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 아주 이상한 십자가 자랑
부활주일, 아주 이상한 십자가 자랑
  • 박지호
  • 승인 2007.04.11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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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어울리는 예쁜 십자가 달았다…부활주일이라고 헌금 두 번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고 했던가. 부활주일이다. 취재를 하기 위해 들른 뉴욕 롱아일랜드의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는 십자가에 대해 설교를 했다. 그런데 느닷없는 십자가 자랑이 등장했다.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으로 시작된 십자가 자랑은 얼마 전 새로 설치한 교회의 십자가 자랑으로 이어졌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그런 십자가가 없었는데 지난주부터 십자가를 달았습니다. 예산이 없었기 때문에 못 단 것이 아니라. 예쁜 십자가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당에 어울리는 십자가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참 아름다운 십자가를 발견했기에…”

이렇든 저렇든 사도 바울도, 그 목사도 십자가를 자랑한 셈이다. ‘예쁜’ 십자가는 처음 들었지만 , 하나의 장식품으로 자랑할 순 있겠다며 억지로 이해했다. 그러고 보니 취재하는 동안 이 교회의 한 중직자도 한 차례 교회 자랑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는 “우리 교회만큼 잘 하는 교회가 어딨나? 남들은 짓고 싶어도 못 짓는 교횐데, 손톱 다 빠져 가면서 무릎으로 지은 교횐데…”라며 교회 건물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런데 어찌 아무 십자가나 달겠는가.

설교가 끝난 뒤 예배당 바깥에서 애들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교 전부터 학생들이 참여하는 행사가 있으니 순서를 빨리 진행해야 한다고 했던 터라 주일학교에서 부활절 축하 행사를 준비한 모양이구나 싶었다. 조금 있다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예배당 중간을 가로질러 앞으로 나갔다. 저마다 손에 노란 봉투를 쥐고 있었다.

뭐 하나 싶어서 목을 쭉 빼고 앞을 보니, 헌금 바구니를 들고 예배당 앞쪽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봉투를 넣고 돌아 나왔다. 분명 설교 시작 전에 헌금 바구니가 한 바퀴 돌고 지나갔는데 이상하다 싶었다. 알고 보니 부활절 특별헌금 시간이었다. 유년부부터 중고등부 학생들까지 줄지어 헌금을 하고 돌아갔다. 학생들이 퇴장하자 목사의 인도에 따라 앉아 있던 교인들은 일제히 일어나 순서대로 앞으로 나가 헌금봉투를 바구니에 넣고 돌아왔다.

다들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다. 몇몇 교인들만 좀 당황하는 눈치였다. 헌금 시간이 두 번이나 있고, 그것도 앞으로 나가서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지갑을 열어 부랴부랴 헌금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고, 우물쭈물 하다가 그냥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다. 어린애부터 노인까지 일어나 정성껏 예물을 바치는 상황에서 분위기상 자리에 앉아 있긴 쉽지 않아 보였다. 하여튼 이 교회는 십자가 외에도 자랑거리가 많은 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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