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하나님나라
교회와 하나님나라
  • 방인성
  • 승인 2007.04.0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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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머리는 누구인가

   
 
  ▲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에베소서 1장 22-23절)  
 
목사가 교회의 머리인가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그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배를 드리는 건물이 교회가 아닙니다. 성전도 아닙니다.

성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바로 그곳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 그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건물을 교회라고 하거나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친히 성전이 되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외에 그 누구도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습니다. 목사도, 장로도, 헌금 많이 하는 사람도, 개척 멤버도 교회의 머리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교회의 머리입니다.

예수님의 관심, 하나님나라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분의 생각을 온통 지배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나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라’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왕’, ‘통치’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래서 'Kingdom of God'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유대인들은 ‘God’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지 않았기 때문에 마태복음에서는 ‘Kingdom of Heaven'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나라를 얘기할 때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 ‘천당’만 연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외치신 하나님나라는 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이미 왔음을 성경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까이에 이미 와 있는 하나님나라의 모습과 가장 근사한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신비로운 곳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교회가 그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고, 보여주어야만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왕인 하나님이 그 나라를 통치하시는 것처럼, 교회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사람이 왕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목사가, 때로는 장로가, 때로는 돈 많은 사람이나 세상에서 권력이 있는 사람이 왕 노릇을 합니다. 주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교회의 머리가 된 것입니다.

목사는 교회의 머리가 아닙니다. 목사는 목자도 아닙니다. 목사는 제사장도 아닙니다. 목사는 일반성도들과 똑같이 양입니다. 목자 되신 예수님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양 중에 하나입니다. 목사가 제사장이라면 일반성도들도 똑같이 제사장입니다. 목사만 성직자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일하면 그것이 바로 성직입니다. 목사가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욕망을 좇아서 자기의 이익을 구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교회에서 이뤄지는 일이라 할지라도 성직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가 세상에서 하는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 일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성직입니다. 목사만 주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다 주의 종입니다.

예수님의 머리 되심 인정하려면 교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목사는 다만 설교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의미할 뿐입니다. 목사 자체가 특별한 신분이 아닙니다. 목사의 신분은 일반성도들과 똑같습니다. 목사들도 그것을 착각하고 성도들도 착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많은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착각 때문입니다. 이런 착각 때문에 예수님이 주인이 되지 못하는 교회 현실을 보게 됩니다. 물론 목사의 역할에 대해서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은 매우 귀한 자세입니다. 그러나 목사를 하나님과 인간 중간에 중보자처럼 놓는다든지 하는 자세는 잘못된 것입니다.

이 정신을 잘 살리기 위해서 교회는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쓰면 마치 신본주의에 반대되는 것처럼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반대는 신본주의가 아니라 독재주의입니다. 신본주의의 반대는 인본주의입니다. 독재주의는 인본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신본주의를 잘 실천할 수 있는 현재로서는 가장 나은 제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독재주의보다 민주주의가 낫습니다.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모시기 위해서 우리 모두 민주적으로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 섬김과 나눔

둘째로 몸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몸은 예수님의 삶을 말합니다. 그분의 삶을 몸의 지체된 우리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 그는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계셨지만 인간의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않으시고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외로운 사람, 갇힌 사람들과 어울리셨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 힘이 센 사람들, 많이 배운 사람들과만 어울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결국 자기의 몸을 십자가 죽음에 내맡기셨습니다. 끝까지 내어주기만 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몸에서 지체된 우리는 예수님이 사신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겸손해야 합니다. 불쌍하고 어려운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고통 받는 이웃과 나눠야 합니다. 섬김과 나눔이야말로 예수님의 몸된 교회가 취해야 할 자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어떠합니까.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 건물을 이웃과 나누려 하지 않고 우리끼리만 즐기고 만족합니다. 돈 많은 사람이 큰소리를 칩니다. 교회 안에 계급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섬김과 나눔보다는 움켜쥐고 과시하고 자랑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시요 우리는 몸의 지체라는 사실을 입으로는 시인하면서 실제로는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떠나온 조국의 현실을 보십시오. 남과 북이 갈라져 있습니다. 교회는 갈라진 세상에서 화해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나눔과 섬김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먼 미국 땅에 와서 죽도록 열심히 일을 해서 자식을 공부시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재를 키우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인재보다 일꾼을 키워야 합니다. 개인의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인재가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헌신할 일꾼을 키워야 합니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만을 교회의 머리로 모셔서 민주적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예수님의 몸처럼 우리 교회도 끊임없이 세상을 섬기고 나눈다면, 교회야말로 어둠과 절망의 세상의 희망과 소망이 될 것입니다.

* 이 글은 한국 <뉴스앤조이> 발행인이자 성터교회 담임인 방인성 목사가 3월 27일부터 4월 4일까지 시카고·플로리다·뉴욕·뉴저지에 있는 여러 교회에서 설교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교회마다 강조점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인 뼈대는 일관성 있게 유지되었기에, 이를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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