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약탈을 정당화하는 [재크와콩나무]
서구의 약탈을 정당화하는 [재크와콩나무]
  • 강희정
  • 승인 2007.09.2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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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새롭게 읽는 동화

   
 
  ▲ <재크와콩나무> 표지.  
 
<재크와콩나무>는 세계 명작 동화의 하나로 자주 추천받는 동화다. 추천의 근거는 어린이들에게 모험심과 용기를 심어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동화의 어떤 점이 모험심과 용기를 어린이들에게 심어준다는 것인지 그 의미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고 모험심과 용기를 배울 만한 것인지 아닌지 살펴보자.

<재크와콩나무>는 영국인 조셉 제이콥스가 편집한 동화집(English Fairy Tales, 1898)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다른 두 사람(Andrew Lang과 Edwin Sidney Hartland)에 의해서 소개된 바 있는데, 제이콥스가 편집한 동화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이야기를 1860년도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제이콥스가 전하는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재크라는 소년은 마법의 콩을 얻게 되고, 그 콩은 심은 지 하루 만에 엄청나게 큰 나무로 자랐다. 재크는 그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거인의 집에 가게 된다. 거인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었지만, 거인 아내의 도움으로, 마침내 거인이 소유하고 있던 황금과 황금 알을 낳는 닭, 그리고 말하는 하프를 얻게 되어 재크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단순하게 표현하면 가난했던 소년이 거인의 황금을 훔쳐 일확천금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동화가 어린이들에게 도덕적인 교훈을 주고자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사실 이 동화는 그러한 원칙에 철저히 위배되는 비도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재크의 비도덕성을 덮어주고 그의 '절도'를 정당화해주는 몇 가지 기제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거인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논리를 따르면 식인종으로부터 황금을 훔쳐 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했던 소년이 부자가 되어 후에 공주와 결혼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을 만한 일이 된다.

   
 
  ▲ 거인이 잠든 사이에 재크가 하프를 훔쳐 달아나는 장면 (사진 제공:www.absolute1.net)  
 
여기서 우리는 '식인종'과 '황금'이라는 두 가지가 주요 모티브로서 이 이야기의 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식인종'과 '황금'은 콜럼버스 이래, 서구 문학의 주요 모티브가 된다. 서구에서는 17세기 이후에 두 가지를 소재로 한 수많은 모험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로빈슨크루소>와 <걸리버여행기>가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재크와콩나무>는 이와 동일한 소재를 채택한 어린이용 모험 이야기다.

콜럼버스는 오랜 항해 끝에 자신이 당도한 땅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야만인이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유럽에 유포시켰다. 이 식인종설은 17세기에 예수회 신부들에 의해 더욱 확산되었다. 18세기에 들어서서는 다른 예수회 신부들이 식인종설을 부정하기는 했지만, 서구인들의 인식 속에 박힌, '비서양인들은 사람을 잡아먹기까지 하는 야만인이다'라는 생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콜럼버스 이래, 서구인들은 그들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대륙인 아프리카·아메리카·오스트레일리아·아시아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관심을 두게 된다. 그 호기심과 관심의 밑바탕에는 이들 지역이 자신들이 원하는 황금, 상아, 노예 등을 제공해주는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러한 인식이 서구인들로 하여금 비서구 지역에 대한 '정복'과 '약탈'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면, 서구인들의 비서구 지역의 '정복'과 '약탈'을 정당화하는 기제는 바로 '비서구 야만설'이다. 가장 극단적인 야만의 형태인 식인 습성 외에도 비서구인들을 향한 낙인은 수없이 추가되었다. '게으르다'든가 혹은 '백인종에 비하여 열등하다'든가, '무력을 쓰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는다' 라든가 '미신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계몽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라든가 하는 식이다.

비서구인들의 야만성에 대립되는 것이 '서구 문명설'이다. 이것은 '비서구 야만설'과 동전의 양면이다. 이처럼 왜곡된 서구 중심주의가 16세기 이래 세계 역사를 피로 물들게 하고 수많은 문명들을 역사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재크와콩나무>를 보아야 한다. 아무런 비판없이 무조건 서양의 동화나 소설들을 세계 명작의 반열에 세우는 행태들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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