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직도 '교회 개혁'을 꿈꾸는가
나는 왜 아직도 '교회 개혁'을 꿈꾸는가
  • 박문규
  • 승인 2007.10.16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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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힘들어도 끝까지 함께 꿈꾸며 가야 할 길

'건강교회운동'에 참여한 사적인 동기

33년 전에 미국에 와서 공부한답시고 미국 전 지역으로 떠돌아다니던 나는, 1987년 지금 근무하는 캘리포니아 인터내셔널대학에서 가르치려고 로스앤젤레스로 왔다. 그 이전에는 아이다호 주의 포카텔로라는 아주 작은 대학 도시에서 살았다. 그 도시에는 한국 사람이 유학생을 포함해서 약 25 세대 살았고, 한인 교회도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한인들을 모아 처음으로 한인 교회를 조직하였고, 근무하던 학교 교회를 공짜로 빌려 예배를 드렸다. 목사도 아닌 내가 감히 설교를 하였고, 아내가 피아노 반주를 하였다. 그때 나는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목회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알았고, 그것은 더할 수 없이 귀한 경험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 와서 어렵게 한인 교회에 정착했을 때 많은 한국 교회 내에서 중국 선교가 유행처럼 큰 붐이 되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중국 유학생들이기 때문에 나는 학교가 선교지라고 여기고 학생들과 성경 공부를 시작하였다. 자연히 내가 가르치는 중국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다 보니까 나는 스스로 중국을 위해서, 그리고 중국 선교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에 쓰시려고 이 작은 학교로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인 선교사들을 수발드는 일을 조금 거들고 있다. 서양인들이 주축이 된 선교회에서의 나의 역할도 역시나 한인 선교사들과 관련된 일들이다.

한국 선교는 지난 40년간 놀랄 만한 성장을 하였고, 이제 한국은 파송 선교사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보내는 선교 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 선교가 갖는 문제점도 적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때는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인의 선교를 노골적으로 비하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사역에 있어서 윤리성·재정에 있어서 투명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고, 선교사끼리 협력하지 못하고 분열하고 다툰다는 것이 그네들의 비판의 초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판은 외국 선교사들뿐만 아니라 한국 내에서 혹은 이곳 교포 크리스천 사회에서도 나오고 있다. 어떤 선교사는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선교사의 수난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아무리 한국 선교에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현상의 책임을 선교사에게만 돌리는 것은 공평치 않다. 선교사들은 이미 한국 교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이 왜 싸우느냐고 물으면, 나는 싸우는 교회에서 컸는데 어찌 싸우지 않기를 기대하느냐고 말한다. 비윤리적인 교회에서 자랐는데, 불투명한 교회 재정만을 보았는데, 선교지에서만 윤리적이고 투명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사들은 한국 교회의 피해자들인 것이다.

한국 교회가 거듭나지 않으면 한국 선교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오면서부터 10여 년간 다니던 교회에 큰 분쟁이 있었다. 교회는 둘로 갈라져 추악하게 싸웠다. 많은 신앙의 친구들이 상대편을 사탄이라고 부르며 으르렁거렸다. 싸움에 어떤 규칙도 최소한의 윤리도 없었다. 싸움에 끼지 않은 나는 출석할 교회가 없어져 버렸고, 양측에서 모두 나를 색안경을 끼고 보았다. 교회의 친구들과 함께했던 선교회도 어마어마한 상처를 입었다. 나는 우리가 선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갈등이 있더라도 정해진 게임의 규칙 아래에서 그리고 최소한의 윤리 속에서 질서 있게 해결하겠다는 성숙함이 없이는 교회가 벌이는 모든 사업에 문제가 있을 것이었다.

교회가 싸우는 바람에 교회에서 시간을 쓸 필요가 없어진 나는 약간의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생각했던 것을 엮어서 책을 한 권 출판하였다. 한국의 정치·사회사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해설한 것이었다. 한국어로 출판한 첫 번째 책을 갖게 되어서 나는 기뻤다. 그 통에 나는 한국 역사와 교회사의 관계라는 나의 전공이 아닌 분야를 훑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 책을 쓰고 나서의 결론은 ‘한국 교회의 갱신이 없이는 한국 장래의 희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은 <민족의 상처, 민족의 소망>이라고 하였지만, 실지로 소망은 한국 교회에 거는 소망이었다.

결국 나는 이제 민족을 위해서도, 선교를 위해서도, 그리고 교포 사회를 위해서도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한국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로스앤젤레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건강교회운동에 끼어든 것이다.

건강교회운동이 한 일

로스앤젤레스 기윤실에 끼어들면서 나는 세 가지 일을 하고 싶었다. 첫째는 교회 개혁을 교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담론의 주제로 만드는 일이었다. 둘째는 교회 개혁에 관한 이론과 전략에 대해 교범이 될 수 있는 문헌을 발간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도들이 자기 교회의 건강성을 구체적으로 가름해 볼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런 방향에서 기윤실은 건강교회포럼을 매해 개최해서 교회 개혁의 방향, 교회 상업주의의 문제, 개교회주의, 신학교, 교회 권력 구조, 직분, 재정의 문제 등등 참 많은 문제들을 다루었다. 고맙게도 <한국일보>는 기윤실 호루라기라는 칼럼을 만들어서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였고 나는 이 칼럼을 통해 교회 개혁에 관한 이야기만 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리고 기윤실은 교회 개혁을 위한 논문집 “성도여, 개혁을 외쳐라”를 발간하여 교회 개혁의 이론과 실질 전략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건강 교회 체크 리스트를 발표해서 구체적으로 이민 교회에서 교회 건강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모두 부족한 것이 많은 작업이었지만 기윤실이 동원할 수 있는 지적·인적 자원이나 한국 교회 혹은 이민 교회의 능력의 크기를 생각할 때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결코 최선일 수 없는 것이지만 최선을 다해 만들어 최선을 다해 밀고 나가자는 것이 나의 좌우명이다.

특별히 건강교회 체크 리스트는 교회론과 관련하여 함량 미달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인 교회론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미주 한인 교회들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건강한 교회의 척도를 제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얼마 전 한인 타운의 대표적 대형 교회가 재정 비리와 분규에 휩싸일 때 이 리스트를 갖고 문제된 교회의 현상을 점검해 보니 우리의 리스트가 아주 현실적으로 유용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체크 리스트 발표가 끝난 다음에 나는 2년간 맡았던 공동대표 직에서 사임하였다. 이제 기윤실은 지적인 작업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평생을 학교에서 분필과 펜을 만지는 일만 하고 살아온 나는 운동가로서는 적합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건강교회운동에 대한 비판

나는 기윤실의 건강교회운동에 참여한 이후 많은 권고와 비난을 받고 있다. 정말 나를 아끼는 사람들, 예컨대 가족과 친한 벗들도 왜 손해만 볼 것이 당연한 일에 가담하느냐고 말렸다. 나는 그들의 사랑에 감사한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손해 본다고 안 하는 일은 기독교인의 태도는 아니다.

나에 대한 비난 가운데 나를 가장 어렵게 만든 것은 “네가 무엇인데 목사들을 싸잡아 비판하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한국 교회의 비건강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영적으로 혹은 윤리적으로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나는 스스로 한국 교회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꾸짖는 심정으로 한국 교회의 문제를 고백하는 것이고, 다 같이 회개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고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할 뿐이다.

교역자, 특별히 담임목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은 한국 교회에 있어서 담임목사의 비중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다. 담임목사가 변하지 않으면 교회는 변할 수 없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목회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융통성이 요구되는 작업인가를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목사는 성직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윤리보다 더 엄격한 윤리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성직의 거룩한 권위가 지켜지고 목사님들이 진정 존경받는 기독교 사회를 아직도 꿈꾸기 때문이다.

혹자는 기독교의 치부를 드러내면 덕이 되지 않고 전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곪은 것을 방치한 채 덮어버리면 상처는 더욱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실상 한국 교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자기의 환부를 노출시킬 용기가 없어서 병만 키워왔다. 환부를 감춘다고 감추어지지 않는다. 이미 한국 기독교인 수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기독교를 외면하는 이유가 교인들이 겉 다르고 속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야 한다. 남가주 교포 사회에서 그 소리를 지르는 단체는 아직 기윤실밖에 없다. 많은 비판 중에서 나를 가장 위축하게 만드는 것은 한국 교회는 너무 썩어서 기윤실이 비판해 봤자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나는 그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교회 개혁의 앞날에 대해서도 낙관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 승산 없는 싸움을 생각하면서 나는 예수님의 승산 없었던 싸움을 생각하고 용기를 얻는다. 바위에 달걀치기인줄 알면서도 계속해서 달걀을 던져야 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건강교회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건강교회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건강교회운동은 한마디로 병든 교회를 개혁하자는 운동이다. 교회는 신도들로 구성된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 구성원들이 이 개혁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기윤실 같은 시민단체는 교회개혁운동의 보조자일 뿐 주인공일 수는 없다. 교회개혁운동의 에너지는 교회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 그래서 기윤실이 벌이는 교회개혁운동은 기존 교회의 구성원에게 교회 개혁의 필요성을 주지시키고, 무엇이 잘못되었느냐를 말하고, 그것을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교회 개혁의 필요를 느끼고 개혁 운동에 앞장서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지금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평신도들의 창조적인 참여를 기대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기윤실은 각 교회 내에 윤리적 성결성과 희생정신이 있는 회원들을 확보하고 그들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기윤실은 800명에 가까운 회원들이 있다. 이분들이 건강교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 자기 교회의 문제로 고민하는 많은 성도들이 기윤실에 협조를 요청할 때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기윤실 홈페이지를 통해 교회 개혁에 관심 있는 분들의 의견을 수집하고 회원으로서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이 회원들로 하여금 각 교회에서 한국 교회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고 연구하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기 교회의 건강 정도를 점검하게 하고, 만약 교회의 건강성에 문제가 큰 것이 발견되면 아주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진단하게 하고 그 치유책을 모색하고 교회의 공식적 채널을 통해 건의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한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받아들여질 때까지 일관성을 갖고 설득해 나아가야 하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연대를 형성하여 성도들을 설득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혹시 교회의 분규나 교권을 위한 다툼으로 번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그 방법에 있어서의 합법성과 도덕성을 언제나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기윤실은 이들을 격려하고 도와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방법에 있어서의 합법성과 윤리성을 유지할 수 있게 절제하게 하고 조심하게 만드는 역할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교회개혁운동이 단순히 기성 교회의 개혁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일 수가 있을 것이다. 기윤실은 이런 의미에서 윤리적인 교회를 만들려는 새 교회 운동을 후원하고 그 방향을 제시하고 가능하다면 인적 물적 자원을 제공해 주는 역할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기윤실은 교회 개혁을 위한 전략과 방향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제시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제 교회 개혁을 위한 총론은 어느 정도 만들어졌으니까, 각론으로 들어가서 진지한 연구, 활발한 토의, 그리고 계속적인 묵상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 시대에 구체적인 상황에서 하라고 하시는 일들의 중심을 잡아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기성 교회의 갱신 운동, 새 교회 운동, 기독 시민운동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할 것이며, 기윤실은 이 세 가지 운동을 연결시키고 종합하여 모두 합하여 선을 이루는 견인차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세 가지의 방법은 하나 같이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주저앉는 것은 비겁하다는 말과 동일한 것이고, 그것은 예수가 보여주신 길은 결코 아니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만큼 어렵지만 하나님이 이루시리라고 믿고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독교의 소망이고 꿈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교회 개혁이라는 꿈,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 아름다운 교민 사회, 아름다운 통일 한국을 꿈꾸면서 신들메를 고친다.

박문규 / 캘리포니아 인터내셔널대학 학장. LA 기윤실 실행위원
* 이 글은 LA 기윤실 소식지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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