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복(福)을 빌어주는 목사의 횡포
엉뚱한 복(福)을 빌어주는 목사의 횡포
  • 손경호
  • 승인 2007.04.22 1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회 분규의 대부분 원인은 복에 대한 잘못된 개념 때문

어떤 종교든지 복에 대한 개념은 가지고 있다. 다만 복에 대한 해석이 각각 다를 뿐이다. 이상할 정도로 현존하는 대부분의 종교들이 강조하는 복의 형태는 공통성을 띠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복을 보장받지 못하는 종교는 유행성이 떨어진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모든 종교는 자연스럽게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떤 형태의 복이든지 조작해야 하며 자신 있게 대중들에게 권해야 한다. 교회도 대중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무시할 수 없기에 복에 관하여 여타 다른 종교들과 비슷한 형태로 강조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수 개월 전 이곳 보스톤 지역 교회들이 연합하여 모이는 부흥집회 때 있었던 일이다. 한국의 이름 있는 목회자가 강사로 초청되어 청중들에게 자녀를 위한 특별헌금을 요구하며, 마치 자기가 자녀들을 위해 복을 빌 수 있는 전문가인 것처럼 망발을 했다. 자녀들을 위한 것이라면 어디에 살든 간에 껌뻑 죽는 한국 부모들의 심리를 이 강사는 정확하게 파악한 것 같다.

이러한 '복채' 형태의 기도가 기독교의 문화라면 교회는 잡다한 우상숭배 종교의 분파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기독교가 가르치는 복의 개념은 독특하다. 자본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물질 안정과 사회 안정을 약속하는 삶의 방식은 기독교 신앙이 가르치는 본질적인 복의 형태가 아니다.

최근 한인 교회에서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교회 분규 문제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부분 복에 대한 개념 정립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많이 소유하는 것이 복 받은 것이며, 많은 교인을 거느리는 것이 목회의 성공이며, 열성 추종자가 많을 때 강한 리더로 인정된다면, 성경과 거리가 먼 기독교일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때로는 대중이 선호하는 유행과 비슷하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근본적인 목적은 대중이 좋아하는 유행과 전혀 다르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현상을 마치 자기 소유인 양 횡포를 일삼는 지도자의 자질이 문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거의 동일하게 현재 교회의 체제로는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가 끊임없는 자기 훈련과 혹독한 자기 절제를 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기독교적인 사이비 종교로 전락할 수 있다. 묵은 체제를 쉽게 고칠 순 없다. 그렇다면 그 체제를 운영하는 양질의 지도자를 생산해야 한다.

초대교회의 베드로는 한 번 설교하여 3,000명이 회개하고 세례 받는 엄청난 일을 했었다. 그러나 그는 현대 교회들이 추구하는 재산 소유의 형태를 교인들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서로 나누었으며 회심한 그들을 한 교회에 집중시키지 않고 흩어져서 일하게 만들었다. 물론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 교회의 변천 과정을 무시하자는 말은 아니다. 효과적인 전도와 복음 증거를 위해서는 조직도 필요하며 조직에 따라오는 경제적인 뒷받침도 요구된다. 문제는 모든 권위와 결정권이 목회자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선지자의 타락상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시대마다 타락한 선지자가 있었지만 집단적인 선지자의 타락 모습을 설명해준 예가 있다. 유명한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였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경제적인 부와 정치적인 안정을 누리던 때였지만 종교적으로 상당히 타락한 시기였다. 당시는 궁중에서 주로 왕을 대상으로 선지 활동을 하는 선지자 그룹이 있었다. 시드기야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궁중에서 거짓말을 주로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예언해 주는 미가야라는 선지자도 있었다. 왕에게 아부하며 거짓말을 일삼는 선지자들은 궁중에서 호화롭게 잘 살았다. 그러나 바르게 외치는 선지자는 고생하며 골방에서 고통을 당했었다. 진실은 곧 밝혀졌고 거짓 선지자들의 파워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잘못된 관행을 옹호하며 잘못된 행동을 집단의 힘으로 정당화하려는 교회는 쉽게 사그라질 것이다. 비록 많은 추종자가 그릇된 지도자를 옹호할지라도 바르게 충고하는 한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아는 것은 지도자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겸손한 모습이다.

목회자의 횡포가 그 어느 때보다 잦아지는 현상은 복을 빌 자격이 목회자게에게만 집중되었다는 잘못된 무속종교의 흐름에서 유래되었다. 성경은 복을 빌 수 있는 자격이 목회자에게 집중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구약의 족장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복을 비는 시작은 제사장 시대 훨씬 이전에 부모들의 몫이었다.

교회는 가정의 신앙 전통을 되찾아주어야 할 것이다. 목회자가 부모의 자격까지 다 훔쳐갔다면 이제는 자녀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부모의 모습을 회복해주어 건강한 가정을 만들도록 해야 할 것이다. 건강한 가정은 건강한 교회를 세워갈 것이다.

* 손경호 / 보스톤 성령교회 목사
* 이 글은 LA기윤실 소식지 4월호에 실린 것으로, LA기윤실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