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누가 여호와의 이름을 모욕하는가
[설교] 누가 여호와의 이름을 모욕하는가
  • 김형원
  • 승인 2007.06.2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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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이름을 회복할 자’…사무엘상 4장 1절~5장 6절

1. 무릎 꿇은 여호와

여호와의 명성은 들었던 것과는 달리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블레셋 사람들은 그렇게 판단했다. 여호와의 가호를 받아 천하무적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스라엘이 자신들 발밑에 엎드려졌기 때문이다.(4:10) 그뿐 아니라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마저도 노략한 품목에 들어있었다.(4:11) 일이 여기까지 진행되도록 여호와는 전혀 손을 쓰지 않았다. 아니, 쓸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힘이 거기까지였을 테니까.

블레셋은 자기 힘의 원천인 다곤 신이 여호와보다 더 우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법궤를 다곤 신전 발치에 두고 다곤 신을 칭송하는 축제를 벌인다.(5:2) 다른 신의 근거지에서 여호와는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패한 신이요, 효력이 떨어진 신으로 실컷 비웃음을 당한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블레셋 사람들도 인정하듯이 여호와는 이집트의 신들을 굴복시킨 신이 아니던가. 홍해에 길을 내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바로의 군대를 수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의 수많은 잡족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었던 여호와가 아니던가.(4:8) 그가 어떻게 변방의 작은 족속에게, 아니 그들의 신에게 무릎을 꿇을 수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진정 여호와의 능력은 거기까지였던가. 그는 과거의 명성만 남은 전설의 신일뿐인가. 효력이 소멸하여 새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은 신이었던가.

2. 자기 백성에 대한 심판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결코 여호와의 능력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오히려 이것은 여호와의 주권적인 방임의 결과였다. 일의 내막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철저히 무너지고 여호와의 법궤를 빼앗긴 것은 이스라엘과 그들의 지도자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이었다. 형식적으로는 여호와를 섬기고 그를 경배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여호와의 종교를 자신들의 욕심을 위한 도구로 오용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법궤 그 자체에 무슨 신비한 능력이 깃들어 있는 듯이 여기고, 여호와 종교를 미신적인 것으로 만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심판이었다.

또한 블레셋과의 전쟁이라는 급박한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여호와의 법궤를 불법적이고 주술적으로 이용하려 한 그들 모두에 대한 심판이기도 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법궤만 앞세우면 어떤 난관이든 능히 뚫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결국 이 모든 일은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자처하지만 실상은 오로지 여호와 종교의 껍데기만 가지고 있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3. 더 참기 힘든 것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과정에서 여호와는 자신의 이름이 잠시 능멸을 당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하셨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거룩한 임재의 상징인 법궤가 이교 신전의 발치에 던져지는 것도 잠시 눈감아 두셨다. 자신을 무찔렀다고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블레셋의 음탕한 축제의 괴로운 소리도 그냥 들어주기로 하셨다.

자신의 이름이 만인 앞에서 모욕을 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도 참기로 하였다. 왜? 도대체 왜 자신이 무기력한 신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는가? 이는 블레셋의 승리의 함성을 듣는 것보다 자기 백성의 가식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자기를 부정하는 자들의 모욕보다 자기 백성의 멸시가 더 괴로웠기 때문이다. 허접한 가짜 신들의 승리의 으스댐보다 겉으로는 섬긴다고 하면서도 여호와를 이용하여 어떻게든 자신의 욕심만을 끊임없이 채우려는 자신의 백성들의 뻔뻔스런 얼굴이 더 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능욕을 당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큰 은혜를 베풀어 언약 백성으로 삼았으나 눈앞의 이익을 위해 배신한 자신의 백성들을 경책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여호와의 마음을 아는가?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사랑한 자신의 백성이 오로지 그 사랑과 은혜를 악용하여 그들의 이기적인 욕심만을 채우고자할 때 느꼈을 배신감을 아는가?

4. 누가 여호와의 이름을 모욕하는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자. 종교 지도자들은 권력과 명예와 성공과 돈의 노예가 되어 교회를 이전투구의 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요일 2:16)에 빠져 하나님과 기독교를 출세와 성공과 자기만족의 도구로 변질시켜버린 수많은 교인들은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이고 있다.(딤후 4:3)

이제 하나님은 자아실현의 도구로 이용당하고 있다. 결국 이 땅의 교회는 비신자들의 눈에 이미 패배한 것으로 보인다.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상실한 기독교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선언한다.

이 땅의 기독교 역사에서 안티 기독교 세력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또 있었던가. 교회가 무엇을 주장할 때 비신자들이 지금처럼 냉소적으로 반응했던 때가 또 있었던가. 교회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권력 지향적이고 재물 지향적이라는 비판을 이렇게 많이 들었던 때가 또 있었던가.

이 땅의 사람들의 눈에 기독교는 죽은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의 신 여호와는 그 세력을 다한 것으로 간주한다. 자기 백성들 하나 제대로 변화시키지 못하는 신은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결국 다른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인해 하나님을 패배한 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5.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 누군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자는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진화론자가 아니다. 기독교를 탄압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도 아니다. 하늘을 향해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는 무신론자도 아니다. 오직 자기 욕심 때문에 여호와를 이용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저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로 그들이다.

삶의 의미를 상실한 죄의 노예로 있던 자들, 적신으로 와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않는 것을 당연히 여겼던 자들, 그저 이름을 불러주셔서 나의 존재감을 회복시켜주신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해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라도 그를 따르겠다고 굳게 결심했던 자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이익 때문에 하나님의 뜻 따르기를 거부하고 그의 이름을 지닌 백성답게 행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자들이다. 이대로 기독교는 무너질 것인가? 교회는 신뢰와 권위를 상실하고 끝없이 추락할 것인가? 여호와의 이름은 땅에 짓밟혀 계속해서 멸시의 대상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인가?


6.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증명한다

블레셋이 승리에 도취되어 있을 때 여호와는 자신이 여전히 참된 신이라는 것을 드러내신다. 여호와의 법궤 앞에서 블레셋의 신 다곤은 엎드러진다. 머리와 팔목이 부러진 채로.(5:4)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악성 종양이 무섭게 임한다.(5:6)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의 신이 우리와 우리의 신 다곤을 무섭게 내리”친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5:7) 여호와는 결코 무너지지 않으신다.

그를 무시했던 자기 백성이 패망한다 할지라도, 그래서 그의 이름이 이방인 가운데서 잠시 멸시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다곤의 승리와 여호와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늙은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시고,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광야 40년 동안 먹이시고, 가나안을 유산으로 주신 그 여호와는 지금도 동일한 분이시다. 비록 자기 백성의 실패로 인해 여호와의 이름이 모욕을 당한다고 해도 그는 스스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실 것이다. 자신만이 유일하고 참된 신이라는 것을 다시 만천하에 공포할 것이다. 자신의 법대로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라는 것을 만백성 앞에 드러낼 것이다.

7. 새로운 사람을 통하여

그러나 이 과업을 위해 여호와는 새로운 사람을 세울 것이다. 여호와를 멸시한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은 자는 더 이상 그의 이름을 대표하기에 합당하지 않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과 나의 생각을 따라서 행동하는 충실한 제사장”을 세우기로 작정하셨다.(2:35)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지 않고, 욕망과 자랑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심지어 삶과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겸손히 여호와를 따르기로 작정한 자를 세우기로 하셨다. 하나님은 이 사람을 통하여 다시금 자신의 이름을 만천하에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나타난 여호와의 영광을 보고 온 천하의 사람들이 “아, 여호와는 여전히 살아 계시구나”라고 인정하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될 것이다. (마 5:16)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주장하지만 자신의 온갖 욕심들에 끌려서 여호와의 이름을 무너뜨리는 자들이 있다. 그들로 인해 여호와는 잠시 멸시당하고, 능욕당하고, 무기력한 신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여호와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떨칠 것이다. 자신만이 참된 신이심을 만천하에 드러낼 것이다. 결국 능욕당하는 자는 여호와의 이름을 멸시한 사람들이다.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그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자들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대신하여 자기의 이름을 존중할 자를 세우실 것이다.

“내가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만 존중하고, 나를 경멸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다.”(2:30)

8. 우리의 소망

우리의 소망은 이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이 멸시를 당하고 있는 세상에서 다시금 만천하에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들이 세워지는 것. 지금 어딘가에서 새싹을 돋우기 위해 썩어지고 있는 밀알과 같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래서 이들로 인해 다시금 여호와의 아름다운 이름이 세상에 높이 울려 퍼지게 되는 것. 혹시 그 썩어지는 씨앗이 나와 우리가 될 수 있을까? 간절한 마음으로 꿈을 꾸어본다.

김형원 목사 / 하.나.의.교회, <복음과상황> 편집위원장
* 이 글은 <복음과상황> '복상 설교' 코너에 실려 있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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