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엔 회사원, 주말엔 경호원?
주중엔 회사원, 주말엔 경호원?
  • 박지호
  • 승인 2007.06.12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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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한인교회 사랑의교실 총무 홍은호 집사를 만나다

   
 
  ▲ 퀸즈한인교회 사랑의교실 총무 홍은호 집사. 대기업 부서장이라는 사회적 위치로 목에 힘을 줄 법도 한데 한참 어린 장애우들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쓴다. (박지호)  
 
훤칠한 키, 말끔히 빗어 넘긴 머리, 무뚝뚝한 표정, 부지런하지만 과장되지 않은 움직임, 시종일관 사람들을 주시하는 시선. 퀸즈한인교회(고성삼 목사) '사랑의교실' 총무 홍은호 집사의 첫인상은 경호원의 모습에 가까웠다.

말수가 적은 홍 집사는 자신에 대해서 묻기 전에 말하는 법이 없다.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즐거운지 몰라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랑의교실 주보에서도 홍 집사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2007년 사랑의교실 사업계획서’를 뒤져서야 그의 공식적인 정체가 사랑의교실 총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말이 총무지 업무 분담표에 적힌 대로라면 재정 관리서부터 인터넷 셋업, 수송, 예배 일지 관리까지 허드렛일 담당이다. 예배 시간에도 특별히 맡겨진 역할은 없다. 그저 맨 뒤에 앉아서 장난치는 장애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웃을 뿐이다. 기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취재원을 만나면 난감하다. 사진을 찍을 게 없고, 글을 쓸 게 없어서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이 홍 집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홍 집사가 장애우들을 위한 예배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사랑의교실이 시작된 지 3개월 정도 지난 2006년 2월쯤이다. 홍 집사는 장애우 예배 때마다 주변을 기웃거리며 한참을 서성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예배부터 참석해봤다. 하지만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홍 집사는 한결같이 사랑의교실을 지키고 있다.

늘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가 필요한 자리에 필요한 역할을 감당해주는 홍 집사는 ‘그럼 제가…'라는 말을 잘한다. 정말 필요한 일인데 맡을 사람이 없어서 낑낑대고 있으면, 조용히 듣고 있다가 슬그머니 ‘그럼 제가…’라는 한마디를 던진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그런 홍 집사의 보이지 않는 섬김이 전임사역자도 없는 사랑의교실이 잘 뿌리내릴 수 있는 밑거름이었다고 말했다.

   
 
  ▲ 홍 집사는 주일도 바쁘다. 11시에 시작되는 장애우 예배를 위해 9시부터 아이들 실어 나르기 시작한다. 예배 마치고 다시 집에 일일이 바래다 주고 나면 오후 3시가 훌쩍 넘는다. (박지호)  
 
사실 홍 집사가 전혀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선생님들과 담당 장로님들을 칭찬할 때는 그렇게 적극적일 수가 없다. “정말 대단해요. 저야 장애인을 둔 가정에서 자라서 그렇다지만 장애인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저렇게 열심히 헌신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워요.”

홍 집사에게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남동생이 있었다. 하지만 12년 전 홍 집사가 결혼하던 날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홍 집사의 마음 한구석엔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기회가 되면 어떤 모습으로든 장애우들을 돕겠다고 맘먹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차에 교회에서 사랑의교실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홍 집사가 미국에 온 것은 10살 때다. 세탁소를 운영하며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던 부모님들은 동생을 제대로 챙길 여력이 없었다. 가끔 부모님과 세탁소에 나와 있던 것이 동생이 외출하는 유일한 시간이었을 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당시는 장애인 선교단체도 없었고, 장애인들을 위한 예배 프로그램도 없던 시절이었다.

   
 
  ▲ 장애우들을 픽업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제 발로 타고 내리는 애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장애우 부모님께 미리 연락도 해야 한다. 잠깐이지만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은 중요하다. 자녀와 함께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부모님들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박지호)  
 
주일 아침을 침대에서 맞을 수밖에 없었던 동생의 모습이 홍 집사에게는 아직도 또렷이 남아있다. 그는 답답한 방 안에서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 있어야 하던 동생을 두고 교회로 가야했던 마음이 어떤지 잘 안다. 그리고 교회 가는 형의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동생의 마음도. 
 
그제야 “장애인 친구들이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즐거울 뿐”이라는 홍 집사의 진부한 대답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주일마다 차로 실어 나르는 장애우들이 적어도 그에게 만큼은 10여 년 전에 외롭게 방 안에서 주일을 보내야 했던 동생인 것이다.

장애인 동생이 있었던 홍 집사는 장애우를 둔 가족이 겪는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안다. 가족들은 모든 생활 주기를 장애 가족에게 맞춰야 한다. 그런 긴장 상태는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가져와 우울증이나 의욕 상실 등과 같은 정신적 어려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장애우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사회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잃어버려 고립되기 쉽다. 또 경제 활동에도 제한을 받게 되면서 경제적 어려움까지 가중되는 것이다.

이런 장애우의 가족들이 아픔을 홍 집사는 잘 알기에 앞으로 그들을 더 체계적으로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지난번엔 정신과 의사를 초청해 장애우 가족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갖기도 했다. 장애우 예배는 장애우들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가족들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 시간에 장애우를 둔 부모들은 편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가족들은 잠깐이지만 쉴 수 있기 때문이다.

   
 
  ▲ 유미나 양을 바래다 주는 홍 집사. 그는 가끔 자녀들과 함께 미나가 좋아하는 강아지를 데리고 미나 집에 놀러 가기도 한다. 처음에는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말도 알아 듣지 못했던 미나가 이젠 많이 좋아졌다. 말도 알아 듣고 웃기도 한다. 손으로 홍 집사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한단다. (박지호)  
 
하지만 아직도 음지에서 방치되고 있는 장애우들이 많다는 현실을 홍 집사는 잘 알고 있다. 우리 사회가 장애우들을 넉넉하게 받아주고 함께 갈 만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가 이런 일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홍 집사를 비롯한 사랑의교실 선생님들의 생각이다. 홍 집사는 “연락만 주면 얼마든지 데리러 갈 테니 부담 갖지 말고 연락만 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홍 집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장애를 치료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같이 예배드리고,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게 전부죠”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애초부터 아이들을 변화시키겠다는 거창한 목적은 없었다. 다만 그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니 급할 것도 없고, 남들을 의식할 이유도 없다.

홍 집사와 사랑의교실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려가기 위해 지붕을 뜯고 병자를 달아 내린 가버나움의 네 사람이 떠올랐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 네 사람의 행동하는 믿음에 주목했다. 오늘 홍 집사와 사랑의교실 선생님들에게도 동일한 예수님의 칭찬이 있으리라 믿는다.

   
 
  ▲ 홍 집사의 율동하는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아이들은 그런 홍 집사를 잘 따른다. 장애우들에게 "홍 선생님 어때요?" 하고 물으니 다들 "착해요"라고 대답했다.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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