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은 구약·유대교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요한복음은 구약·유대교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 김회권
  • 승인 2007.07.0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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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기독교 및 성서 이해 담론 자세히 읽기 5

<요한복음 강해>의 주지(主旨)에 대한 논평

<요한복음 강해>에서 도올은 크게 보아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철저한 헬라철학적인 개념으로 요한복음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요한복음서는 공관복음서와는 완전히 다른 예수를 전한다는 것이다. 도올의 <요한복음 강해>는 불트만의 실존주의적 헬라철학적 요한복음 이해와 다드(C. H. Dodd)의 현재화된 종말론 관점의 요한복음 이해와 바레트(Barrett)의 요한복음 배경사 이해와 카아슨(Carson)의 요한복음 주석서에 나타난 요한복음 이해에 자주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는 도올의 독창적인 요한복음 이해가 드러난다. 중간 중간에 개역성경의 인쇄상의 오식이나 오자를 발견하는 안목도 귀중하다.

<요한복음 강해>는 요한복음은 철저하게 구약과 단절된 복음서이며 헬라적 교양을 가진 지식인 대중(아마도 에베소 지역의 대중)에게 처음 읽혀진 복음서였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요한복음은 철저하게 중기 플라톤적 교양을 가진 대중들에게 선포된 복음이기에, 당시의 헬라철학적인 세계관인 영지주의를 모르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복음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도올은 요한복음과 구약적-유대교적 배경을 분리시키고, 요한복음을 철저하게 피타고라스·헤라클레이토스·파르메니데스·플라톤·플로티누스·스토아 철학의 로고스 철학의 매트릭스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요한복음 이해는 이미 낡은 요한복음 이해다. 요한복음은 구약의 창조신학, 중세의 유대교의 카발라 신학(고난 받은 신), 지혜신학, 만물을 창조하시는 시편과 잠언 등의 말씀 신학 등의 빛 아래서 얼마든지 이해될 수 있고 이해되어야 한다(마틴 헹엘, 피터 슈틀마허, 김세윤 등). 요한복음은 구약과 유대교적인 맥락에 훨씬 더 자주 호소하여야 더 온전히 해석되는 책이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을 무리하게 단절시키고, 요한복음과 구약-유대교적 배경을 분리시키는 것은 치우친 태도다.

둘째, 요한복음의 종말론은 ‘지금 여기 믿는 결단’을 촉구하는 케리그마적 수사법의 일부이지 결코 공관복음서의 묵시론적 재림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요한복음은 이미 유포되고 있는 공관복음서를 대체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보완하려는 의도로 저작되었다(디아테사론의 원리). 초대교회의 정경 결집자들이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를 나란히 신약 정경 속에 묶어두었다는 것은 그들이 요한복음서와 공관복음서의 긴장어린 병립이나 대화적 구조가 성립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서도 다가올 심판을 분명히 말한다(3:16-36). 성령강림으로 묵시론적인 재림 열망을 해소시킨다기보다는 완화시키고 재림을 전제하면서 그리고 재림을 기다리면서 지금 이 땅에서 믿는 자들의 사랑과 우애 속에서 세상을 이길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14:1-4; 15:1-7).

우리는 요한복음에 대한 도올의 존숭이 다른 정경들에 대한 배척과 모멸로 귀결되기보다는 정경적 책들 사이에 있는 대화적이고 긴장 유발적이면서 동시에 조정주의적 포용성과 개방성에 대한 감사로 승화되는 것을 기대한다.

김회권 / 숭실대 인문대 기독교학과 교수
* 이 글은 제1회 인문과학연구소 포럼, '회권, 도올을 깨다'(2007년 4월 24일)에서 저자가 발제한 논문으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몇 차례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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