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람하는 ‘아멘’…'아멘의 삶'은 없다
범람하는 ‘아멘’…'아멘의 삶'은 없다
  • 김동환
  • 승인 2007.08.0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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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탄한 ‘아멘’, 일상 대화의 후렴구 남용

   
 
  ▲ 어쩌면 우리 일생에 단 한 번의 진실한 아멘도 기대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멘' 앞에서 두려워하고 겸손할 수밖에 없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가장 가치 있는 단어들 중에 '아멘'(Amen)이라는 말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진실함' '충실함' '그대로 될 줄로 믿음' 등의 의미를 가진 '아멘'이라는 이 한마디는 기독교적 유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의 진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셨다. 예를 들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된 용어가 바로 이 '아멘'이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이 용어를 통해 주님을 향한 자신들의 믿음을 표현하였으며, 수많은 성도들은 이 '아멘' 한 마디를 지키기 위해 박해자들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다.

그런데 지금 이토록 소중한 기독교적 유산이 교회에서는 일상 대화의 후렴구처럼 남용되고 있으니 매우 염려스럽다. 아무 때나 아무 장소에서나 '아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회 장소에서는 아예 '아멘'을 무의식 상태에서도 내어 뱉을 수 있을 정도로 강요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한다.

어떤 몰지각한 집회 인도자는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움직일 때마다 교인들에게 '아멘'을 복창하라고 하니 기가 막혀서 아예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얼마나 교인들이 이 '아멘 후렴구'에 익숙해져 있는지 마치 자동판매기에 동전을 집어넣으면 필요한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아멘'이 쏟아져 나온다. 이쯤 되니 아멘 소리가 적거나 약한 교인은 은혜 없는 사람이요 냉랭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물론 아멘이 흔하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아멘이라는 말에 걸맞게 진실성과 충실성, 믿음이 뒷받침 된다면야 아멘을 백 번 외친들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문제는 수 없이 반복되는 아멘과는 달리 우리 삶의 태도는 하나님 앞에 진실하지도 않고 충실하지도 않으며 믿음도 없다는 데 있다. 아멘의 외침이 자동판매기처럼 자동화되고 대량화되고 있는 그 현장에 진정한 '아멘의 삶'이 고갈되고 있으니 비극적인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아멘'을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진실성과 신실성을 고백하는 하나의 '자기 맹세의 과정'이다. 우리는 아멘을 허탄하게 반복함으로써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수없이 많은 자기 맹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지키지 못할 거짓맹세를 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런 이들을 향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며 진노의 눈길을 보내신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위기 19:12). 

우리는 '아멘'을 남용함으로써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을 그만해야 한다. 아멘은 필요에 따라 자동판매기에서 빼 쓸 수 있는 그런 하찮은 것이 아니다. '아멘'이라는 고백에는 생사를 거는 자기 결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 일생에 단 한 번의 진실한 아멘도 기대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멘' 앞에서 두려워하고 겸손할 수밖에 없다.

'아멘'이라는 용어를 접하면서 새삼 이런 기도를 하게 된다.
"아멘이신 하나님, 제 평생에 단 한번이라도 진실한 아멘을 고백하게 하소서."

김동환 / 한영선교센타 대표·영국감리교교구 목사

* 이 글은 한국 <뉴스앤조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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