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묻은 발
진흙 묻은 발
  • 김기석
  • 승인 2007.10.0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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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기석 목사, "야성과 투박함 전해준 영적 보고서"

   
 
  ▲ <채워주심> / 이상혁 지음 / 규장 펴냄.  
 
한국 교회의 선교 방식에 대한 갑론을박이 사회 전방위로 번져가는 시점에 한 선교사의 영적 보고서를 읽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채워주심’의 저자인 이상혁 선교사는 미국 애리조나 주 북동쪽에 위치한 ‘오색 사막’ 한가운데서 살고 있는 호피 인디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이다.

호피는 그들 부족의 언어로 ‘평화롭고 현명한 사람들’을 뜻한다고 한다. 그들은 자연에 깃든 초자연적인 정령들을 숭배하면서 그 정령들의 호의를 얻기 위해 ‘니만 댄스’를 추며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저자가 그곳에서 만난 것은 소박한 행복을 누리는 평화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적개심과 공허감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런 부정적 감정의 뿌리가 십자군적인 선교 활동을 벌였던 스페인 선교사들에 대한 기억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선교사들은 마을에 성당을 세우고, 반항하는 이들은 모두 살해했다. 선교사들의 폭력은 대응 폭력을 낳았고 결국 호피 인디언들의 가슴 깊은 곳에는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이 자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전임 선교사의 무덤 앞에 꽃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는 순간 터져 나온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은 어쩌면 호피 인디언들과 그의 삶을 연루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그는 던져진 존재로 그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다.

호피 마을에서 그가 경험한 것은 철저한 무력감이었다. 주일날 카치나(정령) 의식에 참여한 교인을 찾으러 호기롭게 나섰다가 그가 만난 것은 낙심과 절망과 무기력이라는 낯설지 않은 타자였다. 하지만 무력함의 자각은 그를 하나님의 마음에 든든히 비끌어 매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부터 그가 체험한 것은 하나님의 ‘채워주심’이었다. 선교사 훈련을 받으면서 그는 선교사의 영성은 ‘확실히 야전(野戰)적이며 투박한 맛’이 있다고 느꼈다. 그 야전적이고 투박한 영성은 어쩌면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만 부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호피 마을에서 그가 경험한 것은 철저한 무력감이었다. 무력함의 자각은 그를 하나님의 마음에 든든히 비끌어 매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 제공 : 이상혁)  
 
호피 마을 최초로 교회당 건물을 지을 때도 그는 그런 투박한 신앙으로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다. 교회가 들어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이 카치나 탈을 쓰고 나타나 부족 차원의 명백한 거부 의사를 말없이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는 굽히지 않는다. 교회당을 지으면서 그가 느헤미야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호피 인디언들이 가톨릭 사제들을 죽이고 성당을 불태운 지 320년 만에 그 땅에 세워진 ‘호피미션교회’를 봉헌한 후에 그가 흘린 눈물의 무게를 나는 가늠할 길이 없다. 어려운 훈련과 연단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체득한다. 우리에게 좋은 것을 채워주시려는 하나님은 무엇을 중히 보시나? ‘순수한 헌신’, ‘몸부림치는 비장한 기도’, ‘묵묵하게 충성하는 것’, ‘겸손’, ‘종다운 순종의 태도’, ‘내려놓음’, ‘하나님 한 분만 구하는 믿음’. 이것은 그의 머리에서 나온 깨달음이 아니라 가슴에서, 아니 발뒤꿈치로부터 나온 깨달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제 영적인 자산가이다. 

그는 목회자로 헌신했던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로부터 풍부한 영적 자산을 얻었다. 그의 가슴에는 인생의 가뭄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늘 곁에 머물면서 꿈을 향해 헌신했던 좋은 신앙의 동지들이야말로 그의 영적 자산을 풍요하게 해준 이들이다. 그리고 이 책은 선교사 이상혁이 열정과 헌신과 눈물과 기도와 감사로 빚은 아름다운 항아리이다.

그의 글은 평이한 듯하지만 독자들의 가슴을 열어젖히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그의 증언은 불모의 땅을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는 현대인들을 생명의 샘 근원으로 인도할 수도 있겠다.

   
 
  ▲ 호피 어린이들과 연날리기를 하는 모습. (사진 제공 : 이상혁)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호피 인디언 사역에 헌신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삶을 잘 소개해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섬겨야 할 호피 인디언들이 경험하고 있는 소외감과 절망의 뿌리에 대해서는 깊이 바라보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억압과 차별을 조금은 알고 있다. 그들은 계몽되지 않은 사람, 누군가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하는 금치산자들이 아니다.

다만 아름다운 삶의 가능성을 애초부터 박탈당한 사람들이다. 적대감과 공허감의 뿌리는 과거로부터 오늘에까지 광범위하게 얽혀 있다. 그들이 처한 절망의 자리를 제대로 보지 않고서는 희망을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저자로부터 호피 인디언들과 소통에 실패한 이야기도 듣고 싶고, 선교의 현장에서 느꼈던 좌절의 경험도 듣고 싶다. 삶이란 성공과 실패, 의미와 무의미, 확실성과 모호성, 동일성과 차이의 구성물이 아니던가. 

저자는 “선교에 임하는 우리의 태도가 ‘십자군적’인지, ‘십자가적’인지 먼저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이 말은 우리와 다른 문화와 습속을 지닌 이들에 대해 존중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저자가 카치나 의식의 현장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싸웠던 엘리야를 연상하며 그들과 맞장 한번 떠보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모습을 보며 당황했다. 진정한 선교는 예수의 이름을 전하는 것보다는 예수의 존재를 전하는 것이 아닐까?

그가 호피 인디언 할머니로부터 받은 ‘주까꾸꾸’라는 인디언식 이름은 ‘진흙 묻은 발’이라는 뜻이다. “진흙 묻은 발은 대리석 바닥이나 값비싼 양탄자가 깔린 곳을 다니는 발이 아니다. 진흙 묻은 발은 고상한 발이 아니다. 그 발은 일하는 발이며 아무리 멀고 험한 곳일지라도 마다하지 않는 발이다.” 이런 자각은 그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야성과 투박함을 잃어버린 내게 그의 영적 보고서는 하나의 도전이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불모의 땅이 은총의 푸른 땅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김기석 목사 / 청파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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