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살펴 드릴게요"
"우리가 보살펴 드릴게요"
  • 이태후
  • 승인 2007.04.25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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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 갖고 배려…눈물과 웃음도 함께

우리 동네 이웃들과 조금씩 친해지면서 골목에서 그들과 얘기하는 시간이 늘었다. 이웃들의 아들, 딸, 손자, 손녀 얘기도 듣고, 그들의 꿈과 좌절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가끔은 자신들이 세례받게 되었다고 내게 자랑스럽게 얘기하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목사인걸 알기에, 나를 대할 때는 말조심을 하는 편이다. 내 앞에서 말하다 다른 사람 흉을 보며 욕을 하면, 옆에서 "목사님 앞에서 못하는 얘기가 없어"라고 핀잔을 주고, 그러면 흉을 본 사람은 또 정색을 하고 내게 사과를 한다. '누가 뭐라 그랬나?' 속으로 생각하지만, 한 편으로는 목사라고 나를 위해주는 마음이 고맙기 그지 없다.

가끔 내 이웃들이 내게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보살펴 드릴게요." 그런데 그 말이 입에 발린 인사치레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눈들이 하루 종일 골목을 내다보며 우리 집에 드나드는 사람을 살펴본다. 그래서 "어제 친구들이 왔다 갔지요?" 혹은 "아까 왔던 그 사람은 친구인가봐요?" 묻는다. 만일 낯선 사람이 혹시 수상한 짓을 할려치면, 그는 아마도 내 이웃들의 걸죽한 욕지거리를 감수해야 할 거다.

내가 차를 타고 어딜 다녀오면, 이웃들은 내게 주차 공간을 확보했다고 손짓하며 그 자리에 차를 대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여행을 다녀오면 어딜 다녀왔냐고 챙겨주는 내 이웃들. 어떻게 보면 사생활 간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내게는 정겨운 관심이다. 그래서 나도 이웃들에게 내 행선지를 알리곤 한다. 그러다가 생각하지 않은 대화의 문이 열리기도 한다. 짐작하지 못했던 이웃의 과거를 통해 지금과는 너무나 달랐던 옛날을 얘기하며 묻어 두었던 자신들의 상처를 드러내기도 한다.

한번은 한인 2세 후배인 토니가 밤 늦게 우리 집을 찾다가 다른 골목에 있는 집에 들어간 적이 있다. 여름이라 덧문만 닫은 집들이 많아 토니가 별 생각없이 문을 열었더니, 거실에는 낯선 흑인들만 앉아 있었다. 순간 당황한 토니는 친구를 찾다가 길을 잘못 들었노라고 더듬더듬 설명을 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어떤 친구를 찾느냐고 친절하게 물었다. 내 후배는 잠시 난감했다. '이름을 말하면 알까?' 그 순간 번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내 친구는 나처럼 생겼는데요." 놀랍게도 그 말을 들은 집주인은 웃으며 자기가 그 집으로 안내하겠노라고 하며 토니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무런 영문을 모르고 그를 기다렸던 내게 토니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내가 동네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농담을 했다. 내가 유명인사가 된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정말로 나를 보살펴 준 것이다.

내가 목사라는 소문이 퍼져서 가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기도를 부탁하기도 한다. 한번은 식당에 갔는데, 옆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하며 "목사님이시지요?" 물었다.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얘기를 들었다며 내게 기도 부탁을 했다. "무슨 특별한 기도 제목이 있습니까?" 묻자, "말하기는 그렇구요, 그냥 기도해 주세요. 영적 건강과 육신의 건강과 형통을 위해서." 나를 보살펴주는 이웃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전한 소문 덕을 보는 셈이다.

내 이웃들은 내가 한 작은 일에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 어느 여름 날 아침,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우리 집 계단에 앉아 있던 이웃 여인이 냄새를 맡고는 커피 냄새가 너무 좋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커피를 나누어 주자 고맙다며 나와 함께 계단에 앉아 정말 맛있게 커피를 마셨다. 그 이후로 그 여인은 나만 보면 그렇게 맛있는 커피는 처음 마셨다며 두고 두고 그 얘기를 했다. 사실은 자기가 그 전날 술도 한 잔 하고, 대마초도 피우고 해서 속이 좋지 않았는데, 그 커피를 마시고는 머리도 맑아지고 속도 풀렸다나.

그 전에는 인사나 겨우 하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그 이후로 친해져서 이웃들을 볼 때마다 내 칭찬을 했다. 아버님께서 잠시 들르셨을 때, 그 여인은 우리 부자를 보자 아버님께 엄지 손가락을 위로 향하며 세우고는 "당신 아들은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커피 한 잔을 나눈 아무것도 아닌 일을 이 여인은 대단한 선행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내 옆집에 사는 신디는 2년 전에 남편을 잃었다. 남편 빅터는 그 전부터 심장질환으로 계속 앓고 있었다. 병으로 인해 항상 고열에 시달린 빅터는 언제나 얼음을 달고 살았다. 얼음물을 마시거나, 아니면 얼음을 삼켜서 잠시 고통을 잊곤 했다. 나를 보면 가끔 1 달러만 빌려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 돈을 가지고 무얼하려냐고 물으니, 얼음을 산다고 해서 대신 우리 집 냉장고에서 얼음을 가져다 주곤 했다. 얼음 제조기가 있으니 서슴지 말고 부탁하라고 말한 이후, 빅터가 살아있을 때는 일주일에 며칠씩 얼음을 건네 주곤 했다. 빅터가 병원에 수술하러 들어가기 전날, 나는 빅터와 함께 집 앞 계단에서 기도했다. 수술 절차를 위해, 그리고 회복을 위해서. 그런데 수술을 마친 빅터는 후유증을 견딜 수 없어서 세상을 떠났다. 그때 신디는 무척 좌절했다.

자녀들도 다 집을 떠나고 비록 병든 남편이지만, 그 한 남자를 의지해서 살았는데 그 남편이 세상을 떠났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신디와 빅터는 우리 골목에서 유일하게 결혼해서 함께 사는 부부였다. 거의 대부분 여자 혼자 가장 역할을 하거나 남자 친구와 동거하는 정도인데, 신디는 정식으로 결혼해서 함께 살았으니 그녀에게 남편은 단순한 남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존재였다. 그녀가 살아갈 힘과 자존감을 남편에게서 찾았는데, 그 남편이 세상을 떠났으니.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그녀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장례식이 있는 날, 그녀가 다니는 교회에서 열린 입관 예배에 참석했다. 흑인들이 가득한 교회에 나 하나 달랑 동양인. 슬픔을 가누지 못해 쓰러지는 신디를 보며, 내 이웃이 사는 삶이 얼마나 고통과 슬픔으로 얼룩져 있는지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오열하는 그녀를 보며 나도 눈물을 흘렸다. 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무력감에 한편으로 절망했지만, 그게 내 자리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는 것. 음식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것. 내 이웃이 나를 보살펴 주기에 나도 내 이웃을 보살펴 주며, 참 이웃이 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신디가 남편을 잃은 후, 이십대 초반 정도의 아들이 엄마를 돌본다며 가끔 옆집에 와서 지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아들이 친구들과 마약을 하다가 방에 불을 피워놓은 채 밖으로 나갔다. 그게 순식간에 퍼져서 신디가 살던 일층이 홀랑 불에 타버렸다. 다행히 집에 아무도 없어서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신디가 지닌 가재도구, 옷 모두 못 쓰게 되었다. 우리 집에도 옆에서 스며든 연기, 불 탄 냄새가 배어서 일주일 동안 가시지 않았지만, 기막힌 신디의 처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렇게 힘든 일이 겹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신디가 세들어 사는 집 주인은 신디의 아들을 나무랐고, 신디는 그게 섭섭해서 집주인에게 대들었다.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마약을 하다 엄마가 세들어 사는 방에 불을 내고. 난 그녀의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이 좋은 집주인 스미스는 이 참에 집 수리를 하게 되었다며 자기 돈으로 집 수리를 시작했다. 아들은 밉지만, 신디가 불쌍하다며 이전보다 더 좋게 방을 꾸며서 신디가 다시 살 수 있게 했다. 가난한 이가 같은 처지의 가난한 이웃을 돕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낙천주의(?). 사람은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 거창한 신학 용어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난 그게 우리 이웃들이 지니는 신앙이라고 믿는다.

신디가 돌아온 날, 나는 주방세트를 선물했다. 비싼 건 아니지만, 꼭 필요한 물건들. 받는 그녀는 커다란 마음으로 조그만 선물을 받았다. 나는 언제나 내 이웃들이 나를 보살펴 주는 만큼 내 이웃들을 보살필 수 있을까? 주님, 제 이웃을 섬기는 일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제 마음을 지켜 주소서.

이태후 목사 / 템플대학교 IVF 간사
*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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