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위하여 성서를 해체하라"
"복음을 위하여 성서를 해체하라"
  • 김회권
  • 승인 2007.05.2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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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기독교 및 성서 이해 담론 자세히 읽기 3

<기독교성서 이해> 자세히 읽기

도올은 자신의 한 달 앞서 출간된 <요한복음 강해>를 읽기 전에 먼저, 한 달 후에 나올 <기독교성서의 이해>를 먼저 읽어보라고 권고한다. 시제를 깨는 발상이다. 어떻게 한 달 전에 앞서서 나온 책을 읽기 위하여 한 달 후에 나올 책을 먼저 읽어볼 수가 있겠는가? 그가 의도했는지 그냥 우발적으로 발설한 권고인지는 모르겠으나, 도올의 권고는 바로크적이고 탈근대주의적(post-modern) 발상이다. 이것은 도올을 이해할 때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도올은 이 두 책 전체를 통하여 정통적 기독교, 소위 정통 기독교(로마 중심의 서방 기독교) 교설을 전면 부정하거나 그것을 대체할 종합적인 대안을 제시하려는 의도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한국 교회의 국외자로만 설정하지 않고 자신 또한 기독교인임을 전제하고 있다. 다만 그가 이미 상투적으로 규정된 그런 기독교인이 아닐 수도 있으나 자의식적으로 기독교인이다.

그의 저작들에는 주류 기독교에 대한 거리감과 애정 어린 비판이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는 한편, 교회사에 소수파 혹은 이단 사설로 유배당한 사상들을 부분 혹은 전체적으로 복권시켜 당당한 주류 기독교 공론의 장으로 불러들이려는 자세가 부각되고 있다. 마르시온에 대한 동정적이고 긍정적인 이해, 아리우스에 대한 복권 시도, 그리고 영지주의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 등을 통해, 기독교 정통 주류에게 일방적으로 소개된 개념들과 인물들에 대한 이해에 교정을 시도한다.

따라서 많은 경우 도올의 어투는 계몽적이며 훈도적이다. 설령 그가 보수적 주류 기독교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하더라도(그는 주류 불교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평을 가한 경력의 소유자다) 우리는 그의 비판을 학자적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아량과 금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기독교성서의 이해>는 모두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8장에서는 도올 자신이 요한복음 강해와 <기독교성서의 이해>를 집필하게 된 개인적 소회를 담고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적인 에필로그인데, 이 부분부터 읽고 나머지를 읽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1장 “예수의 이적”은 과학적·근대 합리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예수의 이적을 이해하는 태도를 비평적으로 논평한다. 도올은 기적에 대해서는 포스트모던적인 이해와 합리주의적 이해(오병이어 사건)를 동시에 보여준다. 도올은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는 어떤 시도에도 반대하는 키에르케고르적인 입장을 취한다. 신앙과 합리적 사유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다고 본다. 신앙은 결단이자 전인적 투신이라고 본다. 그래서 예수라는 사건(동정 탄생 설화, 혈우병 여인의 피를 멈추게 하는 사건 등)은 과학적 세계관에 고뇌를 안겨주고 화평이 아니라 검을 준다고 본다. 세계관적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눅 12:51)(11-12쪽).

그는 예수의 일생에 대한 어떤 합리주의적 이해 시도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인간적이고 합리적이고 온건하고 상식적인 해석, 얼핏 비신화화라고 쉽게 말해 버릴 수 있는 그러한 해석을 기독교에 대한 우리의 이해로 받아들이는 순간, 기독교는 기독교됨을 상실해버린다”(13쪽). “기독교는 반드시 성서의 말씀의 진실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어떠한 자연주의적 해석도 차단되어야 한다. 이것이 모든 거룩하고도 진지한 성서주의의 출발이다. 나 조선의 사상가 도올 김용옥은 이러한 성서주의의 입장을 한 치도 이탈하지 않는다. 인간의 구원은 오로지 성서로부터 온다는 철저한 성서주의적 입장은 교회가 구원의 주체라고 하는 통속적 곁가지 사상을 배제시킨다”(13쪽).

도올은 한국 교회의 광기어린 비판과 몰지각한 오스트라시즘을 의식한 듯 매우 조심스럽다. 그러나 또 한편 도올은 이 두 책들의 여러 곳에서 신앙은 이성과 조화될 수 있다고 보며 몰이성적 기독교 신앙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는 마가복음 6장과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 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자연주의적 해석을 가한다. 프랜시스 쉐퍼라는 복음주의 변증가는 <이성으로부터의 도피>를 통해서 이성과 신앙을 도올처럼 날카롭게 분리하는 서구 신학의 전통을 잘 비판하고 있다.

2장 “신화와 철학”과 3장 “헬레니즘의 사유”는 기독교가 중기 플라토니즘의 사상적 철학적 맥락에 출현한 아주 신선한 도전임을 말한다. 2장에서 도올은 소위 나중에 영지주의라는 포괄적인 세계관으로 불리는 희랍의 사상적 원류들(오르페우스->피타고라스->플라톤)을 추적한다(디오니소스 탄생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 바카스 합일, 피타고라스의 수리적 신비주의)(32-38쪽). 그는 “기독교는 헬레니즘 문명의 소산이라는 매우 기초적인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둘 것”을 강조하면서도(42쪽), “오히려 기독교는 헬레니즘 시대의 산물이면서도 헬레니즘적 사유를 철저히 거부한 측면이 강하다”는 점을 인정한다(43쪽).

3장은 기독교의 발전 과정에 이바지한 헬라 철학의 여러 유파들(견유학파, 스토아학파, 에피큐로스학파, 회의학파, 신플라톤주의 등)의 핵심 주장을 요약한다. 이 헬라 철학 유파들의 공통점은 소피스트들의 상대적인 우상 파괴적인 운동을 초극하는 절대적 마음 상태 확보에 주력하며 반문명적 경향을 띠었다는 데 있다. 도올은 여기서 약간의 과잉 해석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헬레니즘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부와 권력과 같은 세속적 가치에 대하여 아주 래디컬한 전도를 요구하고 바리새인들이 신봉하는 율법적 사유의 철저한 부정을 가르치는 예수라는 사상가의 시대적 분위기를 읽어내기 힘들다”(48쪽).

예수 세미나 운동의 중심학자인 J. 크로산의 영향으로 도올은 예수를 견유학파적 스승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의 바리새인 형식주의 비판은 견유학파의 영향이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의 영향이라고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대중들은 예수를 엘리야, 예레미야 등 예언자 반열의 지도자라고 보았다. 예수가 아니라 이미 아모스, 이사야, 미가는 주전 8세기에 형식주의, 율법주의, 제례주의를 가혹하게 비판하였다. 심지어 도마복음서에 반영된 종말론적 신국 도래에 대해 말하는 예수 이미지도 견유학파의 스승이라기보다는 예언자적 인물에 가깝다.

결론적으로 도올은 로고스 문명인 유교를 기독교가 돌파하여 오늘 한국 기독교가 된 것과 뮈토스를 탈출한 헬레니즘의 로고스를 바울의 기독교라는 새로운 뮈토스가 격파한 것은 공통 현상이라고 판단한다(58쪽).

4장 “콘스탄티누스의 공인까지”는 기독교가 밀라노 칙령(313년) 이후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세계 종교로 발돋움하기까지 기독교의 모태가 된 유대교적 배경의 준비와 헬라 철학적 전경(前景)을 말하고 있다. 도올은 먼저 20세기 최대의 성서 고고학 발굴 사건인 쿰란과 나그 함마디 영지주의 자료 발견 과정과 그것의 의의를 논한다. 그는 여기서 예수의 탈정치적 해석을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예수는 일찍이 막 12:17(시이저 대 하나님의 이분법)을 통해 “자신의 영적 운동이 정치적 맥락을 떠나있음을 명료하게 밝혔다”는 것이다(73쪽).

다음으로 도올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토인비의 <역사가의 종교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을 인용하여 초대교회 순교자들의 인위적 순교 시도를 비판적으로 논평한다(76쪽). 기독교의 순교 역사는 로마의 정치권력의 박해에 기인하기보다는 교회 내부의 분열과 갈등, 종말론적 신념 체계 그 자체에서 기인한다고 본다(76쪽). 이 점에 대하여 스티븐 니일의 <기독교 선교사>와 프레데릭 브루스의 <초대교회 역사>는 다소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도올은 기독교 공인 이전의 기독교인이 받은 박해보다 공인 이후에 이교도와 이단과 신비주의자가 정통 기독교회로부터 받은 박해가 몇 천 몇 만 배 잔혹하다는 점을 강조한다(77쪽). 이와 관련하여 도올은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칙령의 전후사를 아주 자세하게 취급하며 최초의 교회사가 유세비우스(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을 3세기에 걸친 박해를 이겨낸 순교와 이방 선교의 찬란한 극적 승리로 간주)와는 달리, 밀라노 칙령은 로마제국의 정치권력이 교회를 지배하는 첫 계기가 되었으며 황제 기독교 출현의 배경이 되었다고 본다(78-89쪽).

도올은 황제 권력과 결탁한 기독교의 상징인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성당과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은 기독교 신앙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만나고자 하는 예수님은 그러한 위압적인 거석 안에는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88쪽).

5장 “삼위일체 논쟁”은 삼위일체 논쟁사를 아리우스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에서 다루고 로마제국의 후원을 입은 기독교가 황제 기독교로 변질되는 과정을 더욱 자세하게 추적한다. 도올에 따르면 아리우스는 철저한 네오 플라토니스트였다(92쪽). 네오 플라토니즘의 사상은 궁극적 유일자만이 모든 대립과 차별을 초월하는 절대 유일의 실재이며 만물의 세계는 이 유일자로부터의 유출물이라는 것이다(93쪽). 이성->영혼->물질 단계로 유출되는데, 이성을 잘 활용하면 인간은 유일자와 합일 가능하다고 본다. 금욕주의적 삶을 통해 고귀한 덕성을 축적한 사람은 신비적 황홀경을 통해 유일자와의 합일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리우스에게 구원은 영혼이 육체의 감옥을 떠나 유일자에게 복귀하는 것이다(94쪽). 아리우스는 시종일관 예수는 인간일 뿐이며(95쪽), “오직 성부만이 유일 절대의 하나님이며 성자는 결코 성부와 동일한 동격의 신성을 가질 수는 없다. 성자는 성부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아리우스의 강조점은 예수의 인간됨에 대한 강조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절대 유일성에 대한 강조였다.

도올의 아리우스 이해는 곤잘레스의 <기독교사상 I>(이형기, 차종순 역, [장로교출판사, 1994])에 의해서도 대체로 지지받을 수 있는 입장처럼 보인다. 특히 도올은 아리우스가 왜 예수의 인간성 강조에 집착했는가를 잘 밝혔다. 아리우스는 예수를 신과 동일한 실체로 만들어버린다면 예수는 이 시공의 세계에 속할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 세계 속에서의 예수의 활동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하나의 허상이 되어 버린다는 점을 부각시켰는데, 도올은 이 점을 효과적으로 부각시켰다.

아리우스에 대한 도올의 동정적 해석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아리우스는 예수의 사람됨을 확실하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의 하나님됨을 확보하고 기독교 유일신관을 천명하려 했다. 예수를 단순히 열등하고 범용한 인간으로 설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의 특별한 로고스적 성격, 그러니까 네오 플라토니즘적 합일, 엑스타시스, 그리고 죽은 후의 그의 완벽한 신성의 복귀 등, 우리와 같은 인간이면서도 우리와는 다른 어떤 가능성의 존재로서 설정함으로써 인간이 예수의 수육, 죽음, 부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려고 했다. … 예수를 단순히 인간으로 격하시켜버리는 현대적 합리주의적 해석은 아니었을 것이다. … 인간 예수의 리얼한 모습과 인간과 신의 합일을 꾀하는 신비주의와 하나님의 절대 유일한 초월성이 종합된 매우 포괄적인 체계였을 것이다”(98쪽).

도올은 삼위일체 논쟁의 촉발 배경을 아타나시우스파의 견해(아버지와 아들은 동일한 신이시다)의 과도한 득세에서 찾는다. “헬레니즘의 사상가들은 결국 예수를 신이라 말하는 너희들의 유일신앙도 다신론이 아니냐고 하는 반론을 펼치게 되었고, 이에 대한 강력한 아폴로지로서 삼위일체론은 대두하게 된 것이다”(111쪽). 정통 기독교가 말하는 삼위일체론은 일체성과 다양성을 종합하는 헬라 철학적 사유로서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라고 본다(116쪽).

여기서 도올의 정통 주류 기독교 교설에 대한 문제의식이 여과 없이 발휘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에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 융합된 가톨릭교회의 권위가 강요하는 교리에 의하여 기독교를 접근하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다”(116쪽). “헬레니즘의 철학적 탐색의 연장태로서 발전한 로마 가톨릭의 이론 체계를 기독교로 이해할 수는 없다. 우리는 성서 그 자체로 항상 되돌아가야 한다”(117쪽).

여기서 도올은 약간의 모순을 드러낸다. 그는 신약성서가 헬레니즘적 종교 혼융의 과정에서 창조되었다고 본다. 기독교를 헬레니즘 토양의 산물이라고 규정한 그가 다시 ‘성서’로 돌아가자고 말할 때, 그가 말하는 성서는 구약인가? 신약인가? 아니면 신구약 모두인가?

6장 “바울의 기독교운동”은 바울이 구약의 율법에 대하여 가졌던 이중적 입장(부정과 긍정/복음과 율법의 연속성 옹호)을 논한다. 도올은 바울서신들이 율법에 대하여 취한 긍정적인 태도를 구질구질한 변명이나 후대의 삽입물로 간주하는 과감성을 발휘한다. 역사비평적 관점을 취할 때 발생하는 교조주의적 일관성에 대한 집착으로 도올도 자신의 전제(“예수 복음은 율법의 부정이었다”; “바울은 율법을 부정하고 새로운 기독교를 출범시켰다”; “요한복음에는 묵시적 재림 기대가 누락되거나 배제되어 있다”)에 맞지 않는 구절들을 보면 참지 못하고 후대의 삽입물 혹은 자질구레한 변명/일관성의 철회라고 못 박는다.

여기서 도올은 먼저 AD 68-367년간의 초대 교회사를 다시 쓰게 만드는 대발견이라고 평가되는 나그 함마디 콥틱어 자료들의 가치와 의의를 논한다. 그는 콥틱 기독교인들이야말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며, 이들은 기독교인이면서도 동시에 이 다양한 문명의 물줄기를 배타함이 없이 개방적으로 수용(이집트, 동방오리엔트, 헬레니즘, 유대교 문명, 신흥 기독교 문명 등 다 수용)한 사람들이었다고 높이 평가한다(122-123쪽).

그는 콥틱 크리스천들의 일반적 분위기를 영지주의라고 말하며, 그동안 신학계에서 유통된 협애한 영지주의 이해를 과감하게 수정하고 영지주의의 외연을 확장한다(123-124쪽). 바울의 문제의식은 영지주의와의 투쟁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딤전 6:20)(127쪽).

바울의 중심 관심은 유대화파 그리스도인들과의 갈등이었으며, 바울은 율법에 대한 양의적 태도를 취한다고 생각한다(133쪽). 그는 율법의 부정을 말하면서 동시에 율법의 준수와 완성을 동시에 말한다는 것이다. 도올에 따르면 바울의 율법 존중 태도(빌 3:5-6; 롬 11:17-24)는 이방 선교의 심오한 고뇌의 반영이었다(134쪽).

그러나 도올은 바울의 위대한 성취를 주저 없이 인정한다. “이러한 앰비밸런스 속에서도 바울의 위대성은 기독교를 유대교와는 근원적으로 다른 새로운 궤적 위에 올려놓았다는 데 있다”(134쪽). 바울은 기독교를 율법의 종교인 유대교로부터 해방시켜 영적 자유의 종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137쪽)(갈 2:16; 2:19).

7장 “마르시온의 등장”은 가장 도올다운 해석이 부각되는 장이다. 도올은 구약성경의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님의 하나님을 분리시킨 마르시온을 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복권시키려는 듯한 장황한 논설을 펼친다. 도올은 19세기에 반셈족주의적 유대인 혐오증이 극단적으로 치달았던 독일 학자들의 반율법주의적, 반제의적인 개신교 신학자들(율리우스 벨하우젠)의 책들에 영향을 일방적으로 받았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의 모든 책들(<예언자들>, <사람을 찾는 하나님> 등), 제이콥 뉴스너(Jacob Neusner), 모세 와인펠드(M. Weinfeld) 등의 책을 읽어 보면 균형 감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도올은 144년에 마르시온 교단을 창설하여 구약 파기를 주장한 마르시온을 한껏 찬양한다. “우리가 기성의 교회사에 대한 편견이 없이 사태를 관망해 보면 마르시온이 구약을 파기한다고 주장한 것은 매우 정당한 일이다. 그것은 기나긴 유대화파와의 투쟁의 역사의 결말로서는 너무나도 명료한 결론이다”(140쪽).

도올(마르시온)에 따르면 구약은 야훼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서만 맺은 유대인의 계약이다. 이스라엘 민족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지역적 계약일 뿐인 것이다(141쪽). 도올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경 없는 초기 기독교”라는 개념을 안출해낸다.

이것은 오류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의당 히브리 성경(구약)을 성경으로 삼았으며, 나중에 이방인 교회에 광범위하게 유포되는 바울서신들에 성경적 권위에 준하는 권위를 부여하기 시작하였다. 바울서신들에 성경적 권위를 부여할 때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미 구약성서를 준거로 삼고 있었다(눅 24:44; 딤후 3:15-17; 벧후 1:20-22). 따라서 성경 없는 초기 기독교 시대는 실상 존재한 적이 없었다.

도올에 따르면 마르시온은 이 성경 없는 초기 기독교회에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을 위한 성경을 편집했다는 것이다. 마르시온은 구약에 대응하는 경전을 만들기 위해서 누가복음과 아포스톨리콘(10개 서신=갈, 고전후, 롬, 살전후, 라(엡), 골, 빌, 몬)을 결집했다(157쪽). 그는 상기 문헌에서 구약과 관련된 부분을 즉 하나님을 심판자로 묘사하는 부분, 유대교의 예언 성취 부분, 하나님의 징벌 관련 구절들을 삭제했고, 예수가 구약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구절이나 예수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구약의 인용을 다 삭제해 버렸다(159쪽).

마르시온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도올은 신약과 구약의 급진적인 단절성을 표현하기에 대담한 과잉 진술을 하고 있다. “변덕스럽고 폭군적이고 보복적인 구약의 하나님은 바울의 말대로 율법의 저주일 뿐이다. … 율법의 하나님이 아닌 복음의 하나님, 구약의 하나님이 아닌 신약의 하나님은 무한히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148쪽). “이 신약의 하나님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처음 우리에게 드러난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에게는 악의 요소가 없고 오로지 무한한 선의 가능성만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무한한 선의지에 의하여 우리는 속량될 뿐이다”(148쪽).

여기서 우리는 도올과 마르시온에게 묻는다. 구약의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은혜로운 하나님이란 개념이 나올 수 있는가? 진노할 줄 모르는 하나님, 심판도 못하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인가? 마르시온이나 도올의 구원론은 아주 공허한 구원론처럼 들릴 수 있다(라인홀드 니이버의 비판 경청).

도올은 또한 여기서 마르시온의 영지주의적 구원론을 자세히 논한다. 구약과 신약의 급진적인 단절을 주장하는 마르시온이나 도올 둘 다 죄론, 인간론에 있어서 정통 기독교 로마서적 기독교와 사뭇 다르다. 형벌 대속론적인 서방교회의 구원론에 비하여 마르시온과 도올의 구원론은 신과의 합일을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동방교회적인 구원론이다.

마르시온이 말하는 영지주의 세계관에 따르면(149쪽) 영육은 분열되어 있다. 육은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 속하고 어둠에 붙들려 있다. 그 육에 갇혀 있는 영은 어둠에 가려 있지만, 본래의 고향인 빛의 세계 즉 하나님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갈구한다. 인간의 영혼은 악마적 육체의 감옥 속에 갇혀 있는 빛의 파편이다. 그 파편은 본시 하나님께 속해 있던 것인데, 악마들이 하나님의 빛의 세계를 어둠의 혼돈으로부터 창조할 때 훔쳐다가 그 원동력으로 사용했던 것이다(149쪽; <절차탁마 대기만성>의 글 참조).

“하나님은 이 감옥에 갇힌 빛의 파편들을 가련히 여겨서 그의 아들 로고스(Logos), 말씀이며 빛인 자기 아들을 암흑 속으로 파견한다. 그러나 악마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아들을 지상의 육체에 감추어진 모습으로 파견한다. 빛의 원조인 이 아들은 사탄이 고향을 잊어버리도록 항상 취하거나 잠자는 상태로 있게 만들어 놓은 빛의 파편들을 흔들어 깨우고 하늘의 고향을 상기시켜준다. 그리고 그들이 악마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떠나 고향에로의 귀로에 오르게 만든다.

그때 악마들이 지배하고 있는 겹겹이 쌓여 있는 구중천의 관문들을 통과할 때 반드시 필요한 암호들이 있다. 이 암호들이 그노시스다. 구속자인 아들은 빛의 파편들에게 그 그노시스를 가르쳐준다. 불길들이 타 올라 하나로 뭉치는 것처럼 이 빛의 파편들이 다 하늘에 모여 다시 하나로 재조립될 때 이 세계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원래의 암흑의 혼돈으로 가라앉는다. 그것이 마지막 심판이다. 구속자인 아들은 곧 그 빛의 파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며, 그 암호의 진리며,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다”(149-150쪽)(요 14:6)(<요한복음 강해>, 385쪽).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영지주의 구원론은 탈세계적 구원론이며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 구원론이며,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입각한 구원론이 아니다. 또한 마르시온의 영지주의적 구원론에 따르면 예수의 수난과 부활은 인간 원죄에 대한 대속적 희생이 아니라 구약의 하나님이 자기 피조물인 인간에 대하여 갖는 모든 권리를 무효화시키는 법적 선포다(151쪽).

여기에 도올이 인정하듯이 마르시온의 영지주의적 구원론의 결정적인 약점이 드러난다. 예수는 원래 이 세계의 창조와 관련이 없는 무규정적인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에 의하여 이 세계에 파견되었기에 이 세계에 속한 육신을 입을 수 없다. 이 점이 마르시온이 영지주의자로 몰리는 이유다(152쪽). 역사적 지평을 박탈하거나 부정하는 가현설은 정당하게 이단으로 몰려왔다. 정통 기독교의 역사는 탈역사적 하나님나라가 아니라 세계 변혁적 하나님나라에 희망을 걸어온 역사다.

여하튼 도올은 이단으로 몰렸다고 그 사상 자체가 다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마지막까지 마르시온을 동정한다(152쪽). 그는 오히려 마르시온 주장의 핵심은 구약과 신약의 단절이라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156쪽). “구약과 단절되지 않으면 신약은 복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설교하시면서 구약의 율법을 강요하거나 구약을 신앙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신약의 배경으로만 구약을 인용할 뿐이다. 이것이 알고 보면 마르시온의 영향이다.”

도올은 마르시온의 핵심 주장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분리시킨 것이라는 사실에 보다 더 진지한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 구약은 단지 율법으로 가득 찬 책이 아니다. 구약은 하나님의 압도적인 구원과 은혜의 역사 이야기가 향도하고 있으며, 인간의 죄와 불순종, 배교와 실패의 역사는 배경일 뿐임을 무시하고 있다.

캘빈의 <기독교강요>가 가장 빛난 종교개혁 신학의 역작이 된 이유는 십계명 강해를 통해 신구약 하나님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너무나 설득력 있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율법은 부분일 뿐이다. 도올은 즉시 피상적인 구약 인상 비평을 그치고 나그 함마디를 읽고 몰입하는 열정으로 구약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8장 “복음서의 출현”은 그동안 학계에서 논의된 역사비평적인 복음서 이해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요한복음 속의 예수 이해를 너무 인위적으로 공관복음서의 예수 이해와 과도하게 단절시키는 점은 문제다. 도올은 여기서 기독교 복음서 양식의 출현 배경을 비교적 잘 재구성하고 있다.

“기독교 복음서의 출현은 동일한 헬레니즘 문명권 내에서 대승불교가 출현하는 것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의미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복음서라는 새로운 문학 양식의 출현은 기독교를 대승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바울이 말하는 부활의 그리스도가 아닌 팔레스타인의 풍진 속에서 역사하는 나사렛 예수를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181쪽).

마가가 기독교의 대승화의 선구자요 그 정점이 요한복음이라는 도올의 분석은 맞다. 도올은 여기서 복음서라는 양식, 케리그마는 역사적 세부 사실에 부합할 필요가 없는 목적지향적 문학 양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역사성의 문제를 피해간다(190-191쪽). 그는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케리그마의 핵심은 예수의 드라마가 아니라 예수의 말씀이다. 예수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191-192쪽)라고 말함으로써 내러티브 자체의 역사성 문제를 피해간다.

그러나 복음서의 여러 말씀들은 이적 혹은 치유 드라마와 예수의 말씀이 불가분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데에 이런 접근의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의 2장에서 언표된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말씀은 중풍병자를 고친 이적과 드라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비록 도올이 “그 말씀을 효과적으로 드러나게 만드는 여러 가지 내러티브나 드라마적 장치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게 되면 우리는 케리그마의 핵심적 본질을 상실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문제는 내러티브와 드라마적 장치의 효과적인 분리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도올은 마가복음을 필두로 새롭게 출현한 복음서라는 양식의 문서가 바울이 가르친 기독교와는 계보를 달리하는 새로운 운동을 촉발시켰다고 주장한다(196쪽). 최근 마가복음과 바울과의 관계(복음, 하나님의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는 흥미로운 연구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복음서와 바울서신의 상호적 견인 역사가 조밀하게 연구될 수 있다면 이런 정립과 반정립의 관계 설정은 무리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도올은 사도행전의 바울과 갈라디아서의 바울을 분리시키며, 갈라디아서의 바울이 역사적 바울 모습이라고 단정한다(197-200쪽). 그리고 바울과 구약 전통과의 급진적 단절을 강조하기 위하여 도올은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보낸 3년 기간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메운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 동안 자기 홀로만의 명상과 사색을 했을 수도 있다. … 사도 바울의 새로운 삶의 시작은 아라비아 사막의 고적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201쪽). 바울과 아라비아 사막 3년을 나비티안 왕국에서의 전도 활동(고후 11:32-33)과 연결시키는 주류 학자들의 해석을 부질없는 추측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풀러신학대학원 김세윤의 해석에 따르면, 바울의 아라비아 여행은 이사야가 제시한 세계 선교의 여정을 바울이 의도적으로 따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도올은 다메섹 도상의 환상 체험의 역사성을 거의 부정해 놓은 뒤 다음과 같은 다소 엉뚱한 주장을 펼친다. “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고독의 시간을 위해 아라비아의 사막이 필요했고 3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자신을 지배해온 시간과 공간과의 단절이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개종 체험을 한 후 며칠 있다가 즉시로 그 지역의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전파했다고 적고 있는 사도행전의 기사(행 9:19-20)는 신빙성을 완전히 상실해버린다”(202쪽).

도올은 갈라디아서 1:11-20을 근거로 사도행전 9, 22, 26장에서 반복되고 있는 다메섹 도상의 환상 및 소명 체험의 역사성을 부인한다. 도올 자신에 의하면 바울은 다메섹에서 ‘체험’이라고 할 만한 극적 전환 사건을 경험한 것이 없다. 그런데 그가 왜 자신의 체험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아라비아에서 3년간의 고독한 단절기를 통과해야 했던 것일까? 도올은 끝까지 오히려 아라비아를 바울 혁명의 발상지라고 보는데(204쪽), 다메섹에서의 모종의 극적 사건 없이 아라비아 3년의 고독한 단절을 추동할 만한 계기는 없어 보인다.

도올은 마가복음의 예수에게는 메시아, 특히 정치적 메시아라는 자의식이 없었다고 잘라 말한다(209쪽). 이것은 요즘 마가복음서 연구 경향과 다소 어긋난다. 요즘은 예수와 열심당과의 관계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고 예수의 탈색된 현실 정치적 언급들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더 나아가 도올은 요한복음의 예수에게서도 탈정치적 색채를 찾아낸다. 빌라도의 심문에 드러난 예수는 결코 유대 민족의 민족적 메시아가 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없다(211쪽; <요한복음 강해>, 436-437쪽).

예수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마지막 목양 명령을 주시는데, 이것은 에스겔 34장과 요한복음 10:10-14에 비추어 볼 때 굉장한 현실 정치적 함의를 보지한 말이다. 그는 요한복음에서 탈세상적 하나님나라를 말하지 않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는 데 관심을 집중시켰던 선한 목자다(10장; 12장).

9장 “낭송문화와 복음서”는 낭독 문화에서 만개된 복음서 양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판소리에 유비시킨다. 이것은 도올만의 특장이요 독자들에게 책 읽는 기쁨을 안겨줄 부분이다. 도올은 낭송 문화 등 풍부한 역사적 사실을 제공함으로써 복음서 장르의 저작 및 배포 과정을 흥미롭게 복원하고 있다(226-228쪽).

판소리 사설과 복음서의 비교는 참 신선하다(227-228쪽). 도올은 가야금 산조의 전승 양식과 복음의 전승 양식을 흥미롭게 비교함으로써 공관복음서의 상호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234-235쪽). 마가가 원복음이며, 마태와 누가는 마가의 개정증보판임을 의심치 않는다(다드의 표현) (238쪽).

마태나 누가는 하층 출신 예수를 고귀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하기 위해서는 좀 특수한 드라마적 장치가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동정녀 탄생 설화나 수태고지 설화 등이라는 것이다(244쪽). 도올은 동정녀 탄생 설화는 마태가 지어 만든 이야기이며, 70인역이라고 하는 희랍어 구약성경의 이사야 7:14(알마, 가임여성->파르테노스 ‘처녀’라고 오역됨)에 대한 마태의 오판 결과로 이런 동정녀 탄생 설화가 저작되었다고 본다. 70인역의 이 단순한 오역이 “마태복음 기자의 엉뚱한 오판을 자아냈다”고 본다(244쪽).

도올은 여기서 신약 기자들의 구약 인용을 맥락을 떠난 단장취의일 뿐이라고 규정한다. 도올은 야고보와 예수와의 관계(야고보가 예수의 형일 가능성), 동정녀 탄생 저작 배경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인들의 경건한 감수성을 손상하는 말을 쏟아낸다. 학문적 정치성이 돋보이는 부분과 억측과 단순화, 선정주의적 즉흥적 담론이 마구 뒤섞여 있다.

도올은 로고스 기독론으로 두 복음서의 탄생 설화를 일거에 제거해버린 요한복음의 성취를 높이 평가한다(254쪽). 마태와 누가의 방식과 요한복음 방식 중 어느 것이 진실한 것인지 “성서축자무오류설을 말씀하시는 거룩하신 독자님들 스스로 선택해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254쪽). 그리고 누가복음의 호적 명령, 어린 예수의 애굽 이주와 갈릴리 정착과 관련된 모든 언급들을 역사성이 담보될 수 없는 지어낸 문학적 장치들이라고 쉽게 치부해 버린다(255-257쪽; <요한복음 강해>, 277-280쪽).

이런 역사실증주의적 분석은 성서의 원메시지, 원의도(케리그마 선포)를 재생하는 데 방해를 일으킨다는 점을 의식하며 도올은 역사비평적 접근을 자제한다. “성서를 이렇게 한 줄 한 줄 분석해 들어가면 사실(事實)과 부합하는 것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사가 별로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분석 방법이 근원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복음서의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보도하려고 이 복음서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쁜 소식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선포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263쪽).

케리그마는 역사적 문제를 괄호 안에 넣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크로산에 의거하여 “우리는 그들 정보의 역사적 근거(historical security)를 말하기 전에 구성적 창조성(compositional creativity)을 말해야 한다. 그것은 기억된 역사가 아니라 역사화된 예언이다(prophecy historicized)”(263-264쪽)라고 말한다.

끝으로 그는 복음과 성서는 구별되어야 하며 “복음의 절대적 규범은 성서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일뿐이며, 성서 자체와 복음이 동일시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위하여 성서는 항상 해체될 수 있고 또 해체되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을 컨스트럭트하기 위하여 성서는 디컨스트럭트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266쪽).

우리는 여기서 묻는다. 복음이라는 내용 그 자체도 언어적 제약 속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전히 복음서라는 언어적 제약 속에 있다. 이 언어적 제약을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해후할 수 있을까? 도올의 마지막 호소가 다소 비의적이고 모호하게 들린다. “나 도올은 말한다. …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해후하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드러내기 위하여 동원한 모든 언어적 표현에 우리는 기만당하지 말아야 한다. … 예수님의 말씀과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언어를 계속 초월해야 한다”(266쪽).

10장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이 두 복음서의 저작 과정을 다소 경멸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를 구약의 성취로 보는 마태복음에 비하여, 세계사적 지평 위에 예수를 올려놓은 누가복음을 좀 더 높게 평가한다(271-273쪽). 우리는 족보 삽입 과정을 논하는 도올의 태도는 좀 더 진중하고 학자적인 무게를 가져야 한다고 판단한다.

사도들이나 복음서 저자들의 구약 인용을 맥락을 떠난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역사주의 시대의 편견일 뿐이다. 주전 2세기부터 꽃피기 시작한 랍비 유대교의 성서 해석은 역사적 맥락 추구가 아니라 주제적 어휘적 관련성을 따라 자유롭게 인용하는 미드라쉬적 작업의 일환이었다.

11장 “요한복음과 로고스기독론”은 요한복음 저자에 대한 통설(사도 요한 저작설)을 반박하고 구약과의 가장 철저한 단절체로서 요한복음을 논한다. 도올의 요한복음 이해는 철저하게 영지주의적인 세계관에 입각한 이해인데, 그의 경우 영지주의가 그냥 이단으로 몰릴 협애한 영지주의가 아니라 헬라 철학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의 영지주의다.

그러나 도올의 요한복음 이해는 요한복음과 창세기 말씀 신학과의 관계, 지혜문학과의 관계, 최근에 점증하는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서의 관계에 대한 연구,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한 경륜교체주의적(supercessionistic) 이해에 대한 반박적 연구의 증가 등을 거의 반영하지 못한 낡은(?) 이해다. 도올은 자신이 새롭게 포괄적으로 정의한 영지주의(2세기의 자유로운 혼합주의적 헬레니즘적 분위기)에 입각하여 요한복음은 영지주의적 복음서라는 가설을 받아들이며, 무조건적인 반(反)영지주의적 복음서라는 재래의 이해(299쪽; 이영헌, <요한복음 역주>)를 반박한다(291-292쪽).

그의 다음 언설은 인용할 만하다. “초기 기독교는 영지주의 기독교라고 해도 될 만큼 헬라세계의 종교였으며, 그러한 일반 분위기에서 어떻게 정통 기독교적인 교리가 성립되어 갔는가를 개방적으로 탐색하지 않으면 도저히 기독교의 실상에 접근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과 무관한 역사적 사실의 탐색이며, 오히려 역사적 사실의 개방적 탐색이야말로 오히려 궁극적으로 우리의 신앙을 강화시켜준다는 것을 잊으면 아니 된다. 바로 그 열쇠가 요한복음이다”(291쪽).

그는 요한복음서가 초대 이방 교회에 모여든 희랍적 합리주의, 로고스적 지적 전통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저작된 복음서라고 생각한다. 요한복음은 대승 기독교의 정점이며,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시작이었다(295-296쪽). 흔히 반영지주의라고 규정된 모든 요소들도 영지주의 체계 안에 포함된 속성들이라고 보는 점에서 도올은 영지주의에 대한 아주 포괄적인 이해를 붙든다.

그의 요한복음에 대한 칭송은 다음 인용구가 잘 포착하고 있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철저히 영지주의적 세계관을 이해하고 그러한 어휘로써 새로운 복음의 해석의 지평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험난한 2, 3세기를 살아남을 수 있었다. … 실제로 헬라세계에서 기독교의 지속성을 보장한 것은 요한의 해석 틀이었다”(바울이 아니라)(299쪽).

도올의 요한복음의 로고스 기독론에서 강조되는 요점 중 하나는 인간의 내재적 계시 수용성의 문제다. 신정통주의가 아주 격렬하게 싸운 내재주의가 도올에게 나타난다. 도올은 요한이 사용한 로고스는 이미 헤라클레이토스(540-480BC)로부터 스토아철학에 걸쳐 6세기 동안에 전개되어 온 바로 그 로고스 개념이라고 본다(<요한복음 강해>, 67-110쪽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 인용 로고스 기원 설명)(304-305쪽). 어둠에 사로잡힌 “내가 어떻게 예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가? 바로 예수의 말씀을 알아차릴 수 있는 나의 말씀이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과 나의 말씀은 하나로 통한다”(삼중적인 동일시).

이 장의 끝에서 도올은 이 책의 서론에서 밝힌 예수 사건 이해 방법과 상치되는 해석적 태도를 드러낸다. 종교에 대한 이성적 분석의 중요성을 옹호한다. “종교는 계시와 은총의 대상으로만 규정되어야 하며 일상적 체험과 이성과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정밀한 신학 체계를 수립하려는 끊임없는 이성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기독교는 새카만 옛날에 이미 지중해 연안의 한 불건전한 미신으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330쪽).

이 주장의 말미에 도올은 한국 기독교가 “문명 통합의 기초”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암묵적으로 피력한다. 요한복음의 예에서 잘 드러나듯이, 도올은 “종교적 아이디어들은 서로 배우고 서로 빌려야 하며,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종교는 증오로 남아서는 아니 된다”고 역설한다. 그는 덧붙인다. “오늘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은 증오 그 이상을 말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12장 “디아테사론과 몬타니즘”과 13장 “아타나시우스의 부활절 메시지까지”는 정경화의 문제를 다룬다. 정경화 이전의 무질서와 혼돈 상황을 강조함으로써 신약 27권 정경 체제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12장 처음부터 도올은 화이트헤드의 통찰에 입각하여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하나님은 갈릴리의 지평(사랑이신 하나님)을 상실하고 세 가지 이미지로 발전되었다고 단정한다; 제국의 통치자로서의 이미지(가이사); 도덕적 에너지의 구현체로서의 이미지(잔인한 도덕주의자); 궁극적 철학 원리의 이미지(부동의 동자)(333-334쪽).

그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교회사의 결정으로부터 성서를 해방시킬 것을 강조한다. “신구를 막론하고 기독교가 21세기에 이 땅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복음의 원래적 지평으로 회귀하는 것이며, 교회사의 모든 권위로부터 성서를 해방시키는 것이다”(335쪽). 도올은 172년경에 타티안이 편집한 네 복음서 디아테사론 출현을 아주 의미 깊은 사건으로 평가한다. 다름과 긴장감 있는 차이를 가진 네 복음서를 한데 묶은 것 자체가 기독교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정경화의 근거가 되었다고 말한다. “4복음서의 충돌과 조화야말로 영원히 기독교를 가톨릭교회의 도그마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성서적 근거”를 확보한 것이라는 것이다(337쪽).

이 장에서 도올은 타티안의 스승인 순교자 유스틴의 로고스 이론을 상론하여 자신의 신학적 논지를 드러낸다. 150년경에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아폴로지 1>을 저술하여 바침으로써 유스틴은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이성은 하나이며 기독교인은 무신론자가 아니며 로마에 적대 감정이 없다고 설명하기에 이른다(338쪽). 그는 기독교 신앙의 지적 언표와 로마 사회의 모든 이성은 조화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소크라테스도 크리스천이라고 주장한다.

“신앙과 이성이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이성이 하나로 상통되었기 때문이다. 양자는 모두 로고스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로고스성으로 인하여 사람은 우주, 시간, 창조, 자유, 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의 상통성, 그리고 선악의 분별에 관한 매우 기본적인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 그러나 이 신적 로고스는 예수 이전에도 이방인의 철학자들에게도 부분적으로 육화되어 나타났다”(339쪽). 이것이 유스틴의 핵심 주장이었다. 이 로고스론은 도올의 요한복음 강해의 기반으로 사용된다.

도올은 이방인 신자는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유스틴의 <트리포와의 대화>는 요한복음의 영향이라고 본다. 도올은 유스틴의 저작 안에서 2세기 초기 기독교의 자유로운 사고-이성과 신앙을 이원화시키지 않는 태도를 간취한다고 말하며 이성을 신앙에 종속시킨 것은 중세 스콜라신학의 장난이었다고 비판한다(339-340쪽).

도올의 격렬한 이성과 신앙의 통합 옹호론은 다음 인용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 “21세기의 기독교는 이성과 신앙의 이분법을 완벽하게 타파해버려야 한다. 이성의 훈련이 심화되면 될수록 신앙이 발현될 수 있는 종교로서 다시 형성되어야 한다. … 신앙의 모든 요소는 이성적으로 설명 가능하다. 결단의 벼랑까지 인간을 몰고 가는 것은 이성이지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다. … 우리나라의 신학대학교의 커리큘럼들이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뜻있는 신학자, 신학대학 교수들, 학생들 모두 그러한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 그것은 이단의 용인이 아니라 정통신학을 어떻게 보다 개방적 정보의 공간 속에서 확보하느냐 하는 문제일 뿐이다”(341쪽).

13장 “아타나시우스의 부활절 메시지까지-정경과 외경이 없던 시대”는 정경이 기독교 신앙과 하나님의 복음의 자유로운 동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도올의 주장을 전개한다. 도올은 신약 27서 체제에로의 정경화 과정은 어디까지나 교회 정치와 로마의 정치권력의 역학 구조 안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일들의 경과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아리우스파에 대한 대체적인 동정적 이해를 기조하면서 367년에 27서 체제를 신약 정경으로 선포하는 아타나시우스의 활동을 정치공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가 정경화의 과정에서 최종 결정권자가 된 것은 로마교회와의 유착 관계와 로마제국 황제 권력과의 적절한 제휴 때문에 가능하였다는 것이다(348-350쪽). 정통 기독교는 로마교회의 승리를 최종 권위로 수용하는 것 이상 아무 의미도 없다는 식으로 본다.

정통 기독교라 함은 로마교회의 다수에 의하여 지지를 받는 기독교 형태를 의미했다는 것이다(2세기 초부터). “이 로마교회의 입장이 결국 200여 년의 투쟁을 통하여 로마 황제의 권력을 획득함으로써 불가항력적 권위를 획득하였다는 데에 정통성의 역사적 계기가 존하는 것이다.” “로마교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대체적으로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입장”이었기에 때문에 신약과 구약의 단절이 불가능했고 율법과 구약과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신약성서의 책들이 정경으로 채택되었다는 것이다(터툴리안, 오거스틴, 로마사회가 법치주의, 무질서 무정부 의심하는 로마제국은 율법 선호)(355쪽).

“1세기 초 초기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구약에서 분리시키려는 입장이었고 바울도 그러한 분리적 입장에서 그리스도교의 기본 구조”를 잡았는데 아타나시우스의 정경화 작업으로 이 흐름이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논의에서 발견되는 도올의 주요한 관심은 기독교 신앙의 배타성에 대한 경계, 개방성, 다원주의적 종교 혼융(풍유 신학의 유동식에 대한 높은 평가)에 깊은 인정이다. 그는 규범적 접근보다 서술적 현상학적 접근을 선호한다. 그가 구약과 신약의 통합을 극히 경계하는 이유는 복음으로 인해 획득된 자유가 또다시 율법주의로 퇴행할 것에 대한 경계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결국 도올은 27서 정경 출현을 정치권력 갈등사의 맥락으로 위치시킴으로써 정경화의 과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369쪽). 그러나 여기에서 도올은 한국 경건한 그리스도인 독자의 반감을 의식하며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문자적으로 정리한다. 기독교의 흘러간 역사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피력하지만 자신은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모든 정통적 교설에 대해서 아주 근원적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나의 마음 자세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내가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언어와 하나님의 언어를 혼동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말한다(370쪽).

13장의 마지막에서 도올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첫째, 정경이 교회를 성립시킨 것이 아니라 반대다. 27서 정경화 작업에는 교회라는 조직의 이해가 연루되어 있다. 둘째, 27서 정경화 이전에는 정경 외경 분별이 없다. 정통과 이단도 없다(385쪽). 그는 경전 외에서 자유로운 기독교, 27서 경전 체제 이전의 원시 종교 혼융적 기독교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14장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는 제롬의 라틴어 성경 번역을 논하기에 앞서 아타나시우스의 27서 체제가 당시에 절대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 정경 체제가 아니었음을 지적한다(388-389쪽). 동시에 도올은 아타나시우스 27서부터 2005년 한국의 천주교 주교회의 번역본까지 모두 다 동일한 자격을 지니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하며, 번역 성경도 여전히 성경임을 역설한다(406-407쪽).

15장 “이집트인들의 종교 관념”은 나그 함마디 문서에 근거하여 재구성된 콥틱 기독교회의 개방성과 종교 혼융성을 찬양한다(418-419쪽). 도올은 요한복음 성립 이후 아타나시우스 27서 체제 성립까지 3세기 초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영지주의 전성시대라고 규정함으로써 요한복음 등에 영향을 미친 영지주의가 얼마나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세계관이었는가를 강조한다(419쪽).

16장 “나일강 유역의 수도원 문화-안토니와 파코미우스”는 영지주의의 복합성과 넓은 외연을 강조한다(438쪽). 영지주의 혹은 후에 정통 기독교에 이단으로 낙인찍힌 영지주의적 자료들과 사상들은 실상 아타나시우스 27서 체제 이전에는 이집트의 정통파 수도원에 자유롭게 유통된 사상들이었고 서책들이었다는 것이다. 아타나시우스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파코미우스 수도원은 숨겨두었지만 1587년 만에 발견되었다. 이것이 나그 함마디 문서다. 27서 경전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마그마 상태의 기독교를 보여주는 자료라는 것이다(438쪽).

17장 “사바크의 저주와 축복”은 1945년에 나그 함마디 문서가 발견되고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의 과정을 소설 형식으로 기록한다. 나그 함마디 문서는 13개의 코덱스에 50~60권의 책 분량이었으나 현재 52서가 번역되었다. 도올이 보기에는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책이 도마복음서다(455-458, 466쪽).

18장 “에필로그”는 우리 신학계가 나그 함마디(체노보스키온) 문서에 대한 연구 성과를 아직까지 내놓지 않는 점을 비판한다(465쪽). 그는 마지막으로 이 <기독교성서의 이해>가 <요한복음 강해>의 서문임을 밝힘으로써 책을 마무리한다(468쪽).

김회권 / 숭실대 인문대 기독교학과 교수
* 이 글은 제1회 인문과학연구소 포럼, '회권, 도올을 깨다'(2007년 4월 24일)에서 저자가 발제한 논문으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몇 차례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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