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은 백성의 핏줄이다
빵은 백성의 핏줄이다
  • 양국주
  • 승인 2007.06.2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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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주의 세상 이야기

   
 
  ▲ '눈'이라고 부르는 이란 빵은 갖가지 재료로 부드럽게 만들어졌다. (사진 제공 양국주)  
 
예수께서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Bread alone)는 명언을 남긴 이래로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빵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되는 육적인 것을 총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개인 경건과 영적인 삶을 강조하는 신앙인들 사이에는 성욕만큼이나 빵은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욕망을 절제하는 결단의 표시로 금식이 유행처럼 되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순수성과 충정을 내보이기 위한 자기 맹세인 셈이다. 그러나 금식이 주는 유익이 아무리 좋아도 평생을 굶을 수는 없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빵 없이 살 수 없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실제 예수께서 언급한 빵에 대한 경계의 목적은 빵이 하나님을 대신할 우상이 되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지만, 허기진 인간은 굶주림 앞에 정의나 인격의 고귀함을 송두리 채 내팽개치기도 한다. 빵이 인간의 삶에 필요충분조건이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사치품이 아닌데도 금도를 넘어서는 까닭이다.

페트릭 헨리가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며 자유의 고귀함을 강조한 것은, 빵 문제가 해결된 인간이 보다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누리고자 하는 인권에 관한 향수를 대변한 것이었다. 생존에 대한 필요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빵이 없는 자유란 실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오늘 북한과 이란의 형편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두바이에서 발행되는 <걸프 투데이>에는 미국의 압력과 유럽의 봉쇄로 이란의 경제가 하루가 무섭게 물가고에 시달리고 있음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천혜의 지리적 축복을 누리는 이란인들이 수입하지 않고도 즐겨 먹는 과일조차도 지난 몇 달 사이로 22퍼센트나 올랐고, 생필품이며 여성들의 호기를 자극하는 뷰티상품 역시 지난해에 비해 곱절이나 올랐다.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따라 잡으려다 보니 중앙은행이 찍어내야 하는 통화 발행이 무려 42퍼센트나 증가했다. 1달러에 9300리알, 100불이면 자그마치 93만 리알이다.

전쟁 직후 이라크가 1달러에 2500디나르였는데 100불을 환전하면 저울에 달아서 라면 박스만큼의 디나르를 받았다. 250디나르가 최고 높은 화폐 단위인지라 돈을 헤아리는 데도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다행이 이란에서는 10만 리알 지폐도 있어서 전후 이라크보다 4배 이상의 화폐 가치가 폭락했음에도 그다지 피부 깊숙이 느끼지 못하는 셈이다.

이란의 모든 지폐마다 날카로운 눈매가 독특한 호메이니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그가 죽은 지 20년. 이란은 130퍼센트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하면서 아직도 이란인의 성불처럼 저들의 정신을 움켜쥐고 있다. 흡사 저승사자 같은 호메이니의 몰골에 비하면 현재의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는 친화력이 있는 인상을 보여준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힘겨운 전쟁을 치러야 하는 시점에 그가 중병인 암을 앓고 있다. 70살을 목전에 둔 정신적 지도자뿐 아니라 이란 사회 전체가 기사회생을 기약할 수 없는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국제공항에서 북쪽으로 40마일 떨어진 테헤란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만나는 첫 번째 경이는 호메이니의 시신을 안치한 모스크였다. 어두운 밤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오른 미네렛(첨탑)과 현란하게 채색된 모스크가 차라리 세속의 배고픔은 잊고 살라는 듯 장관을 이루고 있다.

   
 
  ▲ 어두운 밤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오른 미네렛(첨탑)과 현란하게 채색된 모스크가 차라리 세속의 배고픔은 잊고 살라는 듯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진 제공 양국주)  
 
1979년 호메이니가 오랜 해외 망명지에서 돌아왔을 때 무려 200만 명의 인파가 그의 환국을 기뻐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던 호메이니가 1989년 영면하게 되었을 때 이란인이 느낀 공허함과 절망은 깊고 깊었다. 아야톨라의 주검을 모시기 위해 운집한 1,000만 명도 넘는 장례 행렬 하나만으로도 세계는 경악했다.

호메이니는 평민들과 더불어 묻히기를 원했다. 모든 백성이 평등하다는 꾸란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보다 화려하고 장엄한’ 죽음을 준비하였다. 절대 신의 자리에 오르려 하지 않았던 아야톨라 호메이니 시신도 지금은 박제된 모습의 신으로 드러누웠다. 결코 오래 전의 일도 아니다. 우리 생전에 함께 호흡하고 애증을 나누었던 그가 20년도 채 안된 지금 이란인의 수호신처럼 무함마드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추종자들의 이해와 법통을 유지하려는 이기와 맞물려 상승 작용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칼뱅 역시 평범한 죽음을 원했지만 제네바 시의회가 다른 종교 개혁가들과 차별화를 시도하고자 그의 입상을 반걸음 앞으로 내세운 것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운 것이리라.

고대 헬라 문화를 연구하던 학자들은 유독 올림푸스산을 정점으로 갖가지 신을 만들었다. 세속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만든 신이다. 대리만족이나 현세에서 이루지 못하는 욕망을 대신하려는 또 하나의 욕구인지도 모른다.

수령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지옥 같다던 인민들이 수령님을 위해서라면 부질없는 목숨도 초개같이 기꺼이 내던질 것처럼 오열하던 북한에서 수령의 죽음을 비관하여 자살한 사람이 없듯이, 호메이니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사람 또한 없다. 장송곡이요 귀거래사인 것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신이기 때문이다.

모세에게 ‘고센 땅에서 빵과 고기를 배불리 먹을 때가 좋았는데 네가 우리를 이집트로부터 데려와 광야에서 굶겨 죽이려 하는도다’ 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탄식이 호메이니 무덤을 뒤덮는 절규인양 이래저래 신들은 죽어서도 편치 못하다. 백성은 생리적으로 신보다 빵에 생명의 젖줄을 대고 있는 탓이다.

양국주 / 열방을 섬기는 사람들 국제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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