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참사 현장을 찾은 이유
버지니아 참사 현장을 찾은 이유
  • 박지호
  • 승인 2007.04.23 2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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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들 불똥 튈까 걱정…미국인들 오히려 희생자 가족 위로

   
 
  ▲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의 잔디광장에 설치된 추모판들은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박지호)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으로 한인 사회가 뒤숭숭하다. 범인이 조승희라는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더 그렇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도 한몫했다. 한 한인 식당은 돌팔매질에 유리창이 깨졌다는 둥 ‘Korean Go Home'이라는 간판이 나붙었다는 둥의  이야기들이 나돌았다. 한인 사회 언론들은 앞 다퉈 범인이 한국인이란 사실에 주목하며 헤드라인을 뽑아 올렸다. 한국 정부는 대통령까지 나서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정부가 나서서 사과에 가까운 성명서까지 발표하는 등 촉각을 곤두세웠다. 미국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한인들이 이번 사태가 가져 올 파장을 우려해 바짝 긴장하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실제로 어떤지 궁금했다. 이것이 버지니아를 찾은 이유다. 

   
 
  ▲ 폴리스 라인으로 둘러싸인 노리스 홀. (박지호)  
 
뉴욕에서 차로 꼬박 9시간을 달려 버지니아 공대가 있는 블랙스버그에 도착했다. 사건 발생 5일 만이다. 지나가는 차들마다 추모의 의미로 리본을 달고 있었고, 학교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참사 현장이라고 느끼기 힘들 정도로 대학 주변은 조용하고 평온했다. 하지만 막상 길을 오가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움찔했다. 애초부터 이번 일로 한국인이 긴장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사람들도 눈인사를 건네며 지나갔지만, 심리적인 위축감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었다.

   
 
  ▲ 가장 큰 피해가 있었던 노리스 홀 앞에서 유족들이 서로를 부둥켜 안은 채 흐느끼고 있다. (박지호)  
 

우선 대학교 앞에 있는 피자 가게에 들러 직원들에게 몇 마디 물었다. “이번 일 이후에 한국 사람을 볼 때 경계심을 갖거나 거부감이 생기지 않았냐”고 질문했다. 그 친구들도 감을 잡았는지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냐”며 되물었다. “한인들이 이번 사건으로 보복을 당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하자,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으며, 이번 일은 조승희라는 개인의 문제이지 한국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반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학교에 들어섰다. 월요일 총격 사건 이후로 1주일 간 휴교한 터라 학생들은 많지 않았지만, 사건 현장인 노리스 홀 앞에는 추모객들로 붐볐다. 노리스 홀 앞에는 폴리스 라인이 둘러쳐져 있었고, 경찰관들이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사건 현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애도를 표했다. 학생 몇몇은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한참을 흐느끼기도 했다.

노리스 홀 앞 잔디광장에는 희생자 추모석들이 타원형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추모객들은 성조기와 꽃다발이 놓여 있는 추모석 앞을 말없이 돌며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33명의 희생자를 상징하는 33개의 추모석 중에는 조승희 씨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 씨의 추모석 앞에는 조 씨의 유가족이 평안을 되찾고 하루속히 상처가 치유되길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와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다른 편지에는 조 씨에게 “널 미워하지 않을게…미안해, 친구가 되어주지 못해서…사람들의 분노가 용서로 바뀌길…”이라는 말들을 남겨, 가해자인 조 씨도 희생자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추모하는 분위기였다. 

   
 
  ▲ 노리스 홀 앞 잔디광장에 줄지어 늘어선 추모석. 33명의 희생자를 상징하는 33개의 추모석 중에는 조승희 씨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지호)  
 
이 대학 기독학생회의 올리버라는 학생은 “이번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하나님과 복음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한국인들이 우려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죄성과 사회의 구조악이 함께 빚어낸 결과”라며 “우리 모두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스카긴스라는 학생은 “본질적인 대안은 될 수 없지만 총기 사용에 대한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노리스 홀의 2층 강의실 창문이 열려 있다. 사건 당일 총성이 들리자 몇몇 학생들은 강의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다. (박지호)  
 
버지니아 공대 주변에 있는 한인들의 반응도 살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유학생들과 한인들은 주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위험한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한국 언론들의 반응을 부담스러워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근처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박재홍 씨는 “한국 유학생들이 긴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은 없다”고 말했다. 박 씨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집 밖에 나다니지 말라는 말을 많이 했다”며 한국에서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나 한국 언론의 반응에 대해서는 “미국인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나오는 반응”이라고 말하며 “집단적인 사고가 익숙한 한국인으로서야 그런 생각이 들겠지만 미국인들은 개인주의적인 사고에 익숙하기 때문에 한인들과 별개의 문제로 받아들인다”며 이번 사건을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 추모석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한 학생. (박지호)  
 

버지니아 공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오창근 씨도 “동양인 친구들은 염려를 하지만 미국인 친구들은 놀라울 정도로 전혀 내색을 않는다”며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서로를 배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설사 미국 사람들이 마음으로는 한국인이 미울지 몰라도 지난 20~30년 동안 인종문제에 대해서 교육을 철저히 받아왔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쉽게 옮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4월 22일에는 조 씨의 부모가 살고 있는 워싱턴 센터빌 지역을 방문해 조 씨의 가족들이 한 때 다녔던 곳으로 알려진 한인 교회를 찾았다. 이 교회의 담임목사는 “조 씨의 부모가 거주하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이긴 하지만 그들이 우리 교회에 나온 적은 없다”고 말하면서 “불과 1.5마일 떨어진 곳에 이번 참사의 주인공이 살았지만 돌아보지 못했다는 점에는 책임감은 느낀다”고 전했다. 담임목사는 또 “미국 전역에서 조 씨의 가족을 위로하는 전화가 걸려오고, 조 씨를 추모하는 화환을 보내오고 있다. 어떤 미국인은 직접 찾아와서 조 씨의 가족을 돕고 싶다는 말도 전했다”며 미국 사회에 조 씨와 그의 가족도 피해자들 중의 한 명으로 여기고 위로하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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