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를 희화화한 한국 언론
참사를 희화화한 한국 언론
  • 조명신
  • 승인 2007.06.1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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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절차 없이 베껴 쓰는 관행이 만들어낸 오보

“영어 미숙해서… 미 한인 부부 참변”(<동아일보>) “재미교포 부부 ‘어이 없는 참변’”(<조선일보>) “‘차에 물 들어온다’ 911 전화 걸었지만… 영어 서툴러 교포 부부 익사”(<중앙일보>)

김영환 조숙연 부부의 참사를 보도한 한국 일간지의 제목들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 기사들의 공통적인 내용은 ‘영어 미숙’으로 ‘한인 부부가 참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좀 더 세밀하게 기사를 분석해보면 기본적인 사실조차 부정확한 것이 3∼4개씩 있다. 전체적으로 길지 않은 기사의 분량에 비추어 보면 한 단락에 한 개씩 오보를 담고 있는 셈이다.

한국 시각으로 8일에 보도된 이 기사들의 원출처는 <미주중앙일보>다. 6일 오전 9시경 트리니티강에서 김 씨의 승용차가 발견되면서 모여든 언론사 기자 가운데 <미주중앙일보>의 기자가 있었고 한인 언론으로는 첫 기사를 썼다.

그러나 사실에 오류가 있었다. 11년 6개월 전인 1995년 12월에 미국에 온 김 씨 부부의 이민 기간을 '20년'이라고 했고, 이미 물에 잠겨 꺼져 있던 "휴대전화의 전파가 강 속에서 감지됐다"고 하는가 하면, 사고 현장에 나온 유가족들의 이름을 틀리게 표기했다.

이 기사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연합뉴스> 특파원을 통하면서 더욱 부실해졌다. 이 특파원은 자신의 기사 속에서 “오후 3시에 실종됐다”고 했으면서도 시작 부분에서는 “한밤중 폭우 속에 운전하던 차가 강물에 빠졌다”고 쓰는 등 앞뒤도 맞지 않았고 ‘오크 클리프’ 지역을 ‘오크 클리크’ 지역으로 잘못 표기하기도 했다.

기사 뒷부분에서는 “유가족들은 … 교환원은 영어를 말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전화를 끊었다고 주장했다”고 썼으나 유가족들은 “이와 같은 주장을 한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더군다나 이 기사를 쓴 특파원은 유가족 어느 누구와도 인터뷰를 한 사실이 없다.

한국의 주요 일간지들은 <연합뉴스>를 받아 오보를 양산해냈다. 길지 않은 분량의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에 등장하면서 참사는 '희화화'되었다. 전후좌우에 대한 언급이 간략해지면서 고인들의 이민 기간과 영어 능력을 지적하는 기사로 돌변했다.

이 기자들은 자신이 쓴 기사의 부정확성을 인식하고 있을까? 문제의 기사를 쓴 <미주중앙일보> 기자는 전화 통화에서 자신의 오보를 인정했다. “이민 기간을 잘못 기재한 것은 고인의 가까운 지인에게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적었다”면서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은 것은 본인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분들을 돕고자 취재를 했으며 기사 한 줄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썼다”고 해명했다. 또한, “오열하는 가족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이 그들의 슬픔을 부추기는 일이라 생각해 사고 현장만 카메라에 담을 정도로 조심했는데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오보가 나면서 다른 방향으로 문제화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연합뉴스>의 특파원도 "한국에 있는 고인의 친척으로부터 항의 메일을 받았다"면서 부정확한 기사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이 사건을 언제 인지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7일 아침 <미주중앙일보>와 <미주한국일보>를 통해 알았다”고 밝히고 “긴박한 상황이라 유가족과의 통화는 못했고 미국 언론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어느 언론이었는지 묻자 “구글 검색을 통해 참고했던 것이라 정확한 언론사명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현장 취재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관계자와 전화 한 통 하지 않고 이미 보도된 기사만 취합해 새로운 기사를 재생산해낸 것이다.

유가족들의 심적 고통을 유발한 오보에 대한 정정 보도 가능성을 묻자 “이 사건과 관련해 추가로 밝혀진 사실이 있으면 새로운 기사를 써보는 것을 생각해 보겠지만 그렇다고 한국 언론이 다시 실을 수 있을지 장담 못하겠다”고 답했다.

섣부른 베껴쓰기 보도의 위험

   
 
  ▲ 사고 현장에 선 고인의 장녀인 김한나 씨. "어떻게 취재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민 기간이나 가족 이름도 틀렸고, 영어 못해서 참변을 당했다는 식으로 오도한 것이 불쾌했다"며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사진 제공 코넷)  
 
미국에서는 ‘안타까운 사고사’로 보도된 죽음이 한국에서는 ‘영어 못해 죽은 참변’으로 희화화된 배경에는 확인 절차 없이 베껴 쓰는 한국 언론의 관행이 자리하고 있다. 최초 보도를 한 기자가 실수를 하면 정정될 기회를 잃어버린 채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다. 기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겠지만, 실수가 번지는 데도 바로 잡을 장치가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보인다.

고인의 장녀인 김한나 씨는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어떻게 취재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민 기간이나 가족 이름도 틀렸고 영어 못해서 참변을 당했다는 식으로 오도한 것이 불쾌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미국 언론은 사실에 의거해 기본적인 내용에 비교적 충실했지만 한국 언론은 서로가 다 복사해 모두 오보를 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에 관한 한 <달라스모닝뉴스>의 기사만 정확히 번역했어도 오보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잘못된 기사를 서로 복사하기만 할 것 같으면 한국에 많은 언론사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잘못된 보도를 접한 친척들의 연락을 받고 마음이 아파 오보를 정정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장례식도 안 치른 상황에서 자식 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장례식 후에는 이미 시간이 지나가 버려 다시 문제 삼는 게 아름답게 떠나신 뒷모습에 누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 갈등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터뷰에 응한 이유로 “섣부른 보도에 위험 요소가 많았다는 것과 한국 언론이 같은 한인들을 그렇게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 이 기사는 <미주뉴스앤조이>와 기사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코넷>(http://www.thekonet.com)에 실린 것을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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