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촌지도 안 받고 여기까지 왔겠어?"
"설마 촌지도 안 받고 여기까지 왔겠어?"
  • 김종희
  • 승인 2007.05.2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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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부터 무너진 교회들…희망의 탑 쌓기 위해 실력을 쌓자

기자가 촌지 안 받는 건 '자랑거리'가 아니라 '기본거리'

"촌지 잘 받는데 기사는 잘 쓰는 기자 될래? 아니면 촌지 절대 안 받는데 기사는 못 쓰는 기자 될래?" 한국에 있을 때 후배들에게 물어보면 대개 "촌지도 안 받고 기사도 잘 쓰는 기자가 되겠다"고 한다. 정답이긴 하지만 내 질문에 딱 맞는 답은 아니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어느 것을 고르겠냐는 것이다.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다시 묻는다. "환자가 주는 촌지 넙죽넙죽 잘 받는데 수술은 기가 막히게 하는 의사 될래? 아니면 환자한테 친절하고 촌지도 안 받는데 수술은 지지리도 못하는 의사 될래?" 내 부모 또는 자식이 죽어가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가정해보자. 환자 대하는 태도가 싸가지 없고 오만하기 짝이 없지만 수술을 잘 해서 내 부모를 살릴 의사를 찾아가겠나, 아주 친절하고 촌지 안 받는데 수술 못 하는 의사를 찾아가겠나. 이렇게 내 문제로 좁혀놓으면 첫 번째 질문보다는 두 번째 질문이 조금 더 마음에 와서 닿는 탓일까, 전자를 택하는 쪽이 많아진다.

기사를 쓰는 것과 수술을 하는 것을 비교할 때 후자가 사람의 생명을 직접 다루는 것이므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교회 문제를 다루는 기자는 의사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썩은 부위는 도려내야 하고, 새살이 돋도록 치료도 잘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마음만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별로 소용이 없다. 그 마음을 글로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마음'은 기본이고, 기본 이상의 '실력'을 쌓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 내 평소 지론이다. 물론 기본이 안 되어 있으면 그 이상의 것을 논할 가치도 없다.

후배 기자들 중에 가끔 촌지와 관련한 글을 쓰는 경우가 있다. 취재 현장을 가다 보면 촌지가 나돌아다닌다. 그것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는 것이다. 그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다른 기자들은 다 촌지를 받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절대 촌지를 안 받는다"고 자랑스레 쓰는 것은 도무지 마땅치가 않다. 기자가 촌지를 안 받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을 자랑하는 건 팔불출에게나 어울린다. 기자로서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려면 기사를 잘 써야 한다. 촌지 안 받는 것이 실력이 아니라 기사를 잘 쓰는 것이 실력이기 때문이다.

내 양심의 기준은 30억 원

미국에 와서 5개월 지내는 동안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들었다. 때로는 비행기를 타고, 때로는 차를 몰아 몇 시간 걸리는 먼 곳에 가서 취재를 하면 "돈 안 받고 여기까지 올 리가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살지 않은 경우를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다. 도대체 돈을 얼마나 받았기에 플로리다, 시카고, LA 등 먼 길을 마다치 않고 가겠나. 그리고 돈을 얼마나 받는다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겠나. 그게 돈으로 계산될 문제일까.

한국의 <뉴스앤조이>도 후원에 많이 의존해서 운영된다. 가끔 대형 교회도 후원을 한다. 1년에 한 번 정도 열리는 후원 행사에 1,000만 원 정도 후원하는 교회들도 몇 있다. 몇 년 전 어느 큰 교회에서 3억 원을 내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해왔다. 근데 조건이 붙었다. 자기네 교회 목사 얘기는 그만 써달라는 것이다.

고민을 했을까, 안 했을까. 고민을 안 했다면 그건 정말 파렴치한 경영인이다. 당연히 고민을 했다. 1억 정도면 고민을 안 했을 텐데, 3억 원이면…. 직원들에게 물어보았다. 물어보나마나지만. 이럴 때 사장 또는 부모는 실리를 챙기려 하지만 직원 또는 자식은 명분부터 생각한다. 건강한 공동체다.

"30억 원이면 몰라도…" 그쪽에 이렇게 답했다. 정중한 거절이었다. 그랬더니 다른 교회 수준에 맞춰서 1,000만 원을 후원금으로 보내왔다. 당연히 영수증 처리를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목사 비판 기사를 썼다. 그 교회도 으레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기준이 생겼다. 내 양심을 팔 만한 금액으로 '30억 원'을 정한 것이다. 30억 원만 주면 눈 딱 감고 입 쓱 씻을 것 같다. 까짓 30억 원 받아서 몸 편하게 마음 불편하게 살되, 기자 생활 청산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나의 기사가 변질되었다고 생각된다면 둘 중에 하나일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실력이 더 형편없이 떨어졌거나, 30억 원을 꿀꺽 삼켰거나. 곡해는 마시라. 30억 원은 나의 기준을 말한 것이지 <뉴스앤조이>는 얼마가 기준인지 나도 모르겠다.

"무슨 신분으로 여기서 취재 활동을 하는지 뒷조사를 해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우리도 그럴 것이라고 으레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업소의 종업원이나 회사의 직원들(한국인이든 조선족이든 히스패닉이든 신분이 불안정한 사람들이라면)을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대했을 지 안 봐도 그림이 그려진다. 웬만한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차마 못할 텐데, 미국의 한인 사회, 특히 교계에 불법이 워낙 판을 치다 보니까 남의 신분에 대해서 의심부터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보다.

"남의 기사를 쓸 때는 동의를 구하고 하자"고 했더니 벌떼처럼 달려든다. 그걸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아닌데, 옹졸하다는 식이다. 아니 누가 쓰지 말라고 했나, 서로 동의하에 쓰자고 했지. 소문이 꽤 났을 텐데도 기사 표절은 여전하다. 그걸 다 모아서 소송을 하면 돈도 꽤 벌 만큼 분량도 많다. 미국까지 와서 그런 진흙탕 싸움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그냥 놔둘 뿐이다.

남의 책을 표절해서 논문을 쓴 목사도 똑같이 얘기한다. 그걸로 박사학위 받아서 그걸 이용한 적이 없단다. 답답한 얘기다. 교회 청빙 받을 때 박사학위 받은 것은 이력서에서 뺐던가. 그것이 청빙 과정에 작용을 안 했던가. 그걸 어떤 식으로 이용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핵심이 아니다. 상대방 모르게 동의 없이 베꼈으면 표절이고 절도다. 범죄 행위다. 그것이 핵심이다.

'경찰'을 '순사'라고 부르는 건 단순한 언어 실수일까

미국에서는 '경찰'을 '순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쓰던 단어인데, 미국에서는 그 시대를 안 살았던 50대 중반의 사람도 순사라는 말을 쓴다. '화장실'을 '변소'라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변소는 우리말이니까 들어준다고 해도 순사는 일본말이다. 이건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회가 쓰는 언어를 보면 그 사회의 인식 수준을 알 수가 있다.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자연스레 말하는 사람의 의식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보다 한 급 떨어지는 70~80년대 한국 사회의 잣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사회도 많이 나아졌는데,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한국의 과거 속에서 살고 있다. 마치 몸은 하나님나라에 속해 있다고 하면서 생활방식이나 행동양식은 세상나라에 속해 있는 것과 같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고단한 광야 생활에 지쳐 애굽의 좋은 것을 갈구하는 것과 같다.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 와서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부터 인터넷으로 접하는 한국 뉴스만으로는 한국에 대한 감이 확 떨어지는 것을 몸소 느꼈다. 빠르게 변하는 한국의 속도는 이곳에서 인터넷, 신문, 텔레비전으로 접한다 해도 현지에서 피부로 느끼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곳에 20년~30년 산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20년~30년 전 사고로 판단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내일 아니면 모레라도 북한 김정일이 남한 땅에 핵무기를 쏠 것이라고 진짜로 믿는 '확신범'들도 제법 있다. 영화 'Beautiful Mind'의 주인공처럼. 시한부 종말론 추종자들처럼. 개중에는 안전한 미국에 산다는 안도감이 너무 겨워서 그런지 한반도에서 전쟁이라도 한판 시원하게 벌어졌으면 하는 태도로 말하는 '한국 사람'도 있다.

선진적인 미국에서 살고 있으면서 한국보다 더 후진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뉴욕의 한인 사회는 한국의 어느 지방의 작은 마을 같은 느낌이다. 비록 돈은 좀 벌어서 경제 수준은 높을지 몰라도 의식 수준이나 일 처리 방식은 딱 그렇다. 교회는 말해 무엇하랴. 우리가 이렇게 느낄 정도면 이곳의 1·5세, 2세들은 어떻겠는가. 숨이 막혀 질식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기하다. 교회에서 이들이 줄줄 빠져나가는 것은 막을 도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1세들이 이들을 사실상 쫓아내는 셈이다.

기자가 촌지를 안 받는 것, 한국 기자가 미국에서 합법적 신분을 갖고 취재 활동을 하는 것, 기사 한 줄을 쓰더라도 근거를 분명히 밝히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그걸 갖고 뒷조사를 하겠다고 하면 비록 헛웃음이지만 너무 웃기는 것이 잘 참아지지가 않아서 미안하다.

기자가 기사를 잘못 써서 그것 가지고 야단을 맞거나 비판을 받으면 얼굴이 벌개져야 당연하다. 그런 비판은 얼마든지 받을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내가 취재는 좀 못 하고 기사는 좀 틀리게 써도 촌지는 안 받지 않느냐"고 항변한다면, 생각만 해도 쪽팔리는 일이다. 의사가 "촌지도 안 받았고 얼마나 그 환자한테 친절하게 대했는데, 수술을 잘못 해서 죽었다고 뭐 그리 난리를 치냐"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이 다윗을 용서했다고? 다윗의 자식을 죽였는데?

미국의 많은 한인 교회와 교인들이 '당연한' 일과 '자랑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당연한 일마저도 아주 희귀해진 세상이 되다 보니까 그 정도만 해도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대견한가 보다.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처럼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도 드물다. '달라야 한다'는 것은 다른 잣대를 들이대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또는 '틀려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세상에서 '불법'인 것이 교회로만 들어오면 '은혜'로 둔갑한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서 탱자가 되는 꼴이다.

"구약 성서에 여자 문제 없는 지도자가 어디 있더냐.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 쓰셨다"고 하는 목사가 있다. 그는 구약의 일부다처제를 선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바울과 같은 홀애비를 싫어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 목사의 아내는 자신의 인생이 행복하다고 생각할까, 비참하다고 생각할까. 자기 여비서한테 "너는 내 마지막 여자"라고 아주 부드럽고 달콤하게 하는 그 말을 도대체 몇 명이나 돌아가면서 들었을까. 그런 목사의 아들은 여러 명의 여자를 두어도 좋은 것일까. 하나님이 쓰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여자 문제를 만들어낼까. 그는 구약 성경보다도 구약 시대의 이방 풍습을 사랑했음이 분명하다. 왜 20세기에 태어나서 나의 여자 문제를 다른 놈들이 떠들도록 한단 말인가. (이 대목은 나중에 더 자세히 쓰도록 하겠다)

회사 사장이 불륜을 저질러서 회사 이미지와 마케팅에 엄청난 손해를 끼쳤는데 퇴직금에 웃돈까지 얹어서 노후를 보장해주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세상 얘기를 예로 들면 안 먹힐 테니 성경으로 돌아가자. 다윗이 여자를 건드렸다가 회개하니까 하나님이 용서했다는 얘기를 한다. 꼭 거기까지만 얘기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징계를 분명히 받았다. 그것도 자기 아들이 애비 대신 죽은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하나님이 다윗은 용서했는지 몰라도 다윗의 아들을 대신 죽였다. 그 말은 쏙 빼먹는다. 나 같으면 내가 차라리 벌을 받고 말지, 내가 저지른 죄의 대가로 내 자식이 벌을 받는 것은 정말 엄청난 형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도 정말 잔인하시다. 죄를 지은 당사자를 벌하시지 왜 자식을 죽이는가.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아버지 목사의 자식은 얼마나 아버지가 끔찍할까. "하나님이 내 아버지는 용서하셨지만 그 대가로 틀림없이 나를 죽이실 거야"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는 성경을 안 믿는 사람이 틀림없다.

공의가 빠진 반쪽짜리 용서를 하나님께 기대했단 말인가. 그런데도 교회 안에 넘쳐나는 '인간적' 은혜와 '인간적' 용서는 성경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목사가 그 꼴이고 교인들이 그 모양이다.

"아버지가 간음했다고 해서 아버지가 아닙니까?" 하면서 돈을 더 주자고 한다. 정이 넘치는 화목한 가정이다. 그런데 세상천지 어디에 아버지가 간음했다고 돈을 줘서 집 밖으로 내쫓는 경우가 있던가. 아버지가 간음했어도 미우나 고우나 아버지다. 만약 섹스에 중독되었다면 병원에 보내서 치료를 받도록 하든지 기도원에 가서 좀 더 영빨 좋은 목사에게 안수 안찰을 받도록 해야지, 어찌 자식이 애비를 내쫓는다는 말인가. 그것도 돈을 두둑이 쥐어주면서 "우리 동네에는 오지 말라"고 하면, 그것이 멀쩡한 가정인가. 그 자식도 애비 못지않은 패륜아다.

그 애비도 마찬가지다. "내가 잘못했다. 나를 용서해라. 앞으로 내가 가는 길을 지켜봐 달라"고 해놓고선, 몇 년간 푹 쉬면서 먹고살 돈을 챙겨갖고 나가면, 그것이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인가. 자식들이 돈을 쥐어준다 해도 다 툭툭 털어 버려야 참 회개의 모습이 아닐까.

모든 것 다 버리고 세탁소에 가서 다림질을 하든, 주유소에서 가스를 채우든, 사무실에 가서 변소 청소를 하든, 힘든 육체적 노동으로 일용할 양식을 장만하는 세상의 이치를 먼저 배워야 한다. 그래야 교인들이 얼마나 고생 고생해서 번 돈을 교회를 위해서 바치는지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래야 교인들을 전보다 더 사랑할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을 지켜봐 달라"고 했는데, 그가 가는 길을 지켜보는 교인들은 3년도 채우기 전에 다 잊어먹을 것이고, 그가 가는 길을 지켜보는 선량한 목사들은 심한 자괴감에 빠질 것이고, 그가 가는 길을 지켜보는 한심한 목사들은 그걸 보고 자신감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가 가는 길을 어떻게 지켜보실까.

그것이 온전한 교회인가. 정말 아버지로 생각한다면, 무조건 그 안에서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 기본적이고 상식적이고 당연한 기본이 교회 안에서 이미 다 무너졌기 때문이다. 기본이 무너진 곳에서 '그 이상'의 것을 얘기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는 것이다. 교회 안에 무너진 기초를 보면서 마음도 함께 무너져내린다.

세상에서 당연한 것, 기본인 것을 교회와 교인들은 당연히, 그리고 기본적으로 지켜야 한다. 세상은 거기서 머물 수 있지만 교회는 '달라야 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면 당연한 것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 무엇을 놓고 몸부림을 치며 씨름을 해야 한다. 세상의 기본적인 것도 도무지 갖추지 못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은커녕 세상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는 교회의 모습은 커다랗지만 앙상할 뿐이다. 

<미주뉴스앤조이>는 진흙탕 싸움을 하려고 만들지 않았다

우리는 기본도 안 되는 것 가지고 싸우려고 미국에 <미주뉴스앤조이>를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기본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말도 안 되는 싸움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단 말인가, 생각하노라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교회 개혁'이라는 주제로 7년간 씨름을 하면서 성장해서, 지금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단체로 거듭나서 통일부 소속 사단법인 '하나누리'가 되었다. 올해는 북한에 있는 청년들과 체육·문화 교류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 교회도 조금씩 변하면서 <뉴스앤조이>의 역할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미국에서 진흙탕 싸움을 하면서 세월을 보낼 마음은 없다. 지금은 기본도 안 되고 기초도 무너진 교회 현실에 안타까워하지만,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기본 이상의 그 무엇을 함께 고민하고 모색하는 일을 할 것이다. 물론 <미주뉴스앤조이>가 그것을 하겠다고 폼을 잡는 것은 아니다. 곳곳에 숨어 있던 귀한 동지들이 적지 않다. 질 낮은 사람들이 여전히 금권과 교권과 언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그 틈새에서 희망의 단초는 보이기 마련이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희망의 단초를 발견하는 것, 그들과 힘을 모아서 기초 이상의 그 무엇을 함께 고민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도모하는 것, 이 모든 것을 잘 하려면 실력 있는 기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촌지를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 이런 유치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황폐한 미국의 한인 공동체에서도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일궈낼 동지들과 마음과 뜻과 실천을 함께할 수 있도록 실력을 쌓을 것인가, 이런 고민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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