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생님 언제 또 와요?
우리 선생님 언제 또 와요?
  • 박지호
  • 승인 2007.06.1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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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목사와 한인 교회가 빚어낸 흑인 빈민가 뒷골목 유쾌한 소음

   
 
  ▲ 환하게 웃고 있는 키아라. (사진 제공 이태후)  
 
재키 리 양(16, 뉴욕교회)은 벌써부터 설렌다. 8월에 있을 빈민가 아이들을 위한 여름 캠프 때문이다. 작년 캠프 때 동네 아이들과 뛰놀며 웃고 떠들던 일들을 떠올리면 얼굴에 미소도 함께 번진다. 울면서 힘겹게 작별 인사를 나눈 키아라의 환한 웃음도 그립다. 그동안 잘 지냈는지 궁금하다.

흑인 빈민가에 간다는 생각에 무서워 망설이기도 했지만, 작은 관심에도 맘을 열고 매달리는 아이들 덕분에 두려움과 어색함은 금세 자취를 감췄다. 깨어진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삶을 보면서 마음으로 울기도 여러 번.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미국 땅에도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6월 15일에는 뉴저지 초대교회(담임목사 이재훈)에서 필라델피아 빈민가 아이들을 위한 여름 캠프 준비 모임이 있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열리는 캠프다. 이번 모임에는 뉴저지 초대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을 비롯해 플러싱에 있는 뉴욕교회(담임목사 김은철)와 뉴 브런스윅에 있는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담임목사 박반석) 청년부도 참여했다.

1박 2일 동안 캠프를 준비하며 팀워크를 다지고 함께 기도하며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캠프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이태후 목사가 학생들에게 캠프의 취지와 주의 사항을 일러줬다. 또 ‘예스앤캠프’(Yesandcamp)라는 기독교 비영리단체에서 게임을 통한 성경공부 방법과 대화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고 실습하는 시간도 가졌다.

   
 
  ▲ 필라델피아 빈민가 아이들을 위한 여름 캠프 준비 모임을 하고 있는 자원 봉사자들.  
 
캠프가 열리는 곳은 필라델피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가난하고 위험한 동네인 노스 센트럴이다. 이곳으로 이태후 목사가 거처를 옮긴 곳은 2003년 여름이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물음보다 ‘예수님이라면 어디에 사셨을까’라는 질문이 더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흑인 빈민가에서 이웃의 친구가 되어 함께 울고 웃기를 3년여. 작년 8월에 이 목사는 빈민가 아이들을 위한 여름 캠프(Uber Street Summer Camp)를 시작했다. ‘Play street'에서 힌트를 얻은 이태후 목사는 몇몇 한인 교회들과 연합해 캠프를 열었다. 변변한 놀이터도 제대로 없는 흑인 빈민가 아이들에겐 그나마 길거리가 유일한 놀이터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이 신청을 하면 시에서 ‘Play street'라는 구역을 만들어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오전 10시부터 4시까지 차량 통행을 제한한다. 가로수를 지붕 삼아 길거리를 교실로 만든 것이다. 이 목사의 제안에 여러 한인 교회들이 힘을 모았다. 첫째 주에는 뉴욕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이, 둘째 주에는 메릴랜드에 있는 워싱턴 나들목교회 청년들이, 셋째 주에는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 청년들이 함께했다.

   
 
  ▲ 가로수를 지붕 삼아 길거리를 교실로. (사진 제공 이태후)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1주일 전부터 동네 아이들에게 신청서를 돌렸지만, 캠프 시작 첫날 20명이 넘는 봉사자들 앞에 얼굴을 내민 아이들은 고작 5명. 다음날에는 동네 한 주민이 “캠프에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있다”며 “당장 중단하라”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소문이 퍼지면서 아이들은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음날에는 14명, 그 다음날에는 23명, 그리고 32명. 둘째 주에는 매일 서른 명 넘게 참석했고, 많은 날에는 60명 가까운 아이들이 골목을 채우기도 했다. 3주 동안 캠프를 한번 이상 다녀간 아이들만 90명이 넘었다.

근처 교회 여름 캠프에는 채 20명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건물도 없이 골목길에서 치른 캠프에 100명 가까운 아이들이 모여든 것이다. 아이들을 발길을 끈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헌신적인 사랑을 베푼 한인 교회 봉사자들 덕분이었다. 가난과 배고픔보다 사랑에 더욱 허기져 있던 아이들은 자원봉사자들이 보여준 작은 애정과 관심에도 크게 반응했다. 

동네 주민들도 한국인들이 진심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호응하기 시작했다. 흑인 대학생 한 명은 아이들이 찬양에 맞춰 율동을 따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흑인 교회에서 아이들이 율동을 따라 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한인 학생들을 따라 열심히 율동하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던 모양이다.

동네 한 아주머니도 찾아왔다. 자신의 아이가 캠프에 참여해서 관심 있게 지켜봤는데 너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나는 이슬람 신자인데, 당신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듭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전적으로 당신을 돕겠습니다.” 골목 모퉁이에서 마약을 파는 사람도 찾아왔다. 자신의 조카가 성경학교를 재미있어 한다며,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부탁하라며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마약 거래자들과 이 목사 간에 새로운 형태의 커넥션은 그렇게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아이들을 위해 고생한 봉사자들을 위해 캠프 마지막 날에는 동네 주민들이 손수 잔치를 열었다. 주민들은 하루 전부터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내놨다. (사진 제공 이태후)  
 
캠프가 끝나기 며칠 전 지역 대표까지 이 목사를 찾아왔다. 아이들을 위해 고생하는 봉사자들의 섬김이 너무 고마워서 동네 사람들이 잔치를 베풀기로 했는데 괜찮겠냐는 것이다. 이 목사는 환영의 뜻을 표했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여름 캠프 마지막 날, 동네 사람들이 골목을 가득 채웠다. 주민들은 하루 전부터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내놨다. 자원 봉사자들과 주민들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학부모들은 자원 봉사자들이 들려주는 자식 자랑이 마냥 기쁘고 재밌다.

소음이라곤 늦은 밤에 들리는 총 소리와 경찰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전부인 이 동네에서 외지에서 온 동양인들과 동네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골목길을 울렸다. '지극히 작은 자'들과 삶을 나누겠다며 빈민가 아이들을 위해 작은 사랑을 실천한 이 목사의 헌신과 풍성한 인적·물적 자원을 기꺼이 내놓은 한인 교회의 나눔이 함께 만들어낸 아름다운 소음이었다.

캠프가 끝난 후에도 학부모들과 이 목사는 당분간 아이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아이들은 하루가 멀다고 “봉사자들이 언제 다시 오냐”고 물었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캠프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7월 30일부터 8월 17일까지 3주간 진행될 이번 캠프에는 어떤 소음이 빈민가 골목을 가득 메울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우리는 주는 것이 축적하는 것보다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을 믿는, 사랑이 증오를 변화시킬 수 있고, 빛이 어둠을 압도할 수 있으며, 잡초가 콘크리트를 뚫고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다.” (쉐인 클레이본의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중에서)

   
 
  ▲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과 한인 교회 자원봉사자들. 작년 캠프는 인종의 벽과 빈부의 격차를 복음으로 극복하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사진 제공 이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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