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잘 즐겼니? 성탄절 또 오잖아!
할로윈 잘 즐겼니? 성탄절 또 오잖아!
  • 김종희
  • 승인 2007.11.05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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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이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영적 싸움의 상대인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보내오는 가정통신문이 하루에도 몇 장씩 되는지 모릅니다. 개중에는 미국 문화를 제대로 모르면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가 할로윈에 관한 것입니다.

10월초에 날아온 통신문 중에 26일 금요일 저녁에 열리는 Harvest Festival에 대한 안내문을 여러 번 읽고서도, 이것이 무슨 성격의 축제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저학년들은 31일 오전에 Wonder Walk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는데, 이때 무슨 옷을 입히고 어떤 종류의 신발을 신기고 아이들을 위한 선물은 무엇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만, 이것 역시 무슨 성격의 프로그램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26일 저녁에는 아이들은 뭣도 모르고 평소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축제에 참가했습니다. 가기 전에는 아이들도 멋쩍어서인지 그나마 한국에서 한 벌씩 가져온 하얀 드레스를 안 입고 그냥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도 인디언 소녀 복장을 하고 참가한 것을 보고 나니까 아쉬웠나 봅니다. 31일에는 작은애가 아는 사람에게 빌린 신데렐라 드레스를 입고 학교에 갔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30분 정도 동네를 돌면서 “we want candy, happy halloween!”을 소리쳤습니다. 아이들이 받은 선물은 학부모들이 미리 준비한 캔디나 주스 같은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Harvest Festival과 Wonder Walk는 할로윈 프로그램이었습니다.

   
 
  ▲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Wonder Walk라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Halloween 프로그램인줄 몰랐습니다. 아이들도 신이 났지만 부모들도 아이들 사진 찍어주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날 저녁에도 여느 때처럼 별 생각 없이 퇴근했는데,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는 뭔가를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선택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맨해튼에서 할로윈 퍼레이드를 하는 것과 주변 한인 교회들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를 하는 것이 검색되었습니다. 어느 쪽을 택할까 고민하다가 한두 가지 이유를 들어서 맨해튼 행을 결정했습니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큰애는 신데렐라 드레스를 입고 작은애는 백설공주 드레스를 입고 기차역으로 걸어갑니다. 말 그대로 하늘을 날듯이 거리를 뛰어다니는 두 아이들을 뒤에서 지켜보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동네 곳곳에는 다양한 복장을 한 아이들이 할로윈 단장을 한 집들을 골라 문을 두드리면서 “Trick or treat?” 하면서 바구니를 내밀고 아주머니가 나와서 캔디를 한 움큼씩 쥐어주면서 “happy halloween” 하고 인사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기차 안에는 우리 아이들과 같은 초등학생은 전혀 볼 수가 없고, 희한하기 짝이 없는 복장을 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또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기차가 도착한 맨해튼 메디슨 스퀘어 가든 앞에는 괴이하게 꾸민 젊은이들로 벅적됩니다. 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아시안 신데렐라와 백설공주는 자신들의 복장을 뽐낼 생각은 안 하고, 흉측한 모습을 보고는 무서워하다가 코믹한 모습을 보고는 웃기도 합니다. 감기지 않는 하얀 눈동자에 볼에서는 피가 뚝뚝 흐르는 분장을 한 아저씨와 사진을 찍을 때는 카메라를 쳐다보면서도 눈을 감더군요. 미국의 할로윈 축제를 이렇게 어정쩡하게 처음 참여해보았습니다.

   
 
  ▲ 이날 저녁 맨해튼 거리에는 다양한 분장을 하고 활보하는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고 하면 대개 기다렸다는 듯이 포즈를 취합니다. 이들은 그나마 젊잖게 분장한 연인들입니다.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까만 신데렐라와 백설공주


미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지금의 할로윈 문화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여러 자료를 통해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Harvest Festival' 'Wonder Walk'라고 써서 저로 하여금 헷갈리게 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만큼 학부모들의 거부감, 걱정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종교 문화적인 면에서 거부감은 물론이고, 사고의 위험도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정적인 인식은 한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부정하거나 비판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닙니다. 이날을 크리스마스 다음 가는 최고의 날로 생각하는 미국의 아이들에게 ‘안 된다’는 말로는 씨알도 안 먹힐 겁니다. 적극적인 대안 또는 대응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이날 저녁 괴이한 복장을 입고 동네 골목을 몰려다니는 대신 교회에 와서 건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많은 교회들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름도 ‘Hallelujah-Day' ‘Hallelujah-Night’ ‘Holy-Ween’ ‘Holy-Win-Day’ 등 그럴듯합니다.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이 될 만한 무엇인가를 만든다고 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서 몇 가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격리와 보호는 엄연히 다른 것

첫째는, ‘Halloween'이라는 이름을 그럴듯하게 패러디해서 기독교적인 의미가 담긴 재미있는 신조어를 만든 것은 괜찮은 것 같은데, 프로그램 내용에서 이날 이 행사를 ‘왜’ 해야 하는지 하는 변별성은 별로 없습니다.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의 경우는 주제가 분명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내용으로 꾸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날 행사 내용을 뜯어보면, 분명한 주제가 드러나지 않고 그저 ‘세속의 타락한 문화에서 우리 아이들을 영적으로 보호하자’는 애매모호한 취지만 강조되고 있습니다.

취지만 강조되고 내용이 모호할 경우, 그것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격리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커다란 문제 중 하나는 ‘격리’를 ‘보호’로 착각해서, 교회 안에서는 무진장 강한데 교회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비실비실하기 짝이 없는 기독교인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헤엄치는 법을 가르쳐주기보다는 아예 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부모와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제물로 바치지 말라?

둘째는, 적잖은 비율의 극단적인 분리주의자들이 할로윈을 비판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아전인수로 들이댑니다. 가령, “이방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귀신에게 바치는 것이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귀신과 친교를 가지는 사람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고전 10:20)는 아이들의 유령 복장과 캔디나 초콜릿 선물을 비판하는 데 적용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나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롬 12“2)도 할로윈 비판에 동원됩니다.

“Trick or treat?”이라고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제게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정도로 익살스럽게 들리는데, 종교심이 강한 이에게는 “내게 제물을 바칠 것이냐, 안 그러면 너는 보복을 당할 것이다!” 하는 공포심이 전해지나 봅니다. 귀여운 아이들에게 나눠준 사탕과 초콜릿은 악령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고, 현관 앞을 밝히는 호박 촛불은 ‘나는 사탄을 숭배합니다’ 하고 커밍아웃하는 표시가 됩니다. 그래서 할로윈은 영적 싸움의 대상이 되고, 범신론과 뉴에이지의 상징이 되며, 사탄 숭배 사상의 표상이 됩니다. 할로윈을 법적으로 아예 폐지하도록 하라고 법에 호소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극단적인 이원론과 분리주의가 교회 안을 지배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할로윈은 ‘종교성’이라고 하는 단물이 싹 빠지고 ‘상업주의’라고 세속화로 탈바꿈한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있지도 않은 할로윈의 종교성을 두려워합니다. 할로윈의 종교성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성탄절의 세속성은 왜 염려하지 않는지 모를 일입니다. 할로윈에서 종교성의 단물이 다 빠졌듯이 성탄절에서 종교성이 말라버린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정말 뭔가 걱정하고 싶다면 할로윈의 종교성보다 성탄절의 세속성을 걱정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탄절을 학수고대하는 사람들=할로윈을 오매불망하는 사람들

셋째는, 할로윈이든 성탄절이든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는 영은 바로 맘몬이라는 사실이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할로윈 축제가 화려할수록 지옥에 갇혀 있던 악령들이 도로 위로 쏟아져 나와 춤을 추는 것이 아닙니다. 성탄절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고 우리가 찬양을 하지만, 성탄절을 정말로 기뻐하는 사람들은 이 대목에 한몫 단단히 보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고 보면 성탄절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이 바로 할로윈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번 할로윈에도 약 50억 불이 특이한 복장을 사서 입고, 온갖 장식품으로 집 안팎을 꾸미고, 선물을 사는 데 쓰였다고 합니다. 해마다 소비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장사꾼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아예 10월초부터 분위기를 띄웁니다. 쇼핑몰마다 물건이 넘쳐나고, 호텔 식당에서는 다양한 이벤트를 벌입니다. 미국 것이라면 ‘보약인지 쥐약인지’ 경고문도 안 읽어보고 들이켜는 한국의 천민상업주의가 기승을 부립니다. 대형 할인마트, 온라인 쇼핑몰, 강남의 호텔 나이트클럽, 놀이동산 같은 곳에서 출처도 제대로 모르는 할로윈을 갖고 떼돈을 벌고 있습니다. 할로윈뿐입니까. 성탄절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 애완동물들도 이날은 특별 단장을 합니다. 돈맛을 하는 사람들은 애완동물들도 고객으로 모실 줄 압니다.  
 
돈이 영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지금 이 세대에서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할 것은 ‘철없는 아이들이 악령 복장을 하고 동네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것을 부추겨서 인간의 정신세계를 질식시키면서 돈을 벌어들이는 상업주의입니다. 그것이 귀신처럼 우리 등에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런 상업주의가 할로윈뿐만 아니라 기독교 구석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는데, 어른들은 엉뚱한 것을 가지고 걱정이 늘어져 있으니, 정말 걱정입니다.

할로윈이 끝나자마자 누군가가 새로운 장식품으로 거리를 조금씩 조금씩 꾸미고 있습니다. 실컷 배를 불린 할로윈 악령이 땅속으로 꺼지자마자 또 다른 악령이 고픈 배를 움켜쥐고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뜩이나 가벼워진 주머니를 한 번 더 비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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