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라뇨? 되로 주고 말로 받아요”
“봉사라뇨? 되로 주고 말로 받아요”
  • 박지호
  • 승인 2007.10.02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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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사니 ‘월사모’ 회원들이 들려준 행복 나눔 이야기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밀알 친구들이 반겨주었다. 그 와중에 볼 살이 넘 귀여운 형진이가 날 보자마자 '이티 어딨어?'하고 묻는다. '이티가 누구야? 이티? 음… 이티는 우주로 갔는데 옛날에…' 이렇게 대답해주고 생각해 보니 이티가 아니라 익희 님을 찾고 있었던 게다. 늘 자기를 챙겨주는 익희 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무조건 찾는다.…어수선하고 시끄러운 분위기는 월사모의 매력이다. 그 어느 모임에서도 절대 연출될 수 없는 순수 자연산 분위기에 다른 분들도 빠져 보시길…" (아공 님의 ‘2월 두 번째 월사모를 다녀와서’ 중에서)

   
 
  ▲ 월사모를 떠나는 비소리 님은 자식을 두고 떠나는 부모처럼 월사모 게시판에 밀알 장애우들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정리해 두었다.  
 
매월 첫째·셋째 월요일 저녁은 뉴욕 밀알선교단이 잔칫집으로 변하는 날이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를 간질밥 먹이고,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소리가 귀를 울린다. ‘월사모’(월요일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은 장애우 친구들과 함께 나눌 음식을 준비하느라 부산히 움직인다. 손으로 부침개를 뒤집으면서 입으로는 장애우 친구들의 안부를 묻는다. 장애우들도 요리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부엌을 들락거리며 그간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털어 놓는다. 보고 싶었다며 뽀뽀를 하기도 하고, 슬픈 얼굴로 몸이 아팠다며 엄살을 부리기도 한다. 월사모의 저녁 식사는 그렇게 준비된다. 정성껏 준비한 요리에 진한 사랑까지 양념으로 곁들어져서 그런지 뉴욕 밀알선교단에는 “월사모가 주는 밥 먹으면 일주일은 버틴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월사모는 뉴욕 지역에 있는 온라인 포털 사이트인 크사니에 있는 온라인 동호회 모임이다. 월 2회 뉴욕 밀알선교단을 방문해 장애우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교제를 나누는 자발적인 봉사 모임이다. 꼭 2년 전, 5명의 청년이 밀알선교단에서 하는 밀알의 밤 행사에 참석했다가 장애우들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행사 이후 그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요리에 자신 있는 박선영 씨(비소리 님)가 음식을 만들어 나누고, 다른 청년들이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놀아주면서 시간을 보낸 것이 시작이다.  

보통 공부나 취미생활을 위해 모인 동호회는 수없이 많지만, 봉사하겠다며 제 발로 모여든 경우는 흔치 않다. 더구나 제 앞가림하기도 벅찬 타국에서 월요일 저녁을 뚝 잘라내 장애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런 모임에 과연 몇이나 참여할까 하는 의문도 없지 않았지만 사이트를 찾아들어가 보니 가입회원만 200여 명에 이르고, 실제 활동하는 회원 수도 60명이 넘었다.

   
 
  ▲ 밀알 큰 언니 미자 언니 생일 파티. (사진 제공 : 월사모)  
 
일반적으로 무슨 무슨 사모로 시작하는 단체의 특성상 사모하는 대상에 대한 관심에 의해 회원이 스스로 동아리를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월사모의 경우는 아는 사람이 소개해서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해보니까 좋더라. 너도 한번 해보라”는 식이다. 뭐가 좋을까. 회원들이 나눈 이야기들을 엿봤다.

“우리 친구들 너무나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왜 진작 이곳에 오지 못했나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우리 밀알의 친구들은 저를 너무나도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데 말이에요. 제가 어제 보고 느꼈던 것들을 차마 글로써 다 담아내지 못하는 저의 글재주가 참으로 아쉬울 따름입니다. 어제 같이 시간을 보내며 다시 한 번 사람 사는 냄새를 느껴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 베풀며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병아리 님의 ‘월요일의 행복’ 중에서)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들은 어쩜 우리보다 백배 천배 더 순수한 맘을 가진 사람들일뿐이라고…우린 인습과 문화, 체면과 형식에 매여서 감정을 숨기고 포장한다. 하지만 그런 것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들만의 특권이 아닐까 싶다. 스스럼없이 관심을 보이고 질문하고, 맘에 드는 사람의 손을 거리낌 없이 잡을 수 있는 그들…난 오늘 그들에게 그런 관심과 사랑을 가슴 넘치도록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감자 님의 ‘솔직하다는 것’ 중에서)

월사모 회원들은 장애우들과 월요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이벤트를 가졌다. 장애우들이 문화생활을 즐기기 힘든 여건이기 때문에 영화도 보러 가고 볼링도 치러 갔다. 지난 월드컵 때는 빨간 티셔츠를 입고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기도 했다. 그렇게 장애우들과 함께 울고 웃기를 2년 여, 월사모 창단 멤버이자 요리사인 비소리 님이 타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밀알 친구들과 송별회를 가졌다.

지난 주 모임에서 밀알 친구들이 하나둘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비소리 님에게 어디 가냐고, 왜 가냐고 묻는다. “누나 가면 누가 밥해?” “너는 누나 떠나는데 밥만 중요한 거지?” 좀 있다 용진 씨와 명희 씨가 부엌으로 오더니 쇼핑백을 쥐어주고 사라졌다.

   
 
  ▲ 밀알 커플 용진 아저씨와 명희 씨가 떠나는 비소리 님을 위해 카드와 선물을 준비했다.  
 
예쁜 카드에 하트 모양의 사진과 함께 감사했다는 말과 행복하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맞춤법도 틀리고, 내용도 횡설수설이지만 글 속에 담긴 진심을 읽어내기엔 부족함이 없다. 카드와 함께 목걸이와 시계가 선물로 들어있었다. 시간 당 7불 씩 받는 교회 청소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산 선물이다. 

월사모를 떠나는 비소리 님은 자식을 두고 떠나는 부모처럼 월사모 게시판에 밀알 장애우들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정리해 두었다. “○○는 상추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치아가 없으니 항상 음식 드릴 때는 잘게 썰어 주시고요. 너무 맵거나 짠 것은 피해 주세요. △△ 언니는 가끔 어리광처럼 눈물도 잘 흘리시고 아프다고 엄살도 부리지만 그래도 포근히 안아 드리면 아이처럼 참 좋아 하세요. 음식 욕심이 많으시니 양과 음식을 항상 눈 여겨 보세요. □□는 가끔 고집도 부립니다. 다 받아 주시지 말고 간혹 야단도 치고 하세요. 그림을 무척 잘 그려요 나중에 그림 대회가 있으면 꼭 출전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어요.”
 
월사모 회원들은 장애우들과 만나는 시간을 통해 주는 것보다 얻어가는 것이 더 많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장애우 친구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시간이 월사모 회원들에겐 비우는 시간이 아니라 채우는 시간인 모양이다.

“비도 오고 차도 많이 다니니 조심해야 한다고 제게 일러주고, 제 접시위에 자기가 가져온 과자를 하나 살짝 얹어 주고, 관심가지며 이것저것 물어보던 친구들…내가 그들을 돌봐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내 마음을 열어주었습니다. 몸의 장애보단 마음의 장애가 더욱 문제가 됨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마음이 말을 앞서고, 말 뒤에 행동이 따르는 그런 회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사팔 님의 ‘다른 느낌의 진정한 기쁨’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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