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듣는 목사들의 즐거움
설교 듣는 목사들의 즐거움
  • 박지호
  • 승인 2007.09.14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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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클리닉 워크숍에서 살펴본 목회자들의 설교 유형 분석

냉철한 비판과 따듯한 유쾌함이 공존할 수 있을까. 이번 설교 클리닉 워크숍은 그런 시간이었다. 참석자 별로 10분씩 돌아가면서 설교하고, 끝나면 강사인 이동원 목사(한국 지구촌교회)를 비롯해 나머지 25명의 목회자들이 비평하는 방식으로 워크숍은 진행됐다. 좋은 설교는 으레 그러려니 하지만 조금이라도 부족한 설교는 금방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설교 실습이 끝나기 무섭게 이동원 목사와 동료 목사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고, 설교자는 진땀을 흘려야 했다.

   
 
  ▲ 동료 목회자들의 지적이 허튼 소리가 아니라는 것은 본인이 더 잘 안다. 간혹 납득하기 힘든 지적도 나왔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교인도 있다니까”라는 한마디에 모두들 웃어넘겼다.  
 
“목소리는 참 좋은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교회에 문제가 있나요? 특정 대상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결론이 너무 일찍 나와서 김이 빠지네요.”
“설교가 꼭 잔소리처럼 들리네요. 왜 그럴까요?”
“히딩크만 남고 예수는 없어요.”
(히딩크 관련 비유가 나왔었음)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강단에 서온 이들의 비평은 예리했다. 구석구석 집요하게 파고드는 비판이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겠나. 하지만 동료 목사들의 지적이 허튼 소리가 아니라는 것은 본인이 더 잘 알기에 수긍하지 않을 수도 없다. 간혹 납득하기 힘든 지적도 나왔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교인도 있다니까”라는 한마디에 모두들 웃어넘겼다. 이 때 만큼은 목회자들이 교인들의 자리로 돌아가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워크숍에서 목회자들이 자주 지적받았던 설교 습관을 모아 이름을 붙여봤다. 인물별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여러 명에게 자주 나타났던 것을 유형별로 모은 것이다. 

   
 
  ▲ 설교자마다 일일이 강평을 하고 있는 이동원 목사.  
 
애매모호 형

논지가 없거나 불분명한 설교를 말한다. 쉽게 말해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는 경우다. 또는 애초에 제시했던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거나 주제가 분명치 않으면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동원 목사는 “한 가지 주제를 정한 뒤 설교를 마칠 때까지 초지일관 물고 늘어지라”고 충고했다. 또 “설교의 아웃라인을 설정할 때 자신이 던진 Transfer Question(전환 질문 : 서론에서 본론으로 넘어갈 때 주제를 이끌어내기 위해 던지는 질문)을 계속 염두에 두면서 본문을 구성하라”고 말했다.

아찔 형

성경 전체 혹은 본문의 맥락과 무관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경우다. 심각하게 위험한 경우는 없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과도하게 본문을 끼워 맞추다보니 무리한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 목사는 이런 경우 “목회자들이 성경을 습관적으로나 직관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며, “무리한 본문 해석을 피하기 위해서 역사적 맥락이나 문맥 속에서 의미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용두사미 형

결론이 빈약한 경우다. 빼어난 언어 구사력과 정확한 발음. 그리고 논리적인 설교 본문 구성으로 청중들의 주의를 끌었지만, ‘그냥 열심히 하라’는 식의 싱거운 마무리다. 서론이 너무 길고 자세한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혹은 서두에 청중들의 관심을 끌만한 흥미로운 주제를 던졌지만, 너무 버거워 설교자가 해답을 주지 못하고 대충 넘어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목사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되 구체적이면서 실천적인 적용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서론에서 책임지지 못할 약속은 하면 안 된다며, 설교자가 해답을 줄 수 있는 범위에서 TQ를 던지고 주제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학자 형

지나치게 설교가 어려운 경우다. 설교 내용의 깊이나 완성도 면에서 뛰어나지만 목회자들이나 이해할 수 있을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을 자주 언급하는 식이다. 이런 경우는 문장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는 특징을 보이기도 했다. 용어도 어렵고 문장도 길어져 의미 전달이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 목사는 “처음 교회 나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가급적 종교적인 언어보다 대중적인 언어로 알기 쉽게 전달하려는 설교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청중들은 오히려 단순하고 쉬운 이야기에 감동을 받는다”며, “의도적으로 말을 간단하고 쉽게 하는 연습을 하라”고 조언했다.

잔소리 형

성도들을 향해서 야단치는 느낌을 주는 설교를 말한다. 나는 잘 하고 있는데 왜 못하냐고 몰아붙이는 식이다. 또 일부 성도들을 지칭하거나 특정 교인들이 들으면 상처받을 수 있는 발언들도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이 목사는 “설교는 청중 전체를 위하면서도 소외된 개개인을 고려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며, “목회자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설교를 사용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경계했다.

이 외에도 자신 없는 목소리나 어투의 ‘소심 형’이나, 딱딱한 표정이나 몸짓이 거의 없는 ‘마네킹 형’, 그리고 결론을 너무 일찍 말해버리는 ‘성급 형’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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