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서 실패한 선교
한국 땅에서 실패한 선교
  • 김만종
  • 승인 2007.07.28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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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피랍에 대한 악플 넘쳐…한국 교회, 오만 버리고 회개해야

아프간 인질 소식이 들려온 지 여러 날이 지났다. 벌써 여러 달은 지난 것 같이 까마득하고 길게 느껴진다. 인질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두 가지 마음이 가슴을 짓눌렀다. 하나는 무슨 이유든 인질들이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었고, 또 하나는 기독교에 대한 깊은 불신을 마주 대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한국의 기독교에 있다. 인질로 잡힌 이들이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뭇매를 맞지도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본질은 기독교에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번 일로 한국 기독교가 얼마나 많은 적을 만들어 냈는지 실감했다. 이번 일에 대한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비판은 기독교에 대해 어느 정도 중립적인 가치판단을 하고 있다는 생각되는 내게조차 너무 힘들고 아픈 것이었다. 정말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한국 기독교는 그렇게 사명을 가지고 뛰어 들었던 선교적 측면에서 실패했다. 세계 최대의 선교사 파송국인 한국이 한국 땅에서 그리고 그들의 선교 터전에서 실패했다. 수많은 반대세력을 만들었고 기독교를 반대하는 이들이 기독교에 대해 긍정적 생각을 갖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교회는 대형화를 추구하면서 이웃을 잃어버렸다. 이웃이 없이도 존립에 문제가 없는 권력이 되어버렸다. 기독교의 사학법 투쟁은 권력이 되어 버린 교회의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기독교는 선교 측면에서 실패했다

교회 신도들의 숫자가 줄고 있다. 환경적인 탓으로 돌렸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먹고 살만 하고 여행도 많이 하니 당연히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교회에 등 돌린 이가 늘어나는 것을 교회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실패를 자인해야 한다. 이 실패를 자인하지 않는 한 한국 기독교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패를 자인하지 않는 이상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교를 목 놓아 부르짖던 한국의 기독교는 한국 땅에서 실패했다.

눈을 돌려보자. 1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외국 선교는 어떠한가? 이 또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정말 어려운 지역에서 그 지역을 사랑하고 섬기며 헌신하는 여러 명의 선교사를 알고 있다. 그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교 한국은 허울로만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나 역시 선교사를 돕기 위해 선교지 하나를 찾자면 정말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의 불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선교는 기독교의 지상명령이다. 선교하는 것 자체를 가지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그 방법은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의 선교는 개교회 중심이다. 개교회가 선교지를 선정하고 선교사를 파송한다. 그러니 어떤 선교지에는 주민보다 선교사가 더 많다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통합하고 엮어서 재배치할 만한 통합기관이 없다. 당연히 현지에서는 서로 간의 알력이 생기기도 하고, 다 같이 모여 허송세월을 보내기도 한다.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이다.

선교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 교회는 선교를 해야 하고, 그러니 내보내는 것이 옳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현 실정이다. 교회도 선교사 한 명쯤은 내 보내거나 돕고 있어야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다. 선교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바탕으로 적절한 방법을 찾아 머리를 맞대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떤 지역에 선교사로 떠나면서도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제대로 익히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현지에서 겸손하게 배우고 익히는 것이 필요하건만 실적이 필요한 교회로서는 당장의 활동을 요구하기 십상이다. 당연히 무리가 따른다.

이쯤 되니 선교를 위한 전략이나 통제 같은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개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어떻게 그 나라의 여러 상황을 종합하여 전략을 세우고 대처해 나갈 것인가는 너무 분명하다. 1만 명의 선교사가 각자 자기만의 선교를 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쉽게 이해가 갈 수 있을 것이다. 개교회의 선교는 교단이 확실히 통합해 나가고, 또 전체 교단을 엮는 선교위원회가 없다면 영원히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그러니 한마디로 대책이 없다.

오만함 회개하고 목적 없이 이웃에게 다가가라

이쯤되니 총체적인 난국이다. 해결책이 있을까 생각하니 막막하기도 하다. 지금 현실로 불가능할 수도 있는 몇 가지 생각들이 어지럽게 떠오른다.

한국 교회의 오만을 버려야 한다. 지금 한국 교회는 너무 오만하다. 세계를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 땅 조차도 품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 이것이 첫 디딤이 될 것이다.

회개해야 한다. 먼저 스스로를 회개해야 한다. 매주 신도들에게 요구하던 한 주간의 회개를 이제 교회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 교회가 주위에 상처준 일은 없는지, 교회로 인하여 상실감에 빠진 이들은 없는지 매일 돌아보아야 한다. 작은 소자 하나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교회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버리고 또 버림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여기실지 돌아보아야 한다.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들이 가진 상실감이 어디에서 왔는지, 사람의 목숨을 놓고도 잔인하게 말할 수 있는 그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쌓인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겸허하게 사과해야 한다. 이것은 무조건 잘못한 것이다.

한국의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에게 버림받았다. 심각한 문제다. 국민들이 전부 못돼먹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잘못은 우리에게 있다. 이제 그 이웃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연습을 하자. 어떤 목적이 아니라 정말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너무 멀리 와버려서 돌아가는 길이 멀지도 모른다. 그래도 거기에서 시작하는 것이 옳다. 이웃들을 먼저 정성으로 섬겨야 한다.

해외 선교는 전체를 아우르는 전략과 계획이 있어야 한다. 전부가 안 된다면 최소한 각 교단만이라도 내부를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적 우월주의는 애초에 버려야 한다. 그들을 섬기지 않고 내가 가진 문화로 그들을 억누를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버려야 한다. 제대로 연구하고 철저히 준비해서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헌신적으로 그들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해야 한다. 당연히 신도나 선교사들에게 순교를 요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말 순교를 해야 할 절박함이 있다면 그건 개인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

한 명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22명의 젊은이들이 인질로 잡혀 있다. 한국 교회의 잘못으로 그 젊은이들이 뭇매를 맞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 그들의 지금 처한 상황과 심정을 같이 느껴볼라치면 더욱 안타깝다. 젊은이들이 살아 돌아오길 기도한다. 처절한 반성은 한국 교회가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 교회가 이런 반성을 끌어낼 동력이 없다는 것이 글쓰기를 머뭇거리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다.

김만종 / 목사·한독선교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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