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사용 내역 정리해야 하는 이유
헌금, 사용 내역 정리해야 하는 이유
  • 최호윤
  • 승인 2007.05.10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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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 서류도 없이 써버리는 돈…교회 커지면 분쟁 생겨

   
 
  ▲ 최호윤 회계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일반인을 포함한 현대 크리스천들은 스스로 판단해서 필요한 곳에 돈을 사용하고, 좀 더 규모 있는 사람은 스스로 잘 썼는가를 평가하는 차원에서 사용한 내역을 기록하고 정리한다. 하지만 이렇게 정리한 내역을 누군가에게 보고하거나 제출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본인의 책임으로 썼고, 본인 이외에는 사용한 호주머니 돈에 대한 이해관계자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업무 목적으로 경비를 지출한 경우 그 내역을 정리하여 증빙서류(영수증, 신용카드전표 등)를 제출하여 정산한다. 시내교통비(버스, 지하철) 같이 증빙을 받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일시·구간·방문 목적·방문자 등을 기록한 내부 청구서 양식을 사용하여 실제 사용한 금액을 기준으로 정산한다.

왜 그런가. 지출한 경비는 개인의 돈이 아니라 기업(출자자)의 돈이므로 기업의 돈을 관리하는 직원들은 그 사용 내역을 일을 맡긴 기업에게 상세히 알릴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설사 기업의 주인인 오너(Owner)라 할지라도 예외 없이 증빙 처리를 하여야만 한다. 오너가 증빙 처리를 하지 않으면 그것은 기업의 경비가 아니라 오너 개인 차원의 지출이기 때문이다.

교회 결산서를 볼 때마다 실비 정산하지 않고 목회 활동비․목회 도서비․심방비 등의 명목으로 정액으로 지급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왜 증빙 처리하여 실제 발생한 비용으로 정산하지 않는가” 하고 물어보면 교인들은 “금액이 얼마 되지도 않고, 바쁜 목사님에게 영수증 챙기는 노력을 덜어드리고, 또 믿는 목사님 알아서 사용하시는데 그런 것까지 따질 필요가 있는가” 하고 대답한다. 일부 교회에서는 목사님과 제직회(당회 포함)가 협의하여 정액으로 지급하는 예산에 대하여서 증빙 처리하지 않는 조건으로 예산을 삭감한 경우도 있다.

교회에서 정액 처리를 선호하는 것은 편리하기 때문이다. 지급하는 교회 입장에서는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였다고 말하기 쉽다. 또한 받은 사람은 받을 때에는 용도가 정해져 있지만 받은 이후에는 상황에 따라 본인의 판단으로 사용할 수 있고 누구에게 사용 내역을 보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은 없어진 기업의 판공비와 같이.

헌금,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것이 더 중요

교회의 재정은 누구의 책임으로 사용하여야 하는가. 담임목회자인가. 성도들이 드린 헌금은 하나님이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쓰신다. 따라서 교회의 재정은 특정인의 판단과 책임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한 공동체의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책임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헌금을 잘 쓰기 위해서는 헌금을 사용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교회 공동체는 관심을 가지고 같이 고민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조금 불편할지라도 실비 정산 처리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

정액으로 지급한 경우 경비를 사용하다가 남은 잔액을 교회에 반납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남은 잔액은 스스로 알아서 쓴다. 마치 개인의 소득을 스스로 알아서 사용하는 것과 같이. 받을 때에는 특정 용도(목회 활동비 등)로 받지만 정확히 특정 용도로 사용하였는지는 본인도 정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모른다.

정액을 지급한 교회는 특정 용도로 지급했다는 것에 만족하는 반면 지급한 돈을 제대로 쓰는지 여부에 대하여 공동체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중대한 실수를 범한다. 사례비를 지급하는 경우는 지급 받은 자의 소득(주머닛돈)이 되므로 지급하는 단계 이후부터의 사용은 지급 받은 사람이 관리할 책임이다. 교회가 정액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다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경우는 개인의 소득으로 지급하는 경우만 해당된다.

받은 경비를 초과하여 개인 돈을 더 많이 쓰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반대로 교회가 정액만 지급하고 박봉으로 힘들게 생활하는 목회자가 개인 호주머니 돈으로 활동하게 하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 된다. 즉, 교회의 재정이 사용되어야 할 곳에 제대로 사용되지 않는 것이 된다.

실비 정산 처리하는 관점은 청지기 입장에서 일을 맡기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고, 정액 처리하는 관점은 경비 사용 주체를 스스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소한 관점의 차이가 행동 양식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귀찮아도 비용 지출 내역을 정리할 때마다 순간순간 하나님이 맡겨주신 재정이 교회를 통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는 반면에, 정액으로 지급된 비용을 정리하는 절차 없이 사용하는 경우 어느새 본인이 드려진 헌금을 사용하는 주인이 된다.

초기에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분쟁이 별로 없다. 어려울 때에는 같이 세워나가는 아름다운 간증만 있다. 교인 수가 많아지고 교회 건물을 구입하거나 신축하고 재정이 확대되면서 발생되는 분쟁의 원인은 초기에 무의식적으로 가진 헌금 사용의 주인 관점에서 시작한다. 경비를 집행하는 사람은 내가 사용하는 것은 바르게 쓰니까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돈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드려진 공동체의 돈이므로 특정인이 알아서 사용할 수 없다.

최호윤/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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