳곳에서 진동하고 있다. 부러진 나뭇가지와 쓰레기 들을 끌어내는 모습 사이로 지붕 위에서는 망치질이 한창이다. 자원봉사자들 사이로 먼지투성의 거리를 오가며 물과 간식을 건네는 또 다른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2시간 반 거리에서 달려온 앨라바마주 몽고메리의 지역 교회(Ridge Crest Baptist Church) 자원봉사자들은 잔해들을 치우느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 네 살 난 죠수아(Joshua)에서부터 여든두 살의 샘(Sam Hicks)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팔을 걷어 붙였다.

앨라바마 뉴턴시에 온 타일러(Tyler)와 동생 앨렉시즈(Alexis)는 엄마 로리(Lory Marchozzi)와 함께 종이 피킷을 들고 ‘물과 간식’을 외치며 재난 지역을 온종일 돌고 있다. 로리는 “불행을 당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아이들과 함께 왔다”고 말했다.

   
 
  일곱 살 개렛(Garret), 네 살 난 죠수아(Joshua, 가운데)도 함께 나섰다. 열일곱 살 헤더(Heather Campbell)는 희생된 친구들과 같은 또래이다. ©홍성종  
 

   
 
  샘 할아버지(Sam Hicks, 82)는 노구를 이끌고 재난 복구 작업에 나섰다. ©홍성종  
 

   
 
  타일러(Tyler)는 운동하다 다친 다리를 이끌고 동생(Alexis)과 엄마(Lory Marchozzi)와 함께 재난 지역을 돌며 물과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홍성종  
 
불행을 당한 사람 보고 있을 수만 없어 아이들과 함께 나와

인근의 지역 교회(Straight Paths Baptist Church)에서는 재난 지역에 아예 캠프를 차린 곳도 있다. 이 날도 4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캠프에 나와 제임스(James Powell) 목사의 인도 아래 건설 현장의 근로자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물과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6개조로 나뉘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지역 교회들만 나선 것은 아니다. 지역에서 자동차 소매상을 운영하는 모리스리버스(Morris Rivers Motors) 직원들은 가족들과 함께 재난을 당한 지역 주민을 위로하기 위해 티셔츠를 맞춰 입고, 길거리에서 온종일 음식을 대접했다.

몰려드는 자원봉사자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역할을 맡은 조사 담당 봉사자들도 있다. 케리(Kerry Mitchell)는 네 명이 함께 한 조를 이루어 피해를 당한 집집마다 현황을 파악하여 점검표에 기록한 후, 복구 작업에 드는 필요한 인력을 배치하도록 돕고 있다. 케리는 “파악된 작업 현황은 지역 침례교협회로 전달되어 자원봉사자들에게 배분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현재, 재난 지역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오는 자원봉사자뿐만 아니라 성금과 복구 작업에 쓰일 기업들의 구호물품도 줄을 잇고 있으며, 부상자들에 대한 헌혈 등 온정의 손길들이 이어지고 있다. 

   
 
  제임스(James Powell) 목사를 비롯한 인근 교회의 성도들은 재난 지역에 캠프를 마련하고, 구조 활동에 나서고 있다. ©홍성종  
 

   
 
  자원봉사자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집집마다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좌로부터 Kathy Granger, Elizabeth Mitchell, Chains Wallace, Kerry Mitchell) ©홍성종  
 

   
 
  구조 작업 현장을 수시로 돌며 물과 간식을 제공하기 위해 자원봉사로 나선 아이들. ©홍성종  
 
미국을 지탱하는 힘, 자원봉사 정신

엔터프라이즈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은 재난을 당한 미국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에 불과하다. 실례로, 지난 2월 플로리다 중부를 강타한 토네이도 이후에도 열흘 동안 6,347명의 자원봉사자들이 175,000여 시간의 자원봉사를 벌였으며, 약 69,000여 음식이 제공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지난해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재난 구조뿐만 아니라 사회복지기관, 지역 구제 등에 동원된 자원봉사자들은 연간 약 6,120만 명에 이르러 전체 인구의 약 26.7퍼센트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처럼 자원봉사 정신은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근 피닉스 시에서 보내온 숨진 여덟 명의 고등학생의 명복을 비는 글들. ©홍성종  
 

   
 
  다운타운에 엔터프라이즈 고등학교를 상징하는 흰색과 파란색의 리본이 곳곳에 걸려 있다. ©홍성종  
 

   
 
  살아생전 단짝이었던 앤드류(A.J.Jackson, 왼쪽)와 라이언(Ryan Mohler, 오른쪽)이 함께 묻힌 예배당 옆의 묘지(First Baptist Church, Level Plain). 묘지 옆에는 조기가 게양되어 있다. ©홍성종  
 

   
 
  앤드류(A.J.Jackson )와 라이언(Ryan Mohler)이 함께 다니던 예배당(First Baptist Church, Level Plain) 너머로 노을이 물들어가고 있다. ©홍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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