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무섭게 달라지는 아프간
하루가 무섭게 달라지는 아프간
  • 양국주
  • 승인 2007.09.27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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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주의 아프간 이야기 (2)

아프간에서 '부르카'는 아프간 여성임을 존재론적으로 증명하는 패스포트와 같다. 그러나 아프간 여성을 옥죄던 부르카는 사라지고 지금은 20% 정도의 여성만이 부르카를 착용하고 있을 뿐이다. 동토의 땅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어오고 있었다.
 

   
 
  ▲ 이른 아침부터 쓰레기를 뒤지는 어린아이 곁을 부르카를 쓴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양국주)  
 
아프간에 부는 변화의 바람은 여성들의 옷차림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전통사회의 해체는 탈레반이 다시 집권한다 해도 무함마드가 살던 6세기로 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전 국토 어느 곳에서도 상하수도 시설은커녕 전화도 없던 나라가 21세기 최첨단 휴대전화를 경험하고 있다. 아프간에 길은 있어도 주요 도로를 제외하고는 도로 이름도 없다. 길 이름도 번지수도 없는 나라이다 보니 우편 행정이 있을 리 만무하다.

무슨 무슨 대학교 길 건너 세 번째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두 번째 길에서 좌회전한 후 몇 번째 집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아프간은 달라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불경기를 겪고 있는 미국에서도 "돈을 벌려거든 이라크와 아프간으로 가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 우물 하나 변변히 없는 가난한 산동네 길 거리에 휴대전화 광고만 요란하다. (양국주)  
 
탈레반이 집권하던 시절, 인간의 영혼을 좀먹는다며 극장의 필름을 공개적으로 불태우고 비디오는 고사하고 영화관조차 없앴던 나라가 아프가니스탄이었다. 그런데 비디오 문화를 건너 뛰어 DVD 시설로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스포츠센터 업소만 전국적으로 100여 곳에 달하고, 이런 업소들은 갈 곳 없는 젊은이들을 쓸어 담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탈레반 시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여학생을 위한 교육이 시작된 지도 어느덧 7년이 지났다. 덕분에 지금은 대학 교육을 마친 고급 여성 인력이 즐비하다. 탈레반은 총으로 사람을 지배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향한 자유의 바람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것이다.

전기 공급은 수도 카불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저녁 7시경 무렵부터 자정까지 5시간 정도만 송전하고 있다. 그러나 북부 지역 헤랏과 마자리샤리프 등지는 24시간 전기 공급이 가능해졌다. 국경 건너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크으로부터 전기를 끌어 쓰기 때문이다. 전기 사정을 완화시키기 위해 우즈베크으로부터 수도 카불까지 이르는 송전 시설을 인도 회사에 발주하였다.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고산준령을 넘어 힌두쿠시 고원에서 시작된 역사의 변화를 꿈꾸는 아프간에 세계의 수많은 기업들이 올인하는 이유가 하나둘이 아니다. 우선은 전쟁 복구 작업으로 넘치도록 들어오는 외화로 인해 전쟁을 치룬 나라답지 않게 1달러에 50아프간을 유지하고 있다. 이웃 나라 이란이 1달러에 9,400리알의 평가 절하로 고통 받는 것에 비하면 대단한 안정세다. 요즈음 이라크 한 나라에 투자되는 미국의 사회간접자본이 아프리카 전체에 투자되는 금액을 앞질렀듯 아프간 역시 개발 이익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전 세계 특히 서부 유럽으로 공급하는 마약의 전량이 아프간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란 루트를 경유 서방 세계로 유입되는 마약으로 유럽 국가들에 비상이 걸린 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아프간 남성의 30퍼센트가 마약 중독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가 영양 빈곤과 면역 결핍으로 시달리는 대신 군벌과 탈레반은 마약으로부터 자금을 공급받는 셈이다. 과거 마약을 종교적으로 금지했던 탈레반이 지금은 마약 생산을 적극 장려하여 아프간 정부가 통제하는 지역보다 탈레반이 통제하는 지역 내의 마약 생산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콩이나 대체 식량으로부터 얻는 수익의 열배 규모이기에 마약으로부터의 유혹을 쉽게 끊지 못하는 셈이다.

   
 
  ▲ 마약 진액을 불태워 흡입하는 하시시는 일반 코케인보다 독성이 강한 편이다. 85세의 원로(왼쪽)는 마약 사용만 62년째라고 하였다. (양국주)  
 

마자리샤리프로부터 30분 거리에 있는 발크주의 고대 도시를 방문한 필자는 현지 사령관의 배려로 보안군의 안내를 따라 지역 원로를 만났다. 낯선 외국인의 방문이 지역 정서를 자극할 수 있다는 권고에 따른 것이다. 어른을 먼저 찾는 관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가 보다.

이들은 으슥한 동네 어귀에 모여 노소 구분 없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양귀비 진액을 말랑말랑한 환처럼 만들어 불에 달군 채 뿜어대는 하시시를 편안히 즐기고 있다. 손님이고 주인이고 없다. 강요하는 법도 없고 원하는 사람은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생필품처럼 이들에게 마약은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있다. 서구 사회가 도덕의 잣대로 평가하는 마약이 저들에게는 피안의 세계에서 들려오는 잡담 수준일 뿐이다. 자신의 나이를 85세로 소개하는 원로는 올해로 62년째 하시시를 피운다고 했다. 아프간의 남서의 평균 수명이 44세인 점을 감안하면 장수한 셈이다. 
 
요즈음 자르가이 대통령의 영국을 향한 독설이 대단하다. 나토 연합군이 아프간에 진주한 이래 마약 생산량은 오히려 증가 추세에 있다. 그만큼 수요가 늘어났다는 이야기인데, 마약 주산지인 헬만트주 생산량 대부분이 영국군에 의해 편취당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프간을 도우러 온 것이 아니라 영국군이 군용기를 통해 거대한 양의 마약을 밀반출하고 있다고 기자회견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미국과 나토의 힘을 빌려 대통령에 오르고 이들의 경호 없이는 하루도 권좌를 유지하기 힘든 자르가이 대통령이 탈레반과 저자세 협상을 벌인 한국의 외교와 영국의 슬쩍하는 버릇을 방송에서 비난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눈독을 들이는 자원으로 가득 찬 나라이다. 전 국토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산악이 구리와 금 등의 지하자원으로 뒤덮여 있다. 지난 35년간 내전을 치르느라 국토를 개간할 여력이 없던 아프간이 길고 긴 동면에서 깨어나고 있는 셈이다.

양국주 대표 / 열방을섬기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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