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들의 희생, 꺼져가는 민주화 불꽃으로 살아나길
순교자들의 희생, 꺼져가는 민주화 불꽃으로 살아나길
  • 홍성종
  • 승인 2007.05.2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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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vs '이슬람 정권 수호'…위기 속의 터키 선교 현장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던 안디옥교회에서 약 300마일 떨어진 터키 동부 지역인 말라티야. 지난 4월 18일 이곳에서 3명의 그리스도인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이 소식은 전 세계 크리스천들에게 알려져 큰 충격을 던져 주었다. 동시에 순교의 숭고한 정신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번 사건 이후 터키에 있는 현지 선교사들은 복음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할 것을 다짐하는 한편 조심스럽게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터키 기독교 역사상 현지인이 순교를 당한 것은 처음이다. 사건 이후 유가족들은 순교자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슬픔 가운데서도 살해자들을 용서한다고 선언하는 등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유가족들, “살해자들 용서한다” 선언

하지만 이러한 터키 그리스도인들의 사랑과 용서의 정신에도 아랑곳없이 극렬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박해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달니 보젝 선교사는 '서머나 개신교회로부터 전 세계 교회에게'라는 글을 통해, 이번 사건의 배후 세력으로 '타리캇'(이슬람어로 신실한 신도)이라는 단체를 지목했다. 그는 이 단체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주고 영혼을 사는 자들이라며 청소년들에게 적대감을 부추기며, 교묘한 방법으로 현지 기독교인과 선교사들의 핍박을 조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기독교인에 대한 적대감은 '타리캇'과 같은 단체뿐 아니다. 친이슬람 정권을 유지하려는 정부 여당도 이슬람 지도자들과 언론 등과 결탁해 기독교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조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지 그리스도인들의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터키 요데미쉬 지역에 교회를 개척해 현지 지도자에게 넘기고 이즈밀 지역에서 또 다른 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박요한 선교사(가명)는 "말라티야 순교 사건 이후 더욱 박해가 심해지고 있다"고 말하며, "이슬람 청년들이 요데미쉬교회에 돌을 던지거나 화염병을 던져 방화하려고 해서 일단 교회의 문을 닫고 8개월째 인적이 드문 들판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박 선교사는 이슬람 세력의 핍박 가운데서도 많은 변화가 있다는 말도 전했다. 그는 "15년 전쯤에는 터키 개신교인 숫자가 300~400명에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 10배인 3,000~4,000명으로 늘어났고, 각 지역마다 교회가 개척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선교사는 "현지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심리적으로 불안을 느끼는 가운데 주님의 위로와 승리의 역사를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님의 위로와 승리의 역사를 기대하며

인구 7,000만의 터키는 거대한 인구만큼이나 정치·종교·외교 문제 등이 국·내외적으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특히 정치면에서는 정교 분리(Secularism, 세속주의)를 주장하는 측과 정권을 잡고 있는 친이슬람 세력이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터키 국민의 99%가 이슬람이지만 정교 분리를 근간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했던 터키 공화국의 최초 대통령인 '케말 파샤'의 정신을 국민의 65% 이상이 지지하고 있다.

케말 파샤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가 독일 편에 서서 참패한 이후 와해 위기에 직면한 나라를 재건한 인물로, 터키인들에게는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케말은 1923년 초대 대통령으로 부임하여 1938년 사망할 때까지 4선 대통령을 지내며 과감하게 서구식 근대화를 이룩했다. ∆종교의 정치 간섭 배제 ∆여성의 참정권 부여 ∆일부다처제 폐지 ∆아랍어 대신 알파벳을 근간으로 한 문자 채택 ∆민주주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군부의 개입 보장 등 폭넓은 개혁을 단행했다.

하지만 이러한 케말 정신에 반발한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과 정의당과 복지당과 같은 일부 기득권 세력이 연합해서 정교 분리를 반대하고 이슬람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해 1997년에 국회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군부가 이슬람 정권을 향해 제동을 걸어 독자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펴는 등 끊임없이 견제해오고 있다.

현재 국회와 총리 자리까지 장악한 이슬람 정권은 최근에는 대통령까지 친이슬람 인사를 세우려 했다. 하지만 군부가 제동을 걸어 대통령 선출을 위한 1차 투표가 결국 무산됐고, 단독 후보가 자진 사퇴했다. 이러한 일촉즉발의 정치적 위기 상황 가운데 지난 5월 13에는 이슬람 정권을 반대하고 군부의 민주주의 수호를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가 터키의 대도시인 앙카라를 비롯해 이스탄불, 이즈밀 등에서 열렸다. 인구 350만의 해안 도시 이즈밀에서만 약 150만 명이 모이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또한 5월 20일에는 흑해 연안에 있는 삼손이란 도시에서 약 25,000명의 시위대가 참석한 가운데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시위가 벌어졌다.

입법부는 군부의 압력으로 국회 내에서 대통령을 선출 방식을 대신해 국민에 의한 직접투표에 의해 대통령을 뽑는 법안을 통과했다. 현재 대통령은 이 법안에 서명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인 배경 때문에 오는 7월 22일 열리는 조기 총선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친이슬람 정권과 정교 분리를 주장하는 민주 세력이 어떻게 견제와 균형을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터키 국민들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과 여타 이슬람권의 국가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유다.

현지 그리스도인들과 선교사들은 이번 총선에서 이슬람 정권을 견제할 세력이 강해지길 기대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선거가 순교 사건 이후 선교 정책의 향방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울러 현지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스러져간 순교자들의 피가 꺼져가는 터키의 민주화의 불꽃을 다시금 일으키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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