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이 땅에 오신 날 내 아들은 이 땅을 떠났어요"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날 내 아들은 이 땅을 떠났어요"
  • 박지호
  • 승인 2007.10.23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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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에서 전사한 고(故) 문재식 하사 부모의 아픔

   
 
  ▲ 도일스 타운 히어로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식 하사 어머니(왼쪽)는 충혈된 눈으로 죽은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은 문 하사의 아버지 문영환 씨.  
 
시간이라는 약도 소용없었다. 자식을 잃고 가슴에 묻은 어머니는 충혈된 눈으로 죽은 아들의 사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올 12월이면 고(故) 문재식 하사가 이라크에서 전사한 지 1년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10월 19일 필라델피아 벅스 카운티 도일스 타운에서 열린 ‘타운 히어로’ 기념식에 참석한 문 하사 어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에 들린 손수건은 자신의 눈과 아들의 사진을 오가며 연신 눈물과 빗물을 훔쳤다. 간간이 새어나오는 한숨도 땅이 꺼질 듯 깊었다. 눈은 사진에 고정한 채 입만 움직여 말했다.

“희망이 없어요, 우리는…. 이 아이 죽었을 때 다 같이 죽은 거예요. 엄마 아빠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죠. 즐거운 것도 없고, 좋은 것도 없어요. 그저… 남들 교회 가고 피크닉 가는 즐거운 일요일에 꽃 사들고 아들 묘지 찾아가서 비석 붙잡고 우는 게 전부예요. (눈물)”

   
 
  ▲ 도일레스 타운 코트 앞 마당에 걸려 있는 고(故) 문재식 하사의 사진.  
 
문 하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입대했다. 동양인이지만 남들에게 인정받는 연방수사국 요원이 되고 싶어서 군대를 선택했다. 하지만 제대를 불과 4개월 앞둔 작년 12월 25일에 참변을 당했다. 명절이나 기념일이면 어김없이 집에 전화를 해 안부를 묻던 문 씨는 크리스마스 전날인 24일 전화를 걸어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통화가 끝나고 채 10시간도 지나지 않아 군인 두 명이 집에 찾아와 문 하사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좀 전에 아들 목소리를 들었는데 죽었다니요. 재식이 목소리가 귀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사망 소식을 듣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었어요.”

3개월 만에 2계급을 특진할 정도로 성실함을 인정을 받았던 문 하사는 사고를 당한 25일에도 자원해서 순찰을 나갔다. 시내를 순찰하던 중 길가에 설치되어 있던 지뢰가 터졌고,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있던 문 하사만 숨졌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이라크에서 희생되는 미군에 대한 소식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전사자는 이미 3,500명을 훌쩍 넘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숨진 미군의 숫자까지 합치면 4,000명을 넘어섰다. 이토록 위험한 곳에 아들이 간다고 했을 때 문 씨의 부모님은 왜 말리지 않았을까.

“왜 안 말렸겠어요. 말렸죠. 어떻게든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었죠. ‘한 번 갔다 왔으면 됐지 왜 두 번씩이나 가냐?’고, 가지 말라고 그랬죠. 그런데 안 가면 감옥에 간다는데 어떻게 말릴 수가 있겠어요. 감옥에 가면 일평생 망치게 되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못하게 될 거고…”

문 하사는 이라크가 두 번째였다. 입대 후 한국 DMZ에서 근무하다가 소속된 2사단이 이라크로 주둔지를 옮기면서 1년을 이라크에서 복무했다. 미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이라크로 파견 명령을 받은 것이다.

더 이상 아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도 슬프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전쟁, 명분 없는 전쟁에 자신의 아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문 하사 가족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이라크 전쟁은 유엔 회원국 중 70% 이상이 반대했던, 그래서 유엔의 승인도 받지 못하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강행한 전쟁이다. 이라크가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있고,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도 허위 정보라는 것이 드러난 지 오래다. 그래서 이라크 전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도 갈수록 회의적이다.

어머니는 문 하사가 근무했던 부대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겠냐고 말했다.

   
 
  ▲ 문 하사 어머니는 아들이 있었던 부대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겠냐고 말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전쟁이에요. 젊은 애들이 가서 죽을 이유가 없는데 죽어나오고 있잖아요. 벌써 왔어야 할 애들을 몇 개월 째 어거지로 붙잡아두고 있어요.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죽었겠어요. 재식이가 있던 부대원들 중에 몇이나 살아서 돌아오겠냐고요.”

문 하사의 어머니는 그렇게 정당한 전쟁이라면, 진정 나라를 위한 전쟁이라면, 왜 당신 자식은 보내지 않느냐고 부시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

“(부시는) 전쟁에 미친 사람이에요. 마무리 지으려는 생각이 전혀 없고, 계속 더 버티려고 애쓰고 있어요. 왜 당신 자식은 안 보내? 정말 나라를 위해 하는 전쟁이면 자기 자식도 보내야지. 가서 간호장교 노릇을 하더라도 보내야지. 부시는 물론이고 의원들 중에 몇이나 자식을 군대에 보냈겠어요. 그새 이라크에서는 힘없고 돈 없는 젊은이들만 죽어나오고…”

문 하사의 가족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탓에 주변에서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이 여전히 아프다. ‘보상금은 얼마나 받는데?’ 하면서 수군대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겐 자식의 목숨을 돈으로 바꿀 수 있냐고 묻고 싶다. 국가유공자 가족에게 부여되는 황금별이 새겨진 번호판을 보고는 ‘경찰이 티켓 안 끊어?’ 하고 묻는 이들도 있다.

“교회를 나가 보지 그러냐고 너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예수가 왔다는 그날 내 자식이 갔어요. 그런데 어떻게 내가 거기 앉아서 기도하고 있을 수가 있겠어요. 모두가 즐거워하는 그날 우리는 슬픔에 젖어 있어야 하는데…”

이번 크리스마스는 문 하사가 세상을 떠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문 하사의 친구들도 초대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즐거운 날인데 재식이 때문에 슬퍼하며 눈물 흘리게 만들기 싫어서다.

문 하사를 생각하면 어떤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냐고 물었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짧지만 처음으로 옅은 웃음이 번졌다. “어리광을 부리면서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했죠”라고 짧게 대답하곤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가냘픈 몸으로 아들의 사진을 보듬고 발걸음을 옮겼다.

   
 
  ▲ 아들 사진이 비에 젖을까봐 몸으로 감싸고 발걸음을 옮기는 문 하사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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