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기독교인들은 왜 고문 반대 선언에 반대하는가?
보수 기독교인들은 왜 고문 반대 선언에 반대하는가?
  • 강희정
  • 승인 2007.04.11 2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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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정권이 입을 타격과 기독교인들의 도덕적 관심 약화 우려

미국 기독교계 인사들 중 일부가 미국복음주의협회의 고문 반대 선언문 내용에 반대하며 비판에 나섰다. 이들의 비판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그 중 하나는 미국복음주의협회의 고문 반대 선언문 발표가 명백히 부시 정부를 겨냥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보수주의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보다 중요한 도덕적 이슈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이번 선언문의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하는 것이며, 기독교인들의 현실 참여와 관련한 균형의 문제를 제기한다. 후자는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도덕적 이슈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종교와 민주주의 연구소'(Institute of Religion and Democracy)의 마크 투울리(Mark D. Tooley)는 "복음주의 좌파가 논리를 고문했다"(Evangelical Left tortured Logic)는 제목의 글을 통해, 미국복음주의협회의 고문 반대 선언은 오직 부시 정부와 공화당을 공격하는 것이며, 이는 복음주의자들의 일반 정서와는 거리가 많이 있다고 비판하였다. 마크 투울리는 종교와 민주주의 연구소에서 연합감리교회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데, 부시 대통령은 달라스에 있는 한 연합감리교회에 나가고 있다.

종교와 민주주의 연구소는 미국복음주의협회 창단 초기 과정에서 활동을 활발히 했던 칼 헨리(Carl F. H. Henry)가 세운 단체로서, 이 단체는 그동안 주로 수구적인 개신교 지도자들이나 자유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전미 교회 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를 비판하는 데에 주력해 왔던 터라, 이들의 비판은 미국복음주의협회 내부의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마크 투울리에 따르면, 이번 선언에 참여한 17명의 고문 반대 선언문 초안 작성자들은 복음주의 좌파들로, 보수주의적이지도 않고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사이비 평화주의 지식인들(pseudo-pacifist academics)이자 부시 정부를 정죄하는 반전 인사들로만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마크 투울리는, 복음주의자들은 미국에서 가장 확고한 보수주의 블럭인데도 불구하고, 오직 부시 반대 인사들만이 이번 선언문 작성에 개입했다고 말하면서, 이들이 복음주의자들의 전체를 대표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였다. 이는 미국복음주의협회 내부에서 이견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는 고문 반대 선언문이 인권에 관한 부문에서 다른 나라의 정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오직 미국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불평한다. 마크 투울리에 따르면, 고문 반대 선언문 지지자들은 현재의 미국 정부와 군대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에 서 있으며, 미국이 국가적으로 중대한 죄를 저질렀다고 믿고 있다.

마크 투울리는 미국복음주의협회 전직 회장이었던 테드 해가드(Ted Haggard)의 동성애 스캔들을 염두에 두면서, 미국복음주의협회의 일부 지도자나 회원의 성적 스캔들로 인해 협회 전체가 도덕성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듯이, 미국 군대에서 행해진 고문 스캔들로 인해 미국 정부 전체를 정죄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포커스 온 더 패밀리'(Focus on the Family)의 회장인 제임스 돕슨(James Dobson)은 다른 24명의 보수주의 인사들과 함께 미국복음주의협회 부회장인 리차드 시직(Richard Cizik)에 대한 해임을 건의하는 편지를 협회 회장에게 보낸 바 있다. 포커스 온 더 패밀리는 공화당을 지지하고 있으며, 이 단체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미국 복음주의 진영에서 영향력 있는 그룹 가운데 속하게 되었다.

해임 건의의 주요 이유를 살펴보면, 리차드 시직이 벌이고 있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 캠페인이나 연설 등이 "분열적이고도 도덕성 해이를 조장하는 행동으로서, 이 시대의 중대한 도덕적 이슈들, 즉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나 결혼의 진정성, 성적 절제와 도덕성에 대한 교육 등의 이슈들로부터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관심을 이탈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이슈들은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이 낙태와 동성애를 기준으로 입장이 분명하게 나뉘는 것을 반영하면서, 공화당의 입장을 옹호하는 맥락에서 제기된다. 결국 도덕성 이슈에 관한 문제제기는, 그동안 도덕성을 중요 쟁점으로 삼아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온 부시 정부와 공화당을 흔들지 말라는 의견과 다르지 않다.

사실 리차드 시직에 대한 해임 건의 편지는 미국복음주의협회의 고문 반대 선언 직전에 전해진 것으로서, 고문 반대 선언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리차드 시직이 이 전에 짐 월리스 등이 주도하여 부시 정부를 직접 공격하는 '다퓌어 선언'(Evangelicals for Darfur petition)에 서명하고 부시 정부에 타격을 주는 여러 캠페인에 참여했던 것이 제임스 돕슨이 리차드 시직을 비판하는 주요 근거로 볼 수 있어, 고문 반대 선언 발표에 따른 이들의 정서도 비슷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제임스 돕슨의 리차드 시직 해임 건의 편지와 관련하여, <소저너스> 편집인 짐 월리스는 제임스 돕슨에게 "과연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대한 도덕적 이슈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가지고 논쟁을 하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으나 제임스 돕슨은 아직 응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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