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를 하는 사람들
'쇼'를 하는 사람들
  • 김형원
  • 승인 2007.10.0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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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음악 맞춰 춤추는 춤꾼들…고후 5장 7절

   
 
  ▲ 다른 사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 음악에 맞춰서 '쇼'를 멋들어지게 해내는 춤꾼이야말로 참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믿음이 좋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믿음이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믿음의 많고 적음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에게 떠오르는 믿음의 사람은 교회를 잘 섬기고, 봉사도 잘 하고, 예배나 기도는 물론 전도와 선교에도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온갖 노력을 하면서 봉사하는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인정을 받아 교회의 중요한 직분에 임명되거나 선출됩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

물론 교회를 잘 섬기는 사람들 중에서 믿음이 좋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믿음을 그런 활동들로만 평가한다면 그것은 우리 삶의 1/7, 즉 일주일 중에서 하루만으로 평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교회 생활은 주로 주일 하루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에도 여러 날을 교회를 섬기는 데 드리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가정생활과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삶의 더 많은 부분이 교회적인 활동이 아니라 다른 일에 쓰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교회와 관련된 것으로만 측정하는 것은 별로 합당해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보고 평가하실 하나님께서 일부분만을 가지고 믿음이 좋다고 말씀하실 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데 작용하는 어떤 것,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어떤 지침이나 원리,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어떤 태도나 자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점을 히브리서 11장 1절이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바탕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기초, 지침, 그리고 원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무엇에 기초해서 살아가는가, 무엇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아가는가 하는 점이 믿음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바울도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설명하면서 믿음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 (고후 5:7) 보는 것에 기초해서 살아가는 사람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대비시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보는 것을 판단 기준으로 삼고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기초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과 믿음이 많은 사람

믿음이 적은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기초해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믿지 못하겠다고 주장하는 것도 일맥상통하는 주장입니다. 또한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맘몬이 하나님을 대체하면서 현대에 최상의 우상 자리에 등극한 것도 따지고 보면 눈에 보이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돈이 눈에 보이지 않고 촉감도 없는 하나님나라의 가치들보다 더욱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후세계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더 오랫동안 더 많이 누리면서 살 수 있을까 혈안이 됩니다. 그렇지만 죽음이 다가오면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적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비록 교회에서는 다르게 보이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반면에 참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귀한 것이 있다고 믿고 그것에 기초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비록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높은 자리에서 대접을 받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는 더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음을 믿고 낮아지며 섬기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것을 믿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결국 믿음의 많고 적음은 보이는 것에 현혹되느냐 아니면 보이지 않지만 더 가치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삶을 사느냐 하는 것으로 판별할 수 있습니다.

다름을 포기한 그리스도인

세상은 우리를 유혹할 때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합니다. 요한은 우리를 유혹하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설명하면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두 눈에 좋아 보이는 것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들이 최고의 가치라고 여기면서 모든 것을 바쳐서 잡으려고 애씁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눈에 보이는 것의 유혹에 넘어가면 말로는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믿음을 상실한 사람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구별하신 거룩한 자들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다름을 상실하게 되면 거룩성이 훼손됩니다. 구별한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책망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땅의 제사장들은 나의 율법을 위반하고 나의 거룩한 물건들을 더럽혔다. 그들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않으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별하도록 깨우쳐 주지도 않으며" (겔 22:26) 평범한 것과 구별된 것 사이에 차이가 없어져버렸습니다. 거룩한 것이 다름을 상실하여 평범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일컬어 '더럽혀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즉 보이지 않는 것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할 때,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갈 때, 그들은 '더럽게'되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포기하고 세상의 가치에 순응하며 살아오지 않았는지. 그래서 별로 튀지 않는 평범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는지. 다르게 사는 자들로 부르심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름’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세상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살고, 같은 것을 추구하고, 같은 것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같은 것을 좋아하면서 살아가면서, 결국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다름을 포기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미워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존경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조들은 다르게 사는 것 때문에 박해를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존경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다름을 포기하고 세상 사람들과 동류의식을 획득하면서 박해를 피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이 두려움 가운데 표현하게 되는 존경심도 함께 잃어버렸습니다. '세상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기보다 '그들 중에 하나가 되어서' 안락함과 ‘성공’을 얻었지만, 어둠을 견디지 못하게 만드는 빛의 광채와 부패의 자연스런 과정을 막아서는 소금의 짠 맛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다르게 사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최고의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앞 다투어 좇아가는데 이 사람은 시큰둥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목숨을 내걸듯이 매달리고 있는데 이 사람은 본체만체합니다.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위협에 "그럴 수 없다. 죽이고 싶으면 죽여라" 하고 대답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위협이 통하지 않습니다. "내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면 승진도 시켜주고 돈도 잘 벌게 해주겠다"는 부정한 회유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승진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사람들

이렇게 사는 사람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왜 이렇게 사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이렇게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고, 그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클라이먼이 말한 것처럼 "음악을 듣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춤추는 자들이 정신 나가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의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 믿음의 사람들을 그 음악 소리를 듣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미친 사람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눈을 떠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인정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함, 즉 구별됨을 지킬 수 있는 삶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너무 평범하지 않은가요? 왕따 당하지 않으려다가 하나님을 닮은 독특성까지 상실하지 않았나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 음악에 맞춰서 '쇼'를 멋들어지게 해내는 춤꾼이야말로 참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김형원 목사 / 하.나.의.교회 담임, <복음과상황>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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