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에서 벌어진 일
아프간에서 벌어진 일
  • 양국주
  • 승인 2007.09.1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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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주의 아프간 이야기 (1)

   
 
  ▲ 8월31일 오후 3시 건조한 암갈색의 햇살로 눈부신 카불에 내렸다.  
 
아침 공항 주변의 미군 부대에 대한 자살 공격으로 10명이 죽어서인지 어수선한 분위기가 전쟁을 치루는 나라답게 을씨년스러웠다. 필자가 입국 검사를 받는 시각에 19명의 인질들은 비좁은 비행장 한편에 세워진 유엔 특별 비행기에 올랐다. 하루에 두 번씩 두바이로 떠나는 민간 여객기 대신 유엔 특별기에는 한국에서 긴급히 날라 온 특별 취재진 7명도 동행하고 있었다. 김경자, 김지나 씨의 국군병원 인터뷰에 알자지라 방송만을 허용해 빈축을 샀던 정부가 기자들을 불러 카불 최고의 호텔 세레나에 인질들과 함께 머물고 동행 취재를 허용하는 파격적인 선심을 쓴 것은 홍보효과를 노린 흥행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필자가 카불에 도착하던 날이 42일 간에 걸친 인질 억류 사태가 마무리되는 때여서 적이 마음 편한 여행이 되었다. 어수선한 공항 분위기와는 달리 정리 작업에 들어간 국정원, 국방부 파견의 특전사 요원 등을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인질 석방으로 흥분이 한층 고조되었던 협상단을 격려하기 위해 먼 길까지 찾아와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고 두 번째 큰일을 치러낸 개선장군 같은 모습이었다. 세상만사 일 벌리는 사람 있고 뒤치다꺼리 하는 사람 따로 있다더니 차려진 양탄자에 책상 다리로 걸터앉아 생색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인질 사태로 그동안 아프간에서 고군분투하던 장기 선교사와 비정부 기구 요원들의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그들마저 역적으로 몰려 강제 철수당한 사실이 애석하기만 한 것은 웬일일까?

   
 
  ▲ 피랍자들이 타고 떠난 유엔기.  
 
한국 인질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대책을 숙의하던 외국인 엔지오 스태프들을 만났다. 인명의 소중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연한 것이지만 아프간에 장기적으로 봉사하러 온 이들의 눈에는 한국 정부의 이기적이고 어리석기만 한 협상 태도와 결과에 깊은 우려가 가득했다. 내 나라 국민들만 챙기려고 온갖 쓸개 다 빼주고 인질을 풀어낸 한국 정부의 처사에 대해 적지 않은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외국 주요 언론이나 외교가에서는 이번 협상 결과를 한국의 정치적 자살(Political Suicide)로 혹평하려 든다.

마지막으로 석방된 분들이 가즈니의 서쪽으로 200킬로나 떨어진 자불(Zabul) 지역에 수용되었던 점으로 보아 유사시 인간 방패로 활용하려 했던 저들의 잔인한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해발 2,000여 미터나 되는 카불과 비슷한 지표면에 위치한 가즈니와 칸다하르 지역은 일교차가 심해 낮에는 폭염에 숨 막히고 저녁에는 추위에 떨어야 하는 곳이다. 동굴 생활로 피를 말리는 피랍 생활을 해야 했다고 한다. 이번 인질극을 벌인 탈레반이나 무슬림에 대한 비난보다는 무모한 봉사 행위로 전 국민을 긴장 가운데 몰아넣은 샘물교회 팀에 대한 비난으로 여론은 들끓었다. 이분들의 인류적 봉사는 성난 악플들로 덧칠되었고 이성보다는 눈먼 감성이 이들에게 돌팔매질 했다.

7월25일, 배형규 목사의 주검이 카라바흐 길거리에서 발견되자 비난과 악플은 동정과 애도로 순식간 변해 버렸다. 인질들에 대한 동정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없는 봉급에 용돈을 아껴 고통 받는 지구촌 이웃을 섬기던 이들에 대한 순수한 정신도 언론의 틈새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냄비 근성 우리 민족의 눈먼 열정이 이성을 되찾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배 목사와 심성민 씨의 주검이 없었던들 한국 교회 122년의 영광은 오욕으로 뒤바뀌었을 것이다. 피 값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눈먼 열정도 잠재우거나 한순간 이성적 사유마저 불가능하게 만드는 불쏘시개도 된다.

정작 탈레반에게 가해져야 할 비난이 왜 곱디고운 우리 젊은이들에게 던져졌을까? 시내로 들어오는 모든 길목마다 전쟁 직후 새롭게 변하려는 카불을 바라보며 1950년 이름조차 모르던 조선이란 나라에 파병된 16개국의 참전 용사들과 그 가족, 개화기 여명의 세월, 조선에 찾아와 순교의 피 흘린 미국인 선교사 1,200명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숨길 수 없었다.
 
아프간에서 벌인 주도권 싸움 

   
 
  ▲ 미국 고위 관리가 삼엄한 경계 경비를 받으며 마자리에 샤리프 공항을 빠져 나가고 있다.  
 
풀려난 인질들이 발표한 성명에는 국정원장, 외교부 실장과 국방부에서 파견된 장성 등 세 사람에 대한 심심한 감사가 있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피랍자들을 위해 그동안 누가 애써 수고하였는지 인질들에게 친절히 브리핑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정작 협상단을 이끌었던 외교부 차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카불에 와 보니 협상단 내에 크고 작은 갈등이 많았던 모양이다.

몇 명 안 되는 현지 대사관 직원이야 말할 것도 없고 외교부 라인이 끼어들 만한 룸이 없었다. 미국 정보기관으로 부터 전달 받는 탈레반 현지 보고를 국정원이 독식하고 있던 탓이다. 움켜쥔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외교부가 취할 수 있는 패가 전혀 없었다. 국정원과 외교부의 협상 주도권 싸움은 이래저래 외교부 차관까지 동원되었지만 정보를 거머쥔 국정원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3공 시절 이래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 정보기관의 우위는 고사하고 외교부의 망신살은 카불 외교가의 웃음거리였다.

‘한국인들은 우리의 형제’라고 큰 소리쳤던 탈레반 협상 팀과 함께 나타난 선글라스의 사나이는 실제 다릴어에 능통한 편이 아니었다. 9.11테러 이후 한국 정보기관에서 특별 테스크 포스를 운영했다는 국정원장의 말에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인질들이 서울로 떠나간 이후 채 이틀이 못 되어 대사관과 한국의 국제협력단 코이카 사무실을 폭파하겠다는 협박을 했다. 선교사들이 강제 출국된 이후 외교부로부터 정식 체류 허가를 받았던 비즈니스맨들까지 긴급히 불러 출국을 종용하는 어이없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야말로 탈레반의 말씀 한마디에 일국의 정부가 체통이고 위엄이고 없었다. 전전긍긍하는 모양새가 우스운 것은 고사하고 수년전 아프간 상황이 안 좋아지자 유일하게 한국 대사만 인근 파키스탄으로 피신하였다 되돌아온 해프닝이 머리에 떠올랐다.

탈레반과 코드를 맞춘 한국 정부

초유의 여성 인질 사태로 탈레반에 대한 비난이 정점을 치닫고 있을 때에 아프간에 체류하고 있는 ‘모든 한국인은 선교사다’라는 식으로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아프간을 상대로 어떠한 형태의 비즈니스조차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 자충수를 두었다. 다시는 선교사를 아프간에 보내지 않겠다는 백기 투항을 얻어낸 탈레반에게 인질 사태의 명분과 역전의 빌미를 준 셈이다.

정부가 나가라고 하니 군소리 없이 아프간을 떠나는 선교사들과 엔지오 관계자들을 보며 “한국은 선교사조차 정부 예산으로 내보내 주거나 정부 허락을 얻어야만 합니까”라고 묻는 사람조차 생겨났다. 서구인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가 어려운 부분인 게다. 정교분리 원칙이라는 정치적 기본 대의마저 무시된 협상 직후 한껏 고조된 탈레반 측이 한국 정부로부터 건네받은 자금으로 무기를 사들이고 앞으로 아프간에 체류 중인 1만 명의 외국인들을 납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였다.

21명의 인질을 담보로 한국 기독교를 타살시킨 정부의 어이없는 결정이다. 아프간 내의 외국인들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조차 못하는 한국의 이기적이고 미숙한 외교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외교가에 만연하다. 한국 외교는 당분간 개점휴업 간판이라도 내 걸어야 할런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그럼 우리 인질들을 나 몰라라 하는 옳다는 말인가? 우선은 살려 놓고 보아야 옳은 일 아닌가? 정부가 가라는 것도 아닌 분쟁 지역을 골라 간 잘못이 기독교 측에 있는데 그런 기독교인들의 입장을 정부가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정부가 비싼 세금을 들여가며 인질 문제에 매달린 수고에 비해 국제 사회의 비난은 매우 혹독한 것이다. 한국 인질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프간 평정에 심혈을 쏟고 있는 40여 개국의 공동 운명이요, 아프간 재건 사업에 참여하는 국제기구들의 형편을 도외시한 이유 때문이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가 당분간 외교적 고립을 면키 어려운 따분한 신세가 되었다.

협상 초기 아프간에서 일하는 사역자들이나 비정부 기구 철수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우디와 인도네시아 등지의 탈레반 측을 지원하기 위한 대표단 측에서 한인 선교사 문제를 들고 나오자 외교부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의 한인 선교사 철수문제에 동의하고 나왔다는 대목은 우리 협상단이 탈레반의 코드 맞추기에 급급한 실정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양국주 대표 / 열방을섬기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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