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계획 없는 교회의 평신도 고충
예산 계획 없는 교회의 평신도 고충
  • 최호윤
  • 승인 2007.07.23 2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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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faithful) 관리뿐 아니라 지혜로운(wise) 관리도 중요

1) 2006년이 저물어가면서 갑자기 교회 내부에 선교 바람이 불었다. 겨울에 방글라데시·중국·태국·필리핀을 향한 선교팀이 구성되었다. 겨울방학 기간에 선교지를 다녀올 계획이다. 갑자기 만들어진 선교 여행으로 모자라는 경비를 교인들이 개별적으로 후원할 수도 있었지만, 전교인이 동참한다는 뜻으로 주일에 특별헌금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특별헌금에 동참했다.

2) 다음 해 4월, 러시아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님이 교회를 방문했고, 목사님은 방문하신 선교사님을 위해 특별헌금을 하자고 했다. 내가 해외로 나가서 선교하지는 못하지만 후원으로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겨울에 이어 다시 특별헌금을 하려니 조금은 부담이 된다.

3) 한여름의 더위를 앞둔 6월, 수요예배 후 에어컨이 갑자기 고장이 났다. 주일 오후에 급히 제직들이 모였지만 쳇바퀴 돌아가듯 매주 돌아가는 교회 재정 사정에 아무리 고민을 해도 급히 700만 원이라는 에어컨 교체 비용을 만들어낼 방안이 없었다.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다음 주 주일에 에어컨 구입을 위한 특별헌금을 또 다시 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장 집사의 마음에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교회에는 청년 대학생들이 많고 경제 생활을 하는 성인이 많지 않다. 필요한 금액에 제직들의 경제 사정을 고려하여 인원수를 따져 계산하니 최소한 1000불은 장 집사가 부담하여야 할 듯하다. 빠듯한 월급이지만 계획을 세워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며 헌금하고 생활하는데 특별헌금을 한 번도 아니고 올해 들어 벌써 3번째니 어느 지출을 줄여서 헌금할까 막막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특별헌금에 동참을 안 할 수도 없고….

장 집사가 걱정하는 것은 이번 특별헌금이 아니라,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특별헌금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가정 살림을 꾸리냐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의 기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재정을 운용해야 한다”는 목사님의 말씀 때문에 교회 내부에서 재정에 대하여 같이 의논하는 절차도 없고, 계획도 세우지도 않는다. 교회의 재정 사용에 대하여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잘못 얘기하면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라 평가될까 걱정되고, 앞으로도 개선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만 더해간다. 또 교회의 사역을 위하여 기도하는데 앞으로 교회가 어디에 재정을 사용할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으니 교회 사역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도 없다는 것이 더 안타깝다.

하나님은 이 땅을 창조하신 후 우리에게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고, 많은 성경구절들은 이 세상을 청지기 관점에서의 관리(management)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는 복음의 역할이 중요한 것 이상으로 회복된 백성들에게 부여 받은 선한 청지기의 입장에서 관리할 책임이 중요하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이다. (딛 1:7) 청지기는 지혜 있어야 하고(wise) 진실해야(faithful) 하며(눅 12:42), 칭찬을 받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다. 이런 이들에게는 더 많은 (관리할) 일들이 맡겨졌다.(마 25:21, 23)

우리의 재정 관리가 ‘하나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럼 없이 깨끗하게 관리했다’는 관점에서 만족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진실한(faithful) 측면만 강조하였지, 지혜로운(wise) 차원의 중요성을 놓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청지기 입장에서 맡겨 주신 재정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방법을 충분히 고민하고 찾아야만 한다. 그것이 교회 차원이든 개인 차원이든.

교회가 예산 세우면 좋은 이유

교회가 예산을 세우면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지혜로운 관리가 가능해지며, 교회가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첫째, 예산을 결정하면 이는 교회가 한정된 재정을 배분하는 원칙을 정하는 것이 되며, 이 원칙은 교회가 재정을 사용하는 우선순위를 매기는 데 기준이 된다. 즉 교회가 할 많은 일들 중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 순서에 따라 재정을 배분할 수 있다. 예산이 없으면 재정 사용의 기준이 없으므로 누군가 급하다고 할 때, 또는 특정인의 결정에 따라 현명하지 못한 재정 집행이 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예산이 있음으로 이러한 위험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둘째, 예산을 세우면 규모 있는 재정 운영으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 가능하다. 교회가 교회의 자원을 잘 관리하였다면 장 집사와 같은 경우, 에어컨을 미리 수리하든가 구입한 지 오래되었다면 새로이 교체할 계획을 신년도 예산에 미리 반영해서 이런 어려움이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다. 또 선교헌금으로 미리 준비해 두었다면 갑작스런 선교 특별헌금도 발생하지 않는다. 바울은 “헌금을 미리 준비하여야 참 연보이고 억지가 아니어야 한다”(고후 9:5)고 이야기하고 있다.    

   
 
  ▲ 최호윤 회계사.  
 
셋째, 내년에 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같이 고민해야만 제대로 된 예산을 세울 수 있다. 따라서 예산을 세우는 과정을 통해 성도들이 교회 방향성에 대하여 같이 고민하면서 의견을 조정하고 통합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교회는 진정한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가는 것이다.

넷째, 예산이 설정되고 공동의회가 이를 승인하면 예산에 교회 공동체의 비전과 방향성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공동의회에서 예산을 승인하는 것은 단순히 다수결로 찬성과 반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년에 우리 교회가 이렇게 나가겠습니다”하는 결단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예산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조정과 통합의 과정을 거치고 이러한 결단의 시간을 가지게 되면 교인들은 교회가 가는 방향에 대하여 알고 기도하게 된다. 교회에 맡겨주신 하나님나라를 같이 만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예산 수립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예산을 세우고 이를 통하여 재정을 진실하고 지혜롭게 관리하는 과정을 교인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성도들이 개인 차원의 재정 관리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최호윤 /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회계사
* 이 글은 한국 <뉴스앤조이>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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