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변호사가 가톨릭 신부들을 찾아간 이유
김용철 변호사가 가톨릭 신부들을 찾아간 이유
  • 김종희
  • 승인 2007.11.07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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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살아 숨 쉬는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삼성이 은닉한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10월 29일 열었다. '삼성과 검찰은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플래카드 문구에 가슴 찔릴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자료사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2007년이 저물어가는 시점에 우리 사회 한복판에 폭탄을 터뜨렸다. 그것도 정치·경제·언론·법조 등 한국 사회의 심장부를 겨냥했다.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삼성 재벌의 비리 의혹을 폭로한 것이다.

예상했듯이, 대부분 언론은 숨죽이고 사태의 추이만 지켜보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기자실을 사수하려고 노무현 대통령과 사생결단할 것처럼 덤벼들던 언론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여성의 알몸 사진 노출하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던 언론들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삼성 비리는 국민이 알 필요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알아서는 안 될' 임금님의 당나귀 귀이기 때문일까.

검찰도 마찬가지다. 문제제기를 한 자신이 공범이고 바로 산 증인이라고 주장하는데도 "네 말이 옳다고 입증할 증거를 내놓으라"고 딴청을 부린다. 검찰이 자기의 역할을 되레 문제를 제기한 자에게 요구하고 있다. 언제부터 대한민국 검찰이 이렇게 신중해졌나. 삼성을 비롯해 재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대한민국 검찰. 그래서 우리 검찰은 대한민국 검찰이 아니고 삼성 검찰, 재벌 검찰일 수밖에 없다.

언론이나 검찰을 나무라는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찾아간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많은 언론과 시민단체에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외면했습니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낭떠러지 앞에 선 절망 속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신부님들께서 저의 뜻을 받아주신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때 거기에' 있었던 신부와 성당

김 변호사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신부들에게 간 것은 아니리라. 그가 개신교 신자였다면 아마 목사들을 찾아갔으리라는 생각이 쉽게 안 든다. 그가 신부들에게 간 것은 '그때 거기에' 사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를 가면 뭔가 될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국민들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발표했기 때문에 삼성 비자금 문제에 대한 의혹 제기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명동성당도 '그때 거기에' 있던 곳이었다. 수많은 노동자, 젊은이, 양심세력들이 숨을 곳, 피할 곳, 외칠 곳으로 찾아서 명동성당으로 갔었다. 개신교에서 내로라하는 영락교회, 충현교회, 새문안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를 안 찾아가고 명동성당을 찾은 까닭은 그들이 모두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일까. 명동이 명당이어서 그랬을까. '그때 거기에' 명동성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신뢰의 근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74년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결성된 사제단은 유신헌법 철폐, 부정부패 척결, 인권 보호, 사회정의 실현 등을 촉구했다.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는 광주항쟁 추모 미사 성명 발표, 전두환 정권 퇴진 운동 등을 벌였다. 노태우 군사정권 시절에도 직선제로 개헌할 것을 촉구하고, 방북한 대학생 임수경 씨 동행 귀환을 위해 신부를 파송하는 일대 사건을 일으켰다. 김영삼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국회 파행, 재벌 비리, 국가보안법 및 주한미군, 환경,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등의 문제를 놓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역시 우리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사건은 지금부터 꼭 20년 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공안당국의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을 폭로해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일이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용기 있는 폭로가 6·10 민주항쟁의 시발이 되었고, 총과 칼로 다스리던 이 땅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그나마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20년 전 박종철 씨가 공안당국의 고문에 의해 사망했을 때 군사독재정권은 이를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신부들의 용기 있는 폭로가 있었기에 암흑 속에서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되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자료사진)  
 
가톨릭 사제들이 성직에 전념하지 않고 정치적인 행위만 일삼는다고 비난할 만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태반이다. 특히 종교심 강한 개신교인들의 성향으로는, 사제단의 일련의 행위는 지극히 좌파적이고, 세속적이고, 반종교적인 것으로 판단될 것이다.

아래 글은 사제단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비난 글 중 하나이다.

"정의구현사제단(정구사)이란 단체의 활동을 보면서 참으로 어이가 없고 한심스럽다는 답답한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쓴다. 하나님 말씀을 접하는 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생각은 아니하고, 어째 무슨 자격으로 세상일에 참견하며 본인들이 진정 의로운 자인 양 남들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겠다고 과시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성경에 분명코 "세상에 의인이 없나니…" 모두가 죄인일진대 어째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분별력들을 잊고 자신들이 무척이나 대단한 자인 양….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 못하는 무능력함을 잊고 있는 것인가…. 정의로운 척하는 잘못된 마음을 빨리 찾았으면…. 당신네들이 나서서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결국은 똑같은 인간일 뿐일 텐데…. 어떤 일이고 나서지 말고 참된 마음으로 진실한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것이 올바를 것이며, 자신들이 나서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무시하는 무뢰한 교만임을 경고하고 싶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제단과 김 변호사의 용기에 격려를 보내는 글들이다. 그중 하나다.

"김용철 변호사님과 사제단 신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돈과 권력과 학력과 수많은 연결고리로 얽혀진 우리 사회의 모순들을 진실과 참된 용기로 일깨워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주셨고,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삶의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게 할 수 있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결과는 권력과 자본과 인맥 등 수많은 요인으로 삼성이 승리할 것입니다. 조금은 피해를 보겠지만 그러나 우리들은 이 싸움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세상을 위해서…,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법과 진실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힘내시고, 화이팅 하세요.
삼성과 맞서는 이 땅의 선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요. 김 변호사님, 용기를 잃지 마세요. 우리가 함께할 겁니다. 승리하는 그날까지."

   
 
  ▲ 89년 대학생으로 정부의 허락 없이 평양에 갔던 임수경 씨가 판문점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와야 할 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문규현 신부가 임수경 씨와 동행해 내려오도록 파송했다. 물론 신부는 자신이 보호하던 학생과 함께 옥에 갇혀야 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자료사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단다

가톨릭 사제들이 20년 전에 고문치사 은폐 사건을 폭로한 것이나 오늘 삼성의 비자금 은닉 의혹을 폭로한 것과 같은 일이 성직자로서 해야 할 바람직한 행위인가 아닌가 하는 관점 말고, 주판알을 튕기며 실익을 따지는 관점에서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오늘날 가톨릭에 대한 국민적 신망이 높아지고 교인 숫자가 증가하는 것은 가톨릭교회들의 사회 봉사적 이미지와 더불어 군사독재 시절에 일부 사제들이 희생과 헌신을 하여서 민주주의 시대가 열리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 목사들도 똑같이 정치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데 오늘날 개신교에 대한 국민적 지탄이 하늘을 찌르고, 안티기독교인들이 횡행하고, 교인 숫자가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살인마의 하수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대신 빌어주었고,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휘날리며 하나님이 아니라 부시에게 영어로 기도했으며, 기독교인이고 장로이기 때문에 무조건 찍어야 한다고 단순무지한 선동 행위를 하는 일 등과 함께 교회 안에서 갖은 범죄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점을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가톨릭 사제들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 해도 그걸 통해서 가톨릭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좋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의 하느님을 믿게 된다면, 개신교 목사들도 개신교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개신교의 하나님께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좀 잘못된 행위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복음 전도를 위해서라면 불물을 안 가리는 교회들이, 사회적으로 욕을 먹으면서 선교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존경받으면서 선교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어 보인다. 몇 년째 '돌아오라, 평양대부흥이여!' 하고 떠들어대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이 정도 됐으면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셈법이 나올 만하지 않을까.

썩을 대로 썩은 이 사회에서 우리가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까만 하늘을 시뻘겋게 수놓고 있는 다수의 십자가 때문이 아니다. 비록 소수지만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 덕분이다.

   
 
  ▲ 곳곳이 썩은 이 사회에서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까만 하늘을 시뻘겋게 수놓고 있는 다수의 십자가 때문이 아니라 비록 소수지만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행동하는 신앙 양심 덕분이다.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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