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눈물의 여정, 나바호 인디언의 삶
끝나지 않은 눈물의 여정, 나바호 인디언의 삶
  • 홍성종
  • 승인 2007.10.17 1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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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 내몰려 존재감마저 희미한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을 가다(1)

   
 
  ▲ 뉴멕시코, 애리조나, 그리고 유타 주 사이에 놓인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 미국 내 인디언 보호구역 중 가장 큰 면적으로, 웨스트버지니아 주와 규모가 비슷하다. ©Navajo Nation  
 

   
 
  ▲ 보호구역은 건조한 황무지가 대부분이다. 기묘한 바위와 붉은 모래언덕의 모습이 마치 인디언 전사들을 연상시킨다.  
 
한낮에 선혈 빛을 토해 놓은 태양은 붉은 대지를 더욱 짙게 물들여놓았다. 해발 5,500피트에서 10,500피트에 자리한 콜로라도 고산지의 메마른 광야에는 미 대륙 침략의 아픈 역사를 감추고 싶어서인지, 색 바랜 비단을 덮어놓은 듯한 풍경이 이채롭다. 낮은 산소의 밀도 탓일까. 하늘과 맞닿은 지평은 사방 어디나 또렷하다. 협곡 사이로 불쑥 치솟은 바위와 모래언덕은 태양처럼 싸우다 대지에 잠든 한(恨) 맺힌 인디언 전사의 포효를 보는듯하다.

웰컴 투 나바호. 비극의 땅. 미 대륙 발견 후 500여 년이 지난 아직도 끝나지 않는 방황과 유리. 이제는 문명의 교차로에서 갈 길을 잃은 인생들로 전락하여 존재감마저 희미한 땅에 18만여 명의 나바호 인디언의 모진 삶이 펼쳐져 있다.

고지대의 희박한 공기만큼 존재감마저 희미한 나바호 인디언의 삶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은 뉴멕시코를 비롯해 애리조나 주, 유타 주, 그리고 콜로라도 주가 교차하는 이른바 ‘네 모서리’(Four Corners)에 걸쳐 있다. 인디언 보호구역으로는 미국 내에서 제일 큰 면적으로, 약 27,673스퀘어 마일에 이른다. 면적만으로는 50개 주 가운데 10번째 크기에 해당하며, 어림잡아 웨스트버지니아(W. Virginia)와 비슷한 규모이다.

나바호 보호구역에는 연간 강수량이 25인치에 그친 탓에 거친 황무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겨울철은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여름에는 화씨 100도를 웃도는 더위에 건조한 날씨가 이어진다. 이 때문에 나바호 인디언들은 물과 초지를 찾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보호구역 내에는 일자리가 적어 실업률은 48.5%에 육박하고 42.9%가 빈곤층에 속한다. 대부분 토지와 주택에 대한 소유권이 없는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 빈곤은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당장은 물과 전기 부족에 직면해 있다. 도시 근처나 송전소 가까이에 있는 주거지를 제외하고는 물과 전기를 얻기 어렵다. 인구의 45%에 이르는 8만여 명이 아직도 상하수도 시설 없이 지내고 있으며, 수 마일을 찾아가 물을 찾아 길러 나르는 것이 하루 일과 중 중요한 일이다. 갈수록 물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다. 콜로라도 강 젖줄을 둘러싸고 연방정부와 분쟁 중이며, 막대한 파이프라인 시설 비용도 문제이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는 오지에 사는 학생들을 위해 목욕하는 날을 따로 정해놓을 정도이며, 인근 도시에는 빨랫감을 안고 동전 세탁소를 드나드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주거지는 이동식 트레일러나 전통 가옥인 호건(Hogan)에 의존한다. 땅의 대부분은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속해 있고, 다만 위임을 받아 나바호 국가(The Navajo Nation)가 관리한다. 소유권 이전이나 농지로의 용도 변경은 절차도 복잡해 적어도 2년 이상이 소요되기 일쑤이다.

이것이 21세기 문명시대를 구가하는 거대한 미 대륙 한편에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 뉴멕시코 주 갤럽(Gallup) 시 근처에서 바라본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 현재 보호구역 내 인디언들은 제한된 초지와 물을 찾아 대부분 흩어져 살고 있다.  
 
인구 8만여 명이 물 부족으로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위협 받아

뉴멕시코 주도 앨버쿼키(Albuquerque) 동쪽 140마일. 주간고속도로 I-40를 타고 약 2시간 반을 운전해 갤럽(Gallup) 시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나바호 인디언 마을이 나타난다. 움푹 팬 비포장도로를 힘겹게 올라가면 뭉게구름과 맞닿을 듯한 언덕 위에 메디슨맨((Medicineman, 인디언 전통 치료사)인 넬슨 내즈우드(Nelson Naswood)의 3대 가족 2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메디슨맨은 전통 약재를 이용하거나 기도, 노래, 그리고 의식을 통해 병자를 치료하는 사람을 칭한다. 일부 나바호 인디언들은 병원을 찾아가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전통 치료사를 의지한다. 메디슨맨은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심령의 안정을 이루도록 돕는 등 부족의 정신적인 지도자 역할도 맡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갤럽 시 타이어 가게에서 일하는 주니어(21)는 이곳 보호구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주니어는 메디슨맨을 도와 주말에 있을 병자를 위한 종교의식을 위해 능숙한 도끼질로 땔감 나무를 손질하는 데 여념이 없다.

   
 
  ▲ 나바호 인디언 인구·경제지표.  
 
여름을 맞아 외부에서 온 봉사팀들이 이곳을 일주일째 드나들며 전통 가옥인 호간을 비롯해 집수리에 땀을 흘리고 있다. 집 주변에 나무 계단을 만들기 위해 기초를 파려고 곡괭이질을 해보지만 돌밭이라 곧바로 튕겨 나온다.

메디슨맨의 손자인 쟈니(5)는 형과 누나들이 학교에 간 사이 낯선 자에 대한 경계로 주위를 맴돈다. 어른 세대는 세상에 대한 적의로 살아왔으나, 아이들 세대는 적의는 엷어지고 경계만이 늘어날 것이다.

그래도 메디슨맨의 주거 환경은 지난해 물이 공급되어 형편이 나아진 편이다. 낡은 트럭이지만 교통수단도 있다. 모계 중심의 사회라 처가 근처에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위는 건축 일용직으로 일한다. 전통이 급속히 무너져 가는 현실 속에서 딸 부부와 함께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러나 대부분 나바호 사회는 메디슨맨의 사정과는 다르다. 가난뿐만 아니라 희망이 사라진 인생을 연신 술로 푸는 알코올중독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지역 신문인 <나바호타임즈>에는 음주 관련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자들에 대한 부고가 매주 오르내린다. 나바호 보호구역에는 술 판매를 금지한 탓에 주민들은 그랜츠, 콜로라도 등지로 나아가 술을 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방국도에는 주황색 바탕에 검정 글씨로 음주운전을 경고하는 표지판이 수마일 단위로 서 있다.

   
 
  ▲ 나바호 인디언 메디슨맨(Medicineman, 전통 치료사)인 넬슨 내즈우드 3대가 모여 사는 산자락. 급속히 번져가는 핵가족 추세 속에서 전통을 지키며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은 다행으로 여긴다.  
 

   
 
  ▲ 자원봉사팀이 전통 가옥인 호간(Hogan)을 수리하는 모습을 나바호 인디언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들은 온화하고 수줍음이 많아 낯선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는다.  
 

   
 
  ▲ 나바호 전통 가옥인 호간((Hogan) 내부. 호간은 본래는 원추형이었으나 사각형이나 육각형으로 변모했다. 중심에는 화구가 있으며, 문은 반드시 동쪽으로 나 있고, 이곳에서 겨울을 보낸다.  
 
가난과 알코올중독에 절름발이가 된 나바호 사회

   
 
  ▲ 쟈니(5)는 형과 누나들이 학교에 간 사이에 집 앞 벌판에서 맨발로 뛰어놀며 반나절을 보낸다.  
 

가난과 알코올중독으로 이미 절름발이가 된 인디언 사회는 현재 카지노를 비롯한 도박(Gambling) 산업의 유혹을 받고 있다. 미 정부는 사법부의 판결을 등에 업고 인디언 지역 경제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도박장을 허가해 주고 있다. 미 전역에 허가된 인디언 도박장이 현재 367개에 이른다. 카지노를 통해 얻은 수입으로 인디언 주변 지역의 경제는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늘어나며, 더 나은 의료 혜택과 자녀는 양질의 교육을 받게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이다.

그러나 나바호 인디언은 도박이 가져올 폐해를 예견하고 1994년과 1997년 주민투표를 통해 도박장 유치를 막았다. 당시 보호구역 밖인 뉴멕시코 토하질(Tohajiilee) 지역에만 도박장이 있었다. 그런데 이 지역이 카지노에서 얻은 수입을 나바호 자치정부와 나누는 것을 거부하면서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나바호 자치정부는 그나마 수입원이 되던 탄광이 줄줄이 폐쇄될 위기에 처하자 견디다 못해 마침내 2001년 보호구역 내의 도박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제 2006년 1월을 시작으로 보호구역 내에 뉴멕시코에 3곳과 애리조나 주 2곳 등 카지노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도박장은 장기적으로 더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미도박방지협회는 카지노는 지역 주민의 호주머니에서 일인당 40달러를 가져가 15달러를 되돌려주는 셈이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슬롯머신의 수입의 60% 이상이 도박중독자에게서 나온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슬롯머신이 들어선 사우스다고타의 데드우드(Deadwood) 시는 불과 2년 만에 어린이 학대 42%, 가정폭력 80% 이상이 늘어났다. 슬롯머신이 들어선 아이오와의 한 도시는 개인 파산율이 34%로 늘어났다.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에는 환경 문제도 심상치 않다. 석탄과 우라늄의 분진, 그리고 폐광 탓에 대기오염과 수질오염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하고 있다. 더구나 2008년 보호구역 내에서 채광해오던 굴지의 기업들이 속속 철수할 예정이어서 폐광산으로 말미암은 환경오염이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특히, 우라늄 폐해가 심각해 나바호 10대 여성의 암 발생률이 평균보다 1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나바호 자치정부 내 전담 부서를 개설하고 폐광과 우라늄 피해자 대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 가난과 알코올중독으로 이미 절름발이가 된 나바호 인디언의 삶에 불어 닥친 카지노의 황홀한 유혹. 뉴멕시코 주간고속도로 I-40 주변에 있는 카지노. 2006년을 시작으로 보호구역 밖에 있던 카지노가 보호구역 안으로 속속 들어서고 있다.  
 

   
 
  ▲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은 폐광과 분진 때문에 환경오염을 앓고 있다. 우라늄 탓에 나바호 10대 여성의 암 발생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17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폐광과 우라늄 피해 처리를 위해 개설한 나바호 자치정부 내 전담 부서.  
 
보호구역 경제를 살린다는 황홀한 도박장 개설 유혹 더는 막지 못해

나바호 인디언이 걸어온 역경의 길은 다른 소수민족이 겪어온 고난의 여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걸어온 길이 달라 처한 환경도, 그리고 가야 할 길도 다르다. 대대로 하늘 아래에서 사람과 들짐승, 별, 그리고 미물 등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오던 그들은 어머니 품으로 여기던 땅에서 내몰려 천덕꾸러기로 취급받으며 살고 있다. 앵글로색슨 중심의 기독교 복음조차도 인디언은 정복해야 할 가나안 족속, 아모리 족속으로 취급하여 내버린 지 오래다.

눈을 떠서 사방을 볼 때에도 터기옥의 청록색은 남쪽, 그리고 칠흑은 북쪽을 의미하는 것으로만 세계를 이해했던 나바호 인디언이 날 선 문명의 또 다른 섬광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사냥을 할 때도 가족들이 겨울을 보낼 만큼만 사슴에게 말을 건네며 양해를 구하던 그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효율을 지고한 가치로 삼은 자본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을까?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의 적요한 석양을 외면한 채 서부로 꿈을 실어 나르던 세마이트럭과 화물열차의 행렬이 오늘도 쉴 새 없이 지나치고 있다.

‘머나먼 여정’
간추린 나바호 인디언 역사


나바호 인디언의 다른 이름은 디네(Dine)로, ‘사람들(People)’이라는 뜻이다. 고고학자들은 캐나다와 태평양 연안에 거주한 아타파스칸(Athapaskan) 중 일부가 약 1300년에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남쪽에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유입 인구가 증가하여 1600년경에는 북쪽 애리조나, 뉴멕시코, 남쪽 콜로라도, 유타 주까지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스페인은 뉴멕시코 땅에 발을 디뎠고, 1610년에는 산타페 도시가 건설되었다. 이즈음 스페인과 나바호 인디언들은 서로 물물교환을 하였다.

나바호 인디언의 눈물의 여정은 미국이 멕시코를 물리친 1846년 이후 남서쪽과 캘리포니아의 관할권을 얻어 본격적으로 나바호 인디언과 맞닥뜨리면서 시작된다. 여러 분쟁 끝에 키트 칼슨(Kit Carson) 장군은 인디언 초토화 전술(scorched earth policy)을 세워 나바호 지역의 가옥을 비롯해 땅, 가축 등을 빼앗거나 불살랐다. 1864년 봄에는 노약자를 비롯한 약 8,000명의 나바호 인디언들을 전쟁 포로로 잡아 약 300여 마일 떨어진 뉴멕시코 포트 섬너(Fort Sumner)로 강제 이주시켰다. 나바호 인디언은 이 길을 ‘머나먼 여정’(The Long Walk Trail)이라 부른다. 4년 간 계속된 유리와 포로 생활의 처참한 환경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 나바호 자치정부 청사에 걸린 성조기와 나바호 자치정부 깃발. 자치정부 형태로 입법·사법·행정부 형식을 갖추었다.  
 
1868년, 처참한 나바호 인디언의 삶을 뒤늦게 안 의회의 노력으로 조약을 맺고 나머지 나바호 인디언들은 보호구역인 지금의 네 귀퉁이(Four Corners)에서 모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1923년 당시 보호구역 내에 석유가 발견됨에 따라 임대 계약을 체결하면서 자치정부 형태의 나바호 국가가 설립했다. 보호구역은 미 내무부 인디언 사무국(BIA, Bureau of Indian Affairs)의 관할을 받고 있다.

나바호 자치정부는 현재 5개 부서, 110개 지역구(chapter)로 구성되어 있다. 88명의 지역대표자는 4년마다 주민선거로 선출한다. 1991년에 애리조나 주 윈도우락(Window Rock)에 행정수도를 설치하고, 국가형태인 입법·사법·행정부 형태를 갖추었다.

주민들은 금속공예(은세공)를 비롯해 나바호 양탄자, 모직, 목축업 등에 의존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영어를 사용하지만, 어른 세대는 고유 언어인 ‘나바호어’를 쓴다.
   
 
  ▲ 나바호 자치정부 청사 뒤에 자리한 윈도우락(Window Rock). 윈도우락 자체가 나바호 국가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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