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속의 작은 한국'을 극복하자
'미국 속의 작은 한국'을 극복하자
  • 박지호
  • 승인 2007.04.25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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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사회의 다음 세대를 위하여 ③ 2세들의 눈으로 본 한인 사회

   
 
  ▲ '여풍당당' 한인 2세들. 이들은 이날 좌담에서 한인 2세들이 미국 사회와 한인 사회로 깊숙이 진출해 양쪽을 견인해 갈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1세 부모들이 도와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박지호)  
 
한인 2세들이 바라본 한인 사회는 ‘미국 속에 있는 또 하나의 한국’이다. 미국 사회보다는 한국 사회에 더 관심이 많다. 한국의 정치·경제 소식에 울고 웃으며, 한인 회장이 누가 될지에 더 집중한다. 2세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하면서 모든 행사는 한국말과 한국식으로 진행해 2세들이 설 자리가 없다. 한국에 있는 학부모들처럼 자녀들의 영어 실력을 높이는 데는 열과 성을 다하지만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는 시큰둥하다.

버지니아 총기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인 사회가 들썩였다. 집단적인 사고가 더 익숙한 탓이다. 2세들은 한인 사회가 미국 속에 작은 한국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미국 사회와 다른 커뮤니티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세대 간에 신뢰와 애정이 형성되도록 2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에도 힘써달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한인 사회의 고질병인 폐쇄성을 극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좌담에는 청년학교에서 저소득 노동자들을 위한 종합 법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채지현 변호사, 퀸즈 YWCA 이사이자 초등교사인 그레이스 윤, 1.5세와 2세들의 연합 봉사단체인 YKAN(the young korean american network) 회장인 줄리 조 씨가 자리를 함께했다.

미국 속에 작은 한국

줄리 조 / 굳이 한인 사회를 정의하자면 미국 사회 속에 작은 한국인 것 같다. 1세들은 여전히 한국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다. 몸은 미국에 있는데, 눈과 마음은 여전히 한국에 가 있는 느낌이다. 미국 사회는 저만치 앞서가는데 1세들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는 느낌이다. 이민 오셨을 때 그대로 말이다.

   
 
  ▲ 1.5세와 2세들의 연합 봉사단체인 YKAN 회장이며 미국암협회에서 일하고 있는 줄리 조 씨. (박지호)  
 

채지현 / 미국 사회와 한인 사회가 교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다. 한인이 소수 민족이니까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한인 사회가 미국 사회와 다른 커뮤니티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자문해야 한다.

그레이스 윤 / YWCA에서 활동하다 보면 1세들과 2세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가 있다. 그런 자리에서 언어 때문에 힘들어 하는 2세들이 있다. 물론 2세들이 한국말을 잘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무조건 한국말로 해야 하는 분위기라서 2세들이 부담스러워한다.  

줄리 조 / 1세들은 모임이나 행사에서 한국말로 하고 한국식으로 진행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말과 한국식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것과, 2세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해지고 한국 사회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2세들을 향한 작은 배려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영어로 된 한인 신문부터 있었으면 좋겠다. 2세들이 한국 사회뿐 아니라 한인 사회에 관심을 갖고 싶어도 그러기 힘든 환경이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직접 영어로 번역해서 회원들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그레이스 윤 / 1세들은 2세들이 함께 참여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한번 맡으면, 그 일이 평생 내 일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들 정도다. 1세들이 도움을 청해서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손을 놓고 뒤로 빠져버린다. 요즘 들어서 무섭다. (웃음)

줄리 조 / 2세들 키운다고 2세들 모아놓고, 지시만 하고 가버릴 때가 있다. (웃음)

그레이스 윤 /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사실 일하려고 온 게 아니라 함께 하려고 온 것인데….

채지현 / 1세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너희는 영어를 잘 하잖니.” 영어를 잘 하면 못 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끔 우리 단체에 찾아와서 무조건 도와달라고 조르는 분들이 있다. 청년학교에 16개의 봉사 프로그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가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한국말을 잘 한다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웃음)

연합이 그렇게 힘든가요?

그레이스 윤 / YWCA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한인 사회가 연합이 잘 안 된다는 점이다. 막상 큰일이 생겼을 때 무슨 일을 하나 하려고 해도 힘들다. 정치인도 없고, 펀딩도 약한데 연합마저 안 되니 일을 진행하기가 힘겹다. 한인 사회 권익 옹호를 위해 서명을 받거나 시위가 필요한 시점에도 참여가 저조하다.

   
 
  ▲ 청년학교에서 한인 이민자들과 저소득 노동자들을 위해 종합 법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채지현 변호사. (박지호)  
 

채지현 / 거기에는 고정관념도 한몫을 한다. 시위가 주업이라서 잘 안다. (웃음) 70~80년대 이민 온 1세들은 군사독재정권 치하에 있던 사람들이다. 당시는 반정부 시위가 많았다. 지금에서야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었다고 인정하지만, 그때는 데모는 곧 나쁜 짓이라는 통념이 강했다. 때문에 정당한 시위라 하더라도, 내용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 그런 일로 혹여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줄리 조 / 그런데 신기한 것은 지난 2002년 월드컵만큼은 한인 사회가 놀랍게 하나로 뭉쳤다는 것이다. (웃음) 그땐 굉장했다. 다른 커뮤니티 사람들도 놀랍다며 한마디씩 하더라. 이런 모습을 보면 한인 사회가 뭉칠 줄 모르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레이스 윤 / 앞에 나서서 하나로 묶어줄 사람이 없는 것도 문제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없다는 거다. 한인 사회와 소수 민족들을 위해 제도를 개혁하고, 개혁한 제도를 집행할 위치에 한인들이 많이 진출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흑인 커뮤니티의 경우 흑인 사회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도 존경받는 리더들이 많다. 그래서 이슈가 있을 때마다 힘 있게 이끌고 나간다. 한인 사회도 그런 인물을 키우는 것이 장기적인 차원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왜 그렇게 장로님이 하고 싶어요?
 
그레이스 윤 / 교회에서도 왜 그렇게 장로가 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장로가 되면 봉사도 더 해야 하고, 헌금도 더 많이 해야 하는데 말이다. 한국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보다 어떤 ‘자리’에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줄리 조 / 교회에서 장로님이 되면 마치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웃음)

채지현 /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한국보다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타이틀에 집착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한인업소록을 보면 단체들이 엄청 많다. 업종별로 다 있다.

그레이스 윤 / 한인 단체들이 다양하고 많은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같은 목적을 가진 단체들이 따로 일하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깝다. 함께 일하면 더 영향력 있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심지어 동일한 목적을 가진 단체들 간에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볼 땐 안타까움을 넘어 한숨이 나온다. 
 
채지현 / 커뮤니티 대표를 뽑는다고 포스터 붙이는 민족은 한국밖에 없더라. (웃음) 어쨌든 이왕 한인회장을 뽑을 거면,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만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 한인 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인 사회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도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며, 한인 사회가 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박지호)  
 
자녀에게 한글 공부도 시키세요

그레이스 윤 / 어제 한 모임에서도 지금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버지니아텍 총격 사건을 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대화의 중요성’이다. 이민 오신 부모님들이 많이 바쁘겠지만 자녀들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한국 이민자들이 많지 않은 지역에 있는 학생들의 경우는 더 그렇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들 하잖나. 이민 초기에 바쁘고 정신없겠지만 자녀가 학교에 적응을 잘 하고 있는지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처음에는 학교도 자주 찾아가고, 말을 못 해도 선생님도 자주 만나고 해야 한다. 그러면 선생님이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다.

   
 
  ▲ 퀸즈 YWCA 이사이자 초등학교 교사인 그레이스 윤 씨. kta(korean teacher's association) 멤버로도 활동 중이다.(박지호)  
 

줄리 조 / 요즘 한국과 한인 기자들에게 전화를 많이 받는다. 그런데 이번 총격 사건을 접근하는 방식이 아쉽다. ‘주변에 있는 미국 사람들이 욕하지 않더냐’, ‘피해는 없냐’는 식의 질문만 한다. 한인 커뮤니티를 보호하는 데만 관심을 가지지, 교육에 대한 이야기나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 기자는 없었다. 만날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만 하고, 정작 자녀들의 정신 건강 상태를 체크하거나, 심리 상태를 검진하려는 등의 노력이 없는 것이 오늘날 한인 사회의 현실인데 말이다.

채지현 / 한인 2세들이 5살까지는 한국말을 잘 한다. 하지만 유치원에 가면서 3개월 동안 벙어리가 됐다가 이후부터 영어로 말하기 시작하고,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영어만 쓴다. 그리고 중학교 들어갈 때쯤엔 한국말을 전혀 못 한다. 부모님과 관계도 그때부터 단절되는 것이다. 사실 그때 가장 고민이 많은 시긴데,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단절되면서 부모님과 자녀들 간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그레이스 윤 / 공감한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것이 이원언어학교(Dual language public school)다. 미국 교과 과정을 한국말과 영어로 함께 가르치는 학교다. LA에는 벌써 몇 개나 생겼지만, 뉴욕에는 몇 해 전에 처음 시작됐다. 하지만 학생 모집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들었다. 20명 모집에 3년이나 걸렸단다. 미국의 교과 과정을 한국어와 미국어로 동시에 배울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학부모들이 꺼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줄리 조 / 이원언어학교라고 하면 아직까지 영어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ESL코스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 나도 결혼해서 자녀가 생기면 그런 학교에 보내고 싶다. (웃음) 한인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던 친구들도 ‘너는 한국말 잘 하니까 좋겠다’며 많이들 부러워한다.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1.5세나 2세들에게는 큰 축복이다.

   
 
  ▲ 청년학교 채지현 변호사는 "전 세계에서 발생한 '교내 총기 사건'이 40여 건이 있었는데, 그중 20건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며 이번 총격 사건의 본질은 총기 사용에 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박지호)  
 
타 소수민족 돌아보는 계기 되길

채지현 / 조승희라는 학생은 8살 때 이민 와서 미국에서 더 오래 살았다. 쉽게 말해 법적으로만 한국인일 뿐 미국인이나 다름없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총기 사용에 대한 문제다. 미국에서는 술보다 사기 쉬운 것이 총이라고 하잖나. 돈이 있고 특별한 중범죄 경력만 없으면 아무나 총을 살 수 있는 나라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전 세계에서 발생한 ‘교내 총기 사건’이 40여 건인데, 그중 20건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레이스 윤 / 내가 있는 학교도 한국인 학생들이 많지만 특별한 사고는 없었다. 이번 일이 큰 사건이긴 하지만 한국 사람이라는 점에 강조점을 두고 있진 않다. 물론 한국 학생이 그랬지만 한국 하곤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죄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대신 이번 일을 한인 사회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활용했으면 한다. 자녀들의 공부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대인관계, 인성 문제, 사회 적응 문제, 부모와의 관계 등 많은 얘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줄리 조 / 이런 시점에서도 한국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추모식 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하려 드는 것보다 고통당한 희생자 가족과 함께 아픔을 나누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일이 한인 사회가 다른 인종이나 소수민족들에게 눈을 돌리고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우리끼리만 잘 사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채지현 / 맞다. 한인 사회가 더 성숙해져야 한다. 이번 일을 통해 우리 역시 소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타 커뮤니티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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