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부자로 살아도 되는가?
그리스도인, 부자로 살아도 되는가?
  • 김종희
  • 승인 2007.11.09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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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목사의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를 읽고

평소 개인적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에 대해 '이게 맞기는 한 걸까' 하는 의심을 할 때가 있다. 나름으로 고민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행동에 옮기지만, 옳은 판단이고 맞는 결정인지 잘 모를 때가 있다. 물론 스스로야 그것이 옳고 맞는다고 믿지만, 어디까지나 나만의 판단일 뿐이다.

객관적으로 검증된 생각과 행동은 아니라는 점이 약간은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말이다. '상식‘(常識)을 판단과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다고는 하지만, 그 상식 역시도 이런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권위에 의존하고픈 맘이 든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돈 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에 확신을 심어준 책이 있다. 예전에 읽었던 헨리 나우웬의 <긍휼>,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최근에 출간된 김영봉 목사의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다. 공교롭게도 모두 IVP에서 나왔다. 너무 기분이 좋아 여러 사람에게 선물했다. 대학생 때 법정의 <무소유>를 선물했던 것처럼.

왜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어?

앞에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는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즐겁고 재미있으면 참 좋을 텐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복음(福音)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복음이라는 단어를 풀어서 '복된 소리'라고 한다. 또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도 한다. 그런데 성서를 읽으면서 단맛에 취한 경우보다는 쓴맛에 이맛살을 찌푸릴 때가 더 많다. 복음은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줄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말씀을 전하자 하나 둘 떠났다. 복음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의 길을 갈 때는 제자들마저 떠나고 혼자 남았다. 복음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찔리게 한다. 부담스럽게 한다.

그런 점에서 교회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모이는 것을 자랑할 만할 일은 아니다. 진리의 말씀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때문에 진리에 목말라 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악한 본성을 볼 때 진리의 말씀을 위장한 달콤한 그 무엇에 취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사람의 많음에 열광하고 좇아갈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참된 진리의 말씀이 잔잔하게, 그러나 아프게 흘러나오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를 읽는 것은 상당한 부담과 찔림을 준다. 마치 이 책이 바늘귀고 독자가 낙타인 것만 같다.

   
 
  ▲ 김영봉 목사가 쓴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는 김동호 목사가 <깨끗한 부자>에서 주장하는 '청부론'과 달리 '자발적 가난' 또는 '영성적 가난'을 강조하고 있다.  
 
바늘귀를 변화시킬 것인가, 낙타를 변화시킬 것인가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는 낙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신다. 하긴 요즘에는 많은 목사들이 아예 웬만한 낙타도 너끈히 통과할 수 있도록 바늘귀를 좍좍 넓혀주고 있어 보인다. 하나님은 바늘귀를 넓혀서 낙타가 안심하고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도록 낙타를 변화시키실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선택이 갈린다. 하나님께 바늘귀를 넓혀 달라고 기도할 것인가, 낙타를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할 것인가.

이 책의 부제는 '그리스도인, 부자로 살아도 되는가'다. 느낌으로도 알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부자로 살아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요즘 한국 교회를 휘감고 있는 주장, '그리스도인은 부자로 살아도 된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은 부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들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과 돈' 문제를 갖고 한국 교회 안에서 앞으로 진지하게 논쟁하고 토론하는 문을 열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자신은 매우 조심스럽게 '이 글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도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김동호 목사의 <깨끗한 부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김동호 목사의 '깨끗한 부자'에 정면 도전

김동호 목사는 철저하게 성경이 가르치는 돈 문제를 강조한다. 그의 메시지의 핵심은 이런 것들이다. "돈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돈은 그냥 돈이다. 돈에 대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면 사람들은 누구나 궁극적으로 부유한 삶을 살 수 있다", "하늘에 쌓을 수 없는 돈과, 하늘에 쌓을 수 있는 돈이 있다", "하나님의 몫, 이웃을 몫을 뗀 다음 내 몫에 대해서는 자유로워야 한다"….

김영봉 목사는 "돈이 본질적으로 악하지 않다는 점은 옳다. 하지만 돈이 본질상 위험한 것임을 망각하거나 돈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수님은 분명히 둘(재물과 하나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셨지 둘 다 가지라고 하지 않으셨다"면서 김동호 목사의 전제부터 반대한다.

김영봉 목사는 또 기독교 고유의 사상을 강조한다. 갈브레이드가 말한 '상황적 가난'(탁빈·濁貧), 유교적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청빈(淸貧) 말고, 성경이 특별히 강조하는 '제3의 가난'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영성적 가난' '자발적 가난'이라고 설명했다. "자기 수입에서 다른 사람의 몫을 떼는 데 만족하지 않고, 나에게 필요한 것 이외의 재화를 나누는 것, 이것은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가난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소망해야 하는 가난이다"는 것이다. 그는 "자발적 가난으로 세상의 가난을 치유해야 한다"고 했다.

이 부분은 김동호 목사가 강조한 '돈의 흐름'과 대립한다. 김동호 목사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돈도 그렇게 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영봉 목사는 또, 하나님 몫과 이웃의 몫을 뗀 다음 내 것에 대해서 자유롭다는 생각은 '청지기의 본분을 까맣게 잊게 만든다'고 했다. 이밖에 김동호 목사가 강조하는 '하늘에 쌓을 수 있는 돈과 쌓을 수 없는 돈' '저축관'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한다.

불가피한 혼란과 갈등, 그러나…

독자들은 두 권의 책을 비교해서 읽으면서 ‘어느 주장이 옳은 것인지’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이것은 매우 건강한 경험이다. 또 심한 갈등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주장에 손을 들어주어야 하나’ 하고 말이다. 문제는 마지막이다.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나' 하는 지점에 이르면 괴로움에 머리를 쥐어뜯을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바늘귀가 커지는 것보다는 낙타가 변화하는 것을 즐기실 것이고, 그분은 그렇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이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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