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생활을 동경하는 어느 미국 친구 이야기
외국 생활을 동경하는 어느 미국 친구 이야기
  • 강희정
  • 승인 2007.04.16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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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엿보기 2- 보통 사람들이 살기 쉽지 않은 나라, 미국

내가 알고 있는 미국인 친구 중에 샐리(가명)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다. 그녀는 백인이고(인종이 미국에서 계층을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밝히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며 나이는 39살이고 올해로 결혼 생활 20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그녀보다 두 살 위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3년간 사귀다가 19살 때 부모의 허락을 받고 결혼을 했다고 한다. 둘은 결혼하고 나서도 10여년간은 아기를 갖지 않고 안정된 생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샐리의 남편은 결혼하고 나서 온갖 일을 하면서 샐리가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도록 지원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 후에 샐리는 남편이 지역에 있는 칼리지를 마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하였다. 그 뒤에 아이들을 가지기 시작하여 현재 8살짜리 딸과 6살짜리 아들 그리고 4살짜리 딸을 두고 있다.

대학원을 나온 그녀는 몇 년 전까지 지역에 있는 세 곳의 주립 칼리지에서 시간 강사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박사학위를 가지지 못한 탓에 한 곳의 대학에서 풀타임으로 일을 할 수 없어서, 세 곳의 대학을 시간 강사로 뛰어야 풀타임의 임금과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노동 일을 하면서 그녀를 대학원까지 뒷바라지하다가 주립 칼리지를 간신히 마친 끝에, 그 뒤로도 남들이 보기에 반듯한 일을 얻지 못하고 여러 종류의 블루 칼라 일들을 전전하였다.

이 부부는 외모 상으로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인다. 여자는 지성적이며 사람들에게 친절해서 호감을 사는 반면, 남자는 노동 일에 얼굴이 그을린 것인지, 알콜에 절어 얼굴이 붉어진 것이지 모르게 얼굴은 홍인종처럼 붉고, 몸에는 술·담배 냄새가 배어 있어 처음보는 사람들에게서는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3년 정도 샐리와 사귀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오랜 동안 우울증 약을 복용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 그녀의 병력으로 인해 비교적 좋은 조건의 취업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고 한다. 직장에서 건강 진단서를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는 사실이 미국에서 그다지 터부시되지는 않는 듯했다. 그녀 외에도 여러 경우를 보기도 했고, 미국 사람들은 우울증은 약으로 조절이 되는 병이라고 믿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에게 우울증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해보았다.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라서 어렸을 때부터 비관적인 생각에 많이 빠지곤 했었는데, 결혼 후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심리학 분야에 조예가 별로 없는 나일지라도, 그녀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는 원인을 추론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녀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과, 일찍 서둘렀던 결혼생활에서 이어진 경제적·사회적 불안정이 그녀의 정신을 계속 짓눌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샐리는 정기적으로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상담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제하고 일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안정되지 않은 그녀의 경제적 상황이 그녀를 괴롭히는 주요 요인처럼 보인다. 특히, 몇년 전부터 아이들의 홈스쿨링을 시작하면서, 풀타임으로 일할 기회를 잃고 안정된 급여나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 이들의 생활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한동안 샐리의 남편은 어느 아파트의 관리인으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샐리가 그녀가 살고 있는 지역의 공립학교를 신뢰하지 못하여 큰딸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홈스쿨링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 가족들의 생계는 그 남편에게 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이 풀타임으로 일을 해도 의료보험비를 회사에서 제공 받지 못하고 가족들의 생활비를 다 충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샐리 가족은 한 때 ‘ㅤㅇㅟㅋ’(WIC / Women, Infants, and Children의 약자로서, 저소득층의 임산부와 5살까지의 아이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의 하나임)을 신청하여 2년 동안 그 혜택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것이 샐리에게는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여겨져, 세째 아이가 아직 5살 미만이어서 아직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도 현재는 그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ㅤㅇㅟㅋ’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이나 임산부가 먹을 치즈나 우유, 시리얼 등을 먹을 쿠폰을 제공 받는데, 이 쿠폰을 가지고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점원들 앞에서 자존심이 상한다고 한다.

이들 가족은 의료보험이 없어서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많은 돈을 내고 병원과 약국을 이용해야 한다. 더구나 샐리 자신이 우울증 상담 치료를 정기적으로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들 가족이 의료비에 쓰는 돈도 적지 않다. 그러면 왜 메디케이드(Medicaid, 미국의 저소득층에게 주어지는 의료 혜택 프로그램)를 이용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샐리는 메디케이드는 정말로 생활이 어려운 절대 빈곤층에 있는 사람들이 이용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녀는 성경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가족들이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일하기 싫어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가족의 수입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범위에 해당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면서도 말이다. 대학원 교육까지 받고 석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자기가 메디케이드 혜택까지 보는 것은 그릇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아주 커다란 사고를 당하거나 해서 엄청나게 많은 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는 이상, 메디케이드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한다.

사실 미국의 의료보험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미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의료보험은 1980년대 초에 미국의 의사협회가 마련한 것이어서 의사들의 이해관계가 많이 반영된 것이다. 개인들은 상당히 많은 돈을 지불해야만 가입할 수 있어서 많은 미국 사람들이 의료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의료보험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논란은 1930년대 대공황 시절부터 나왔으나 아직까지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샐리는 고등학교 때 기독교인이 되고 기독교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한 이래 지금껏 해외 선교에 대한 동경을 품고 해외에 나가기를 계속 시도해왔다. 특히 일본이나 타이완 등에 나가 영어 강사로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선교할 기회를 가지고 싶어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차례 해외에 나가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보았으나, 좀처럼 좋은 기회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샐리는 최근에 남편이 그나마 가지고 있던 일자리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자기라도 다시 풀타임 일을 해야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현재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자기가 미국에서 취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기보다 외국에서 일할 기회를 여전히 찾고 있다. 미국 내에서 그녀가 좋은 조건의 일을 찾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외에 눈을 돌리고 있는 듯 하기도 하고 외국에서 일할 기회를 찾느라 그나마 국내에 있는 기회마저 놓치고 있는 듯 하기도 하다.

샐리에게 외국 생활이라는 것이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라는 충고를 옆에서 하기도 하면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외국 생활에 대한 환상을 깨뜨려 보고자 하지만 그녀는 별로 귀담아 듣지 않는다. 때로 내 눈에는 외국에 나가고자 하는 샐리의 동기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아 보인다.

선교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녀의 욕구와는 너무 거리가 있는 그녀의 상황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불행했던 가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른 나이에 결혼을 시도했듯이, 불안정한 그녀의 경제적·사회적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한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외국 생활을 동경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숨은 동기가 어디에 있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웬만한 본토인들조차 경제적·사회적 안정을 누리며 사는 것이 쉽지 않은 나라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고 불리는 나라지만, 기회를 포착하여 여유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은 소수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의료나 취업, 고등교육 등과 같이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마저 박탈 당한 채 힘겹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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