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상이 건넨 성경 학교 후원금
마약상이 건넨 성경 학교 후원금
  • 박지호
  • 승인 2007.08.20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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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 빈민가 뒷골목에서 맛본 하나님나라

   
 
  ▲ 장난꾸러기 머리스와 뉴저지 초대교회 자원봉사자 크리스티.  
 
하나님나라가 이런 모습일까. 필라델피아 빈민가 아이들을 위한 여름 캠프(Uber Street Summer Camp) 마지막 날. 캠프가 열렸던 Uber street을 동네 사람들과 한인 교회 자원봉사자들이 가득 메웠다. 흑인 빈민가 뒷골목에서 피부색도, 자라온 환경도 전혀 다른 사람들끼리 음식을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가난과 마약으로 찌든 동네에 웃음과 기쁨이 넘쳐났다.

3주간의 여름 캠프를 마치는 8월 17일 저녁 동네잔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Simple way'의 쉐인 클레이본 씨도 방문해 마술쇼를 선보였고 아이들은 그의 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동네 주민들은 어느새 이웃이 되어 버린 한인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손수 마련한 음식을 내놨고, 뉴저지 초대교회(담임목사 이재훈) 교인들도 푸짐하게 준비해온 한국 음식을 동네 사람들과 함께 나눴다.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음대 한국인 유학생들까지 합류해 재즈 연주로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식사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국 사람들이 연주하는 재즈 연주를 들으며 흑인 전통 음식인 소울 푸드와 김치를 함께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눈과 귀와 입이 즐거운 날이었다.

   
 
  ▲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음대 한국인 유학생들까지 합류해 재즈 연주로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 캠프 마지막 열린 동네잔치에는 'Simple way'의 쉐인 클레이본 씨도 방문해 아이들을 위해 마술쇼를 선보였다.  
 
“아이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일입니다”

동네 주민들은 그동안 캠프를 진행한 이태후 목사와 한인 교회 자원봉사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두 명의 손녀를 둔 커티스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이 동네에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처음이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며 기자를 꼭 껴안아주기도 했다.

앤 태너 할머니는 필라델피아 지역신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인종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그들을(한인 자원봉사자들)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 줄넘기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 캠프를 마치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길거리를 청소하는 아이들.  
 
작년 캠프가 지역사회의 좋은 반응을 얻었기에 올해는 훨씬 수월하게 캠프를 마칠 수 있었지만 어려움도 없진 않았다. 결손 가정이 워낙 많은 탓에 정서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캠프를 많이 찾았다. 그래서 이들의 왜곡된 애정 표현이 자원봉사자들을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이 캠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 아이들의 즐거운 장난은 끊이질 않았다.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곤 그들을 이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크리스(가명)의 아버지는 9번이나 교도소 신세를 졌다.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자해하고 아버지를 범인으로 몰았기 때문이다. 형들 역시 이런 저런 죄목으로 모두 감옥에 들어가 있다. 크리스는 다음은 자기 차례라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마지막 날 저녁 가족들과 함께 잔치에 참석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난 부모님이 없으니까 안 와도 되겠군. 상관없어”라고 중얼거리던 매튜(가명)의 말을 들은 자원봉사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 자원봉사자들은 앞으로 틈틈이 찾아와 아이들의 생일을 챙겨주고 계속 교제하면서 관계의 끈을 이어갈 생각이다. 이번 캠프가 아이들에게뿐 아니라 한인 교회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마약상에게 받은 성경학교 후원금

사랑은 무력보다 강한 법이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캠프가 열리는 동안 Uber street은 동네에서 가장 즐겁고 안전한 곳이었다. 노스 센터럴의 마약 거래자들은 마약 단속반도 어쩌지 못하지만 캠프가 열리는 동안은 자기들이 알아서 골목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돈까지 모아서 캠프를 진행하는 이태후 목사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마약상이 목사에게 후원금을 전달한 것이다.

작년 캠프 이후 이태후 목사와 동네 사람들 사이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 목사가 지난 4년 동안 그 동네에 살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들기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3주 동안 아이들과 함께 뒹굴었더니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작년 여름 캠프 이후부터 동네에 웬만한 사람들은 이 목사를 보고 손을 흔들며 인사하곤 한다.

동양인이라곤 구멍가게 주인 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이 동네에서 이 목사는 ‘Pastor Lee'로 불린다. 길에서 만나면 스스럼없이 자녀들 이야기를 하면서 기도 부탁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통해 그들에게 한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 지난 2004년 필라델피아 경찰이 마약 사범을 대대적으로 검거했다. 당시 지역 신문에 실린 사진은 캠프가 진행된 Uber street에서 불과 서너 블럭 떨어진 곳이다.  
 
지역사회도 관심…‘방과 후 학교’로 연결되길

캠프 기간 중에 필라델피아 지역 신문인 <The Philadelphia Inquirer>가 행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취재를 왔던 사진기자는 “취재 다니면서 여간해선 감동을 안 받는데 이번엔 가슴이 뭉클했다”는 말도 전했다. 기사가 나가자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대규모 실내 체육관인 'Wachovia center' 세일즈 메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기사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며 아이들에게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모금을 해서라도 돕고 싶다고 했다. 또 'United way'라는 비영리단체에서도 관심을 보이면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부분을 모색해보자고 제안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교회들은 뉴욕과 뉴저지에 있는 한인 교회들이다. 앞으로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다른 한인 교회들과도 함께 보조를 맞춰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여름 캠프 이후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돌보기 위해서 지역 한인 교회들의 인적·물적 자원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 놀다가 다친 아이들을 치료해주고 있는 이태후 목사.  
 
이 목사는 여름 캠프가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특별활동 예산이 전혀 편성되어 있지 않은 빈민가 학교의 상황을 고려해 아이들에게 미술·음악이나 운동과 같은 과외 수업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빈민가에서 자라는 남자 아이들이 마약이나 조직범죄에 연루되기 시작하는 나이는 9~13세 사이다. 그 시기에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거나 학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대부분 마약이나 갱단에 연루되고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총기 사고로 죽거나 감옥에서 형기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작년에 여름 캠프 이후에 몇몇 남자 아이들이 벌써 그런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동네 주민들도 이 목사가 진행하는 방과 후 학교에는 아이들을 보내겠노라고 말하고 함께 일을 꾸려가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있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 목사는 서두르지 않는다. 일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삶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기 위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투사가 되기 위해 빈민가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단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뿐”이라며 “고생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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