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전도사로 일하고 있을 때 교회 내에 있는 방에서 살았습니다. 커다란 건물 안에 혼자 살려니 쓸쓸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마음껏 책을 읽고 기도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가끔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제 방 저편에 있는 교회 식당에서 의자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워낙 조용한 시간이라 그 소리는 아주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잠시 후에는 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아마 누군가를 찾는 듯 했습니다.

옷을 입고 식당 쪽으로 가보니, 어둠 속에서 한 아저씨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불을 켜고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웬 청년 하나가 택시를 타고 교회까지 와서는 돈 가지고 나온다고 하더니 사라져버렸다는 것입니다. 대충 감을 잡은 저는 택시비를 대신 지불해주었습니다.

택시 기사가 간 후 식당 탁자 밑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나와도 괜찮다고 했더니 조심스럽게 나왔습니다. 그는 교회 신자는 아니고 가끔 교회에 무언가를 얻으러 오는 청년이었는데, 몸도 불편하고 정신도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늦은 밤이라 그냥 내보낼 수 없었던 저는 그 청년을 제 방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저녁을 먹었냐고 물으니 아직 못 먹었다고 했습니다. 치킨 집에서 통닭 한 마리를 주문해 그 청년과 함께 먹었습니다. 손이 지저분해서 씻고 와서 먹으라고 했는데 싫다고 해서 놔두었지만 더러운 손이 통닭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닐 때마다 마음이 좀 불편했습니다.

아무튼 맛있게 먹은 후 이부자리를 펴고 청년과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옆에 누워있어야 할 그 청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 부지런하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이부자리를 개고 방 정리를 하면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방에 두 가지 변화가 생겼는데 하나는 제 단벌 양복 상의가 사라진 것입니다. 집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는지라 아껴 입는 옷이었는데 글쎄 그 청년이 입고 가버린 것입니다. 양복 주머니에 있는 돈도 양복과 함께 가출을 해버렸기 때문에 순간 얼마나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났는지 모릅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책꽂이 쪽에 검은 봉지가 하나 걸려있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제가 걸어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 하고 들어보았는데 그 속에 물이 담겨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오줌이었습니다. 밤에 청년이 검은 봉지에 소변을 보고서 책꽂이에 걸어놓고 나간 것입니다. 그 봉지에서 조금씩 흘러내린 소변이 바닥에 고여 지도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순간 저는 너무 기분이 언짢아져서 욕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택시비 내주고, 통닭 사주고, 잠까지 재워주었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 겨우 남겨놓은 것은 고맙단 인사가 아니고 오줌뿐이야. 뭐 이런 배은망덕한 놈이 다 있어. 다음에 내 손에 걸리면 그냥 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앞으로 이런 놈들 다신 재워주나 봐라.”

그때였습니다.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어떤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얘야 너도 마찬가지 아니더냐. 사랑받고 은혜를 입고 살아가면서도 그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기 보다는 지저분한 것을 남기는 것이 너의 삶이 아니더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잠시 침묵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그 내면의 음성이 옳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들려왔던 내면의 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고 믿습니다. 작은 선행을 베푼 후 생색내는 저의 얄팍한 속내를 너무나 잘 드러내주었으니까요. 저의 위선과 이중성을 드러낸 그 음성 때문에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귀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제 양복을 가져가고 소변을 남긴 그 청년은 예수님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희환 목사 / 금천 참사랑교회, <조은신문> 기자

* 이 글은 한국 <뉴스앤조이>에도 실린 글입니다.

안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