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일까요, '한국어'일까요?
'영어'일까요, '한국어'일까요?
  • 이응도
  • 승인 2007.10.11 2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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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부모와 자녀가 대화한 언어…이민사회의 자녀교육(1)

저는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에서 목회를 하면서 '필라델피아 청소년 상담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청소년 상담원을 통해서 미국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민 가정들의 어려움을 도와주고 아픔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이곳 필라델피아로 유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여름학교 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 더구나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비록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다 왔다고는 하지만, 모두 아시는 것처럼 영어는 유학생에게는 늘 높은 장벽이었습니다.

가르치던 아이 중에서 J라는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J는 미국에서 태어난 남자 아이로, 아버지와 떨어져서 생활한 지 오래된 아이였고, 가정의 상처가 행동과 말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몇 가지 이유로 저는 그 아이를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J가 친구들과 놀다가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J의 잘못인데 덩치가 친구들보다 큰 J는 다른 아이들을 밀치면서 일방적으로 우기고 있었습니다. 개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J는 자신이 먼저 이야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빠른 영어로 일방적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말하던 J는 빙긋이 웃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다 끝났다고 했습니다. 말인즉슨 아이들끼리 싸울 수도 있는 것인데 왜 어른이 끼어들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J에게 천천히 무엇이 잘못인지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J의 첫 번째 대답이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어! 영어 알아들을 수 있어요?"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기가 죽어서 순순히 잘못했다고 말하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상담을 하면서 '언어 소통'의 문제에 대해서 어려움을 표현합니다. 자녀를 책망하려고 하면 영어로 따지고 드는 바람에 도대체 말문이 막혀서 이길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혹 아이가 어려서 미국으로 이사를 왔을 경우 안쓰러운 마음에 무조건 영어를 먼저 배우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는데, 이제 와서 영어만을 사용하는 자녀들이 자신의 자녀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대신해서 각종 은행이나 전화, 전기회사에 전화를 걸어야 했고,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통역을 해 온 자녀들이 부모에 대한 존경이나 감사보다는 무시와 경멸의 눈초리를 보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과연 자녀를 이민 사회에서 교육하는데 있어서 언어는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요? 저는 이번 주부터 몇 주간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부모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자녀들 사이에 올바른 가정교육을 위해서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합니다. 고민의 근거는 그동안 상담을 해 왔던 가정 가운데 표준이 될 만한 몇 가정들입니다. 그 가정을 중심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언어와 관련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면서 우리 자녀들에 대한 고민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먼저 소개하고 싶은 가정은 지난 가을에 상담했던 A의 가정입니다. A의 어머니는 혼자서 A를 키웠습니다. 혼자 키우는 아들을 누구보다도 착하고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상담의 필요를 느낀 것은 11학년이 된 A가 보여준 변화에 대해서 그 어머니가 미처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A의 어머니는 자녀의 성장과 변화를 쉽게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객관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어머니로부터 독립할 시기가 된 A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움을, 다른 한편으로는 서운함을,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상담자로서 A에게서는 그리 큰 문제를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어려서부터 자신을 위해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좋은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린 나이에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억누르게 되고, 하기 싫은 것들도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사춘기의 마지막을 지나오면서 터져 나온 것에 불과했습니다.

A와 그 어머니는 비로소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A가 한국어를 말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A의 어머니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뜻과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결국 서로의 깊은 생각과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는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있지만 표현되었던 것은 반항과 거부감이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는 자녀에 대한 무한한 헌신과 사랑이었는데 표현된 것은 실망과 원망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대화를 통해서 마음에 있는 것을 비로소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관계 회복에 성공한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과연 무엇일까요? '영어'일까요? '한국어'일까요? 계속 함께 고민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청소년 상담원

이응도 목사의 교육 연재 '이민 사회의 자녀 교육'은 필라델피아에서 목회와 상담을 하면서 느낀 것에 대한 에피소드다. 이민을 계획하고 있거나 이민 생활을 하고 있는 가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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