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들이 일어나 소리 지르기 전에
돌들이 일어나 소리 지르기 전에
  • 조명신
  • 승인 2007.06.14 1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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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위조 목사 밝혀지자 일부 목사들 보도 자제 요청

충청 지역을 연고로 1986년에 창단한 빙그레 이글스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선수가 찾아왔습니다. 고졸 선수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선수 부족 사태를 겪고 있던 구단은 그를 2군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처음에는 잘 맞지 않은 유니폼처럼 어색하게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던 그는 타격 기술을 익히면서 실력이 날로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주전 자리를 확보하더니 홈런의 개수가 늘었고 급기야 홈런왕 이만수의 기록까지 넘어섰습니다.

월급 40만 원짜리 연습생으로 시작한 그의 야구 인생은 20년이 넘게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1,950경기에 출전해 6,292번 타석에 섰고, 340개의 홈런을 날렸습니다. 그의 홈런 기록은 아직도 한국 프로야구의 최다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도 '고졸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던 그에게 한 4년제 대학에서 특례 입학을 제의했지만 그는 완곡하게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훗날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사실 난 대학에 가고 싶었어요. 나중에 아이들한테 대학 나온 아빠로 기억되길 원했거든요. 그런데 나마저 대학을 가버리면 그동안 날 좋아하고 열렬히 응원을 보냈던 고졸 출신들한테 바로 상처 주는 일이 되잖아요. 결국엔 대학 가는 걸 포기하고 고졸 출신들의 우상으로 남기로 했죠. 지금은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자신의 이력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당당히 실력으로 승부해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연습생의 신화'를 남긴 그의 이름은 장종훈입니다.

학력과 경력을 속이는 세상

지난 4일, 월요일 오전에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불과 몇 시간 후인 12시에 있을 달라스 목사회의 월례회에 대한 취재 요청이었습니다. 이미 다른 약속이 잡혀 있던 터라 참석할 수는 없었고, 전화로 행사의 내용을 확인하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목사가 노회(장로교에서 각 교구의 목사와 장로 대표들이 모이는 모임)에 가입하기 위해 제출한 신학교 졸업증명서와 목사 안수증이 허위로 밝혀져 해당 노회에서 제명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사실을 발견하면서 장종훈 선수가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 목사가 학력과 경력을 속이게 된 배경에는 학력과 능력 사이에 반드시 연관 관계가 있다는 아니 있어야만 한다는 우리 사회의 강박관념이 자리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 명은 오로지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 보였다면, 또 다른 한 명은 위조를 통해 그 선입견을 피해가려 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월요일부터 마음이 심란했고 답답했습니다. 이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지켜봤던 목사들을 인터뷰하는 동안 더욱 곤혹스러웠습니다. 노골적으로 같은 목사라는 사실이 부끄럽다며 그런 사실은 공개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혹은 돌려서 말한 목사도 있었지만 보도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말한 목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보도되면 달라스가 시끄러워지고 교회와 목사의 위신 등 여러 면에서 부정적인 시각을 주기 때문에 기사를 쓰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편 목사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학교에서 가르치던 선생이 알고 보니 교육대학 졸업장도 가짜고 교사 자격증도 위조해 속였다면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심지어는 많은 사람이 도덕성을 의심스러워하는 정치인들조차 학력과 경력을 위조한 것이 드러나면 물러나는 세상인데, 하물며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영적 지도자인 목사에게 최소한의 정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도 물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제휴 언론사를 통해 추가 취재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마감 시간이 임박한 터라 확인된 내용만 가지고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답답한 현실과 교회의 희망

비록 기사에는 쓰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씁쓸했던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문제가 불거진 지난 5월 둘째 주 무렵 교계의 단체장들이 언론사를 방문해 보도 자제 요청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한 목사는 노회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총회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는 문제이니 총회의 공식적 발표가 있을 때까지만 보류해달라는 의미에서 선의로 부탁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명이건 탈퇴이건 간에 그 목사와 총회와의 연관성이 사라져 버린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요청마저도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답답한 교계의 현실이지만, 여전히 교회에는 희망이 남아있으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성경을 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하셨다."(표준새번역, 누가복음 19:40) 

* 이 기사는 <미주뉴스앤조이>와 기사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코넷>(http://www.thekonet.com)에 실린 것을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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